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버리지 못했던 잡동사니들을 보면서..

“아버지, 별일 없으면 여기 카페로 내려오세요.” 며칠 전 점심을 먹고 누웠는데 보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뭔 일인데?” “엊그제 봤던 리바트싱크대와 한샘싱크대가 서로 조금 다른 옵션이 있어서 어떤 것을 할 지 결정하려구요.” “너그 어머니는?” “곁에 계셔요.” “내가 뭘 아냐. 그냥 너그 어머니와 상의해서 결정하면 되지.”

오래 전부터 보름이는 우리 주방가구를 맘에 안 들어 했다. 싱크대와 상부장은 이사 올 때부터 이 집에 남아있는 유일한 가구였다. 족히 이십 년은 넘어 많이 낡았었는데 이사 와서 문짝만 바꿔달아 그대로 써오던 참이었다. 구석마다 기름때가 거뭇거뭇 묻어있었다. 민박손님 밥을 차려내는 주방가구로는 부족함이 많아 언제고 바꾸려던 참이었다. 그래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보름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돈이 별로 없는 처지에 우리는 망설였고, 그런 사정을 알아서인지 인터넷 여기저기 뒤져 장장 22개월 무이자 할부를 찾아내었다. 이백만 원이 훨씬 넘는 가격에 못마땅해 하던 아내도 그때야 졸이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 김석봉 농부

가끔 창고방에 들어가 방을 가득 채운 잡동사니들을 쳐다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가슴이 무엇엔가 무거운 것에 짓눌린 듯 답답했다. 일 년 내도록 한 번도 꺼내 쓰지 않는 물건도 있었고, 심지어는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다 내다버려도 우리 나머지 생애에 더 이상 그 물건을 찾지 않을 것이련만 무슨 미련에서인지 버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그런 물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바깥 창고에도 많았다. 어쩌다 한 번 찾아서 쓸까 말까한 연장이나 공구, 가재도구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틀어박혀 있다. 그것은 장롱 속이나 책장도 마찬가지였다. 입지 않는 옷가지가 부지기수고, 한번 덮어보지도 않은 이부자리가 장롱을 가득 메우고 있다.

책장으로 눈을 돌리면 거기 유물처럼 변해버린 계간이나 월간잡지들이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빼곡히 들어차있다. 부엌 수납장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크고 작은, 둥글고 모난, 매끈하고 투박한, 밋밋하고 알록달록한 접시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아내와 나 달랑 둘이서 사는 살림살이가 이렇다. 집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이것저것 꺼냈다가 다시 정리하면서 버릴까말까 망설이다 버리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더 이상 사업계획서나 결산 보고서를 작성할 일도 없는데 벌겋게 녹슨 그 서류집게마저 버리지 못하였다.

언젠가 집회장에서 받아온 ‘결사반대’ 붉은 머리띠도 버리지 못했다. 누렇게 탈색되어 여기저기 뒹굴던 군복 입은 사진 한 장도 다시 집어넣었다. 철없던 시절 습작으로 끼적거린 시편들도 다시 접어두었다. 연필깎이칼도 없는데 손가락만한 몽당연필도 챙겨 꽂았다.

“보소. 이거는 필요한 기가.” 집을 정리할 때 궤짝에서 눈에 익은 종이상자가 무더기로 나왔었다. 어느 시절, 명절이면 대통령이 선물을 보내왔는데 바로 저 종이상자에 포장되어 있었다. 종이상자 앞면엔 ‘청와대’라는 금박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놔두소. 그거는 자리도 별로 차지하지 않는데 뭐......” “놔뒀다 뭣에 쓸라고.” “그래도 당신이 받은 건데...... 그냥 놔둬 봐요.” 나의 못마땅해 하는 목소리와 아내의 미련 섞인 목소리가 교차하면서 그 종이박스는 다시 궤짝으로 들어갔다.

집안을 정리할 때는 대개 이랬다. 목이 누렇게 변해버린 셔츠도 아들놈 결혼식 때 입었던 것이었다며 옷장으로 다시 들어갔고, 연꽃무늬가 박힌 이빨 빠진 접시도 꽤 괜찮은 도예가의 작품이라며 부엌 수납장에 다시 넣어두었다.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오래된 월간잡지도 아는 이의 이야기가 실렸다며 뽀얗게 쌓였던 먼지만 털털 털린 채 책장 한 자리에 다시 꽂혔다.

어떤 것은 사연이 있어서 살아남았고, 또 어떤 것들은 모양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무엇이든 버릴 것은 버리려고 시작한 집안정리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버리지 못하기 일쑤였다.

서랍엔 이런저런 고지서와 영수증과 택배송장이 넘쳐나고, 문갑 속엔 편지다발과 사진뭉치가 가득했다.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래야 바람에 뒤집혀 살 부러진 우산과 발꿈치가 닳아빠진 양말짝정도였다.

쉬 버리지 못하는 것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열심히 살아보자고, 잘 살아보자고,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맹세한 첫날밤의 속삭임을 어찌 잊어버리겠는가. 부정을 거부하고 돌아서면서 맨주먹 불끈 쥐던 그 열정의 날들이 어찌 잊히겠는가. 가난해서 정직했던 사람들의 죽음 앞에 바친 그 하얀 국화향기를 어찌 지우겠는가. 진눈개비 흩뿌리던 광장의 함성과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을 무엇으로 덮을 수 있겠는가.

어느 겨울 서울역 앞 가판대 할인행사장에서 산 털외투를 앞에 두고 보여준 아내의 그 울컥한 표정을 어찌 잊어버리겠는가. ‘공무원이 되었소. 내 아들이 공무원이 되었소.’ 신바람에 취해 이웃집 담 너머로 떡을 돌리던 어머니의 그 한없는 표정을 무엇으로 지우겠는가. 소 키워서 망하고 감자 심어 망해 부산 구포 산번지로 떠나던 형의 그 막막한 표정이 어찌 잊히겠는가.

억울해서 남고 서러워서 쌓인 무수한 기억들은 이미 내 생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옷장을 가득 채운 의복처럼, 책장을 가득 채운 도서처럼, 선반에 가득 쌓인 이런저런 잡동사니처럼 내 기억의 상자도 무수한 이야기와 무수한 얼굴이 가득하다. 내가 스스로 내 기억의 상자를 비우지 못하듯 나는 이 낡은 옷과 묵은 책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뒤면 새로운 주방가구가 번쩍이는 모습으로 들어올 것이다. 20년은 족히 쓴 저 낡은 싱크대는 이제 세상 어딘가에 버려질 것이다. 이제는 지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말끔히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텅텅 비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목덜미가 누렇게 변한 셔츠를 버리듯, 한 시절 서럽게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을 버려야겠다. 너덜너덜해진 월간잡지를 버리듯, 증오와 미움으로 얼룩진 싸움의 기록을 지워야겠다. 똬리를 틀고 앉아 내 삶의 윤기를 빠는 슬픈 기억은 이빨 빠진 연꽃무늬 접시를 버리듯 마구마구 내다 버려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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