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하고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날따라 일기장이 너무 넓었다. 만주벌판처럼 광활한 일기장의 여백이 나를 옥죄었다. (지금 상황과도 비슷하다.) 겨우 한 줄을 썼을 뿐인데 연필이 더 나아가질 않았다. 워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연필을 잠시 쉬게 하고 나는 머리를 굴렸다. 부담스러운 여백 같으니. 차라리 시를 써보자. 세로로 길게 쓰면 빈칸이 금방 채워질 거야. 궁하면 통하는 법. 제목은 ‘토마토’라고 붙였다. 술 취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빨간 토마토에 빗대서 일기장 한 바닥을 무사히 채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기장을 선생님 책상에 펼쳐놓았다. 그땐 선생님이 매일 일기장을 검사하셨다. 오늘도 무사히,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친구들과 잡담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걸렸구나.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이 일기장을 들고 말씀하셨다. “동시를 어쩜 이렇게 실감나게 썼니?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한번 읽어줄래? 모두 잘 들어요. 동시를 쓸 때는 이렇게 쓰는 거예요~”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읽어 내려갔다.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시를 잘 쓰는 아이로 통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내 나이 9살이었다.

▲ 재인 초보엄마

그 시절 나는 면단위 시골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봄이 되면 쑥을 캐고 여름이면 논에서 개구리를 잡고 놀았다. 손톱 밑이 늘 새까맸다. 가을바람이 불면 손등이 터서 까슬까슬 해졌다. 어른들은 들일을 하느라 바빠 아이들 손에 눈길을 둘 새가 없었다. 핸드크림은 다음 세기의 발명품이었다.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목이 마르면 벌컥벌컥 수돗물을 마셨다.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수돗가로 달려갔다. 선생님이 손을 씻고 계셨다.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에 단정한 치마를 입은 천사같은 선생님. 내 손을 보시고는 말없이 다가와 비누거품을 살살 묻혀주셨다. 보나마나 땟국물이 졸졸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좋기만 했다. 선생님의 손바닥이 마치 엄마 품처럼 보들보들했다. 사랑받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그 순간의 감촉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서, 요즘도 아이들 손을 씻어줄 때 일부러 내 손에 비누거품을 먼저 묻혀서 씻어주기도 한다. 그것이 내가 배운 사랑 표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백일장 대회에 나갔다가 얼결에 상을 받았다. 그런데 글짓기반 선생님이 계속 엄마를 찾으셨다. “학교에 엄마 안오시니? 애가 상을 받았는데 인사라도 하셔야되는 거 아니야? 엄마 언제 오신다니?” 그때 엄마는 일하느라 바쁘셨다. 당연히 내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는 한번도 오지 않으셨다.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던 글짓기 선생님은 꽤 오랫동안 우리 엄마를 기다리셨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선생님이 복도 끝에 보이면 멀리 피해 다녔다.

중학교 때 시를 가르쳐주신 국어 선생님 덕분에 ‘님의 침묵’을 욀 수 있었다. 과학 선생님은 남녀평등의 정신을 구현하신 분이었다. 치마 입은 여학생들에게도 남학생과 똑같이 엎드려뻗쳐 기합을 주셨다. 그리고 스릴 넘쳤던 수학시간. 날짜확인이 필수였다. “오늘 15일이야? 끝번호 5번들 앞으로 나와!” 5번이 아니라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15번하고 대각선에 앉은 사람들 다 나와!” 저승사자보다 무서웠던 수학 선생님의 호출. 걸리지 않으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확 떨어진 나의 성적표에 단 한 줄의 글귀를 적어주셨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씀이었지만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그저 멍하니 그 한 줄을 되뇌이기만 했다. 동안거에 들어가는 노스님의 명제 같은 한 줄이었다. 의미를 알았을 땐 나도 이미 한참 나이가 든 후였다.

망망대해에서 쪽배 하나 겨우 붙잡고 가던 내게 인생의 항로를 그려주셨던 선생님들. 덕분에 학창시절이 더욱 풍성해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중엔 물론 좋은 분도 계셨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분도 계셨다. 그때는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경우의 수가 어렴풋이 이해되기도 한다. 다만 직업이 교사였을 뿐, 그분들도 생활인으로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모든 선생님들에게 그림자마저 훌륭한 스승이 되라고 무조건적인 사명감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니었을까. 포용인지 포기인지 모를, 이런 말을 두루뭉실 내뱉다니 그새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그러고 보니 내게 가장 좋은 선생님은 ‘세월’이었다. 세월이 나를 철들게 하고 비좁은 마음에도 조금씩 터를 넓혀 주었다. 이렇게 말하면 교단의 선생님들이 서운해 하시려나. 그만큼 인간은 복잡다단하고 오묘한 존재니까. 그 복잡한 인간을 가르치는 일은 가히 신성한 영역이 아닐는지.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하고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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