"이웃집 유씨가 또 농약을 먹었다. 세 번째다"

이웃집 유씨가 농약을 먹었다. 죽을 작정하고 농약을 마시기 벌써 세 번째다. 마실 때마다 살충제여서 그나마 목숨은 건져왔는데 이번엔 또 무슨 농약을 마셨는지 평상에 모인 이웃들은 혀를 찼다. 나보다 다섯 살 위인 유씨는 이웃집 평상에 모여 가끔 술판을 벌이는 멤버 중 한명이다.

유씨는 읍내에서 청소부로 일하다 정년퇴직하고 대여섯 해 전에 고향마을로 돌아온 터였다. 열댓 평짜리 조립식 집을 지어 후처와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그래도 연금을 꽤 많이 받아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살지는 않았다. 청소부로 일을 한 탓에 읍내에 지인이 많았고, 장날이면 장터거리를 돌며 술을 마시는 일이 나들이의 전부였다.

청소부로 단련된 단단하던 팔뚝도 시도 때도 없이 마셔온 술에 쩔어 흐물흐물 가라앉았다. 경운기사고로 허리를 다치기도 했고, 자식이 애를 먹인다며 두 번씩이나 농약을 마신 탓에 몸은 엉망이 되어갔다. 세 번째 농약을 마신 날 119가 와서 유씨를 병원으로 싣고 갈 때에도 도시에서 살다 이혼하고 홀로 내려온 큰아들은 아버지가 농약을 마셨는지도 모른 채 약과 술에 젖어 송장처럼 누워있었다.

▲ 김석봉 농부

“앗따. 뒈질라면 약을 제대로 쳐먹지. 벌써 세 번이나 약을 쳐먹고도 안 죽고 살았다네.” 소식통 아주머니가 평상에 모인 주민들을 향해 헐레벌떡 들어오며 혀를 찼다.“그래, 어찌 되었다는가?” 성씨가 아주머니를 향해 돌아앉았다. “안산에서 정육점하는 막내아들이 내려와 앰불란스 불러서 데려갔다 안 하요. 몸은 멀쩡하다더만.” “뭔 약을 뭇는고?” “약도 묵구녕으로 쳐 들어가도 안 했는가 보더마.” “약 묵는 거는 의료보험도 안 된다더마. 와 그리 쎄빠지게 사는 아들 고생만 시키는고 모르것네.” “그런께 말이요. 죽을라모 그냥 아무도 몰래 산에 들어가서 흠씬 쳐먹고 죽어뿔던가 하지.”

죽을 마음으로 농약병 뚜껑을 열었건만 죽지 못한 유씨는 이웃들의 놀림만 받고 있었다. 그러나 유씨는 며칠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고, 이 평상에 모여 함께 수제비를 먹을 것이다. 농약을 먹게 했던 상황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고, 언제 네 번째 농약병 뚜껑을 열게 될지 모를 일이다. 목숨은 모질고 모질어서 쉽게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산골살이는 어느새 11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서른 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대개 늙어서 죽었지만 더러는 병들어서 죽고, 몇몇은 사고로 죽었다. 밭두렁 불을 태우다 불에 타 죽은 할머니도 있고, 무더운 여름날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젊은 남자이웃은 일사병으로 죽었다. 덤프터럭을 몰며 세 아이와 젊은 아내와 늙은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젊은이는 다리에서 몸을 던졌다.

호탕한 성격에 마을에서 평판이 좋던 그이는 폐병으로 죽었고, 서울에서 살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귀향한 그이는 암에 걸려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하루에 소주 됫병 하나를 비우고 잠자다 일어나서도 머리맡 소주병을 찾던 그이는 술병으로 죽었다. 엊그제 건너 마을 김씨는 감자 캐러 가는 길에 경운기가 굴러 경운기에 깔려 죽었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고, 늙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대개 마을 들머리에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요양원으로 들어간 노인네가 열댓 명은 넘었고 그 가운데 예닐곱 명의 노인네는 벌써 송장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다들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과 작별했다.

크게 이야깃거리가 없는 산골이어서 마을에 초상이 나면 시끌벅적했다. 평상에 모인 이웃들에 의해 망자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팔자 편케 저승으로 넘어가는 망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억척스레 살아온 삶의 궤적은 안타깝게도 죽고 나면 환대받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다들 깍쟁이에 구두쇠였고, 바람둥이였고, 가난뱅이였고, 글자도 모르는 눈 뜬 장님이었고, 자식 하나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한 무능한 늙은이였다.

가끔은 죽음을 생각한다. 이제 막 환갑을 지난 아직은 젊은 나이라지만, 인생은 이제부터라고도 하지만, 이제부터 펼쳐질 인생이라고 해봤자 속까지 훤히 보이는 마당에 무슨 희망을 바라 호들갑스럽게 인생 2막을 계획하고 연출할 것인가.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추수하고, 겨울이면 들창을 두드리는 찬바람에 몸을 웅크리는 세월만 남았겠지.

머지않아 어머니를 저승으로 보내드릴 것이고, 장조카가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장롱에서 낡은 양복 한번 꺼내 입어볼 수 있겠지. 도시에서 살 때 가깝게 지내던 이들과의 연락도 하나 둘 끊길 것이고, 부고나 청첩장 받는 일도 차차 줄어들겠지. 이제는 얼굴도 아슴아슴한 막내외숙이라도 죽으면 마지막으로 외사촌들 한 번 만나보게 될 것이고, 한 해 한번 모이는 고향 불알친구 계모임도 곧 정리되겠지.

살아갈수록 병원을 자주 찾게 되겠지. 그러다 어느 날에 이르러 아내가, 혹은 내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겠지. 마을 노인네들처럼 병원에서, 혹은 요양원에서 억척스레 살아온 삶을 마감하겠지. 아내 혹은 나 가운데 누군가가 살아남아 쓰던 이부자리와 옷가지를 불태우고, 함께 걷던 언덕에 올라 한 줌 가루로 변해버린 추억을 흩어버리겠지. 망자 앞에서 언제나 그랬듯 이웃 평상에 모인 이들은 ‘무능한 늙은이’였다면서 혀를 찰 것이고, 간혹 나를 기억하는 이들 또한 철없는 한 인생의 흔적을 지우게 되겠지.

장맛비가 내린다. 태풍이 올라온다고 한다. 드센 태풍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쏟아지는 비와 거친 바람 속에 한참을 서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라도 서있어야 너덜너덜해진 내 삶의 흔적들이 깨끗이 씻겨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비로소 적막한 공간을 찾아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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