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바람에 굳게 닫힌 창문 너머로

너무 덥다. 기사를 보니 우리가 동남아를 제꼈단다. 동남아보다 더 뜨겁고 중동의 낮 기온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대한민국의 폭염. 그나마 중동은 기름이라도 나지. 대신 내 몸에선 연일 땀샘이 폭발하고 있다. 밤낮으로 에어컨에 의지해 사막을 건너던 중, 달력을 보니 겨우 8월이 시작되고 있다. 지나온 만큼 또 가야한다니. 에어컨 신이시여, 부디 오래오래 전기를 머금어 주소서. 발 아래 조용히 엎드리겠나이다.

엊그제 아이들과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찌는 날씨에 에어컨은 필수였다. 꼭 닫힌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빌딩 공사장에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낮에 너무 더워서 아침 일찍 일을 하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한낮에도 공사는 계속 되고 있었다. 가마솥 폭염에도 조끼를 껴입고 얇은 철골 사이로 분주히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저 안이 얼마나 뜨거울지,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헌데 그 순간 염치도 없이 떠오른 말이 있었다. “공부 안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

▲ 재인 초보엄마

한 방송인이 했다는 그 말. 앞뒤 맥락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했을 수도 있다. 나도 처음 들었을 땐 무릎을 쳤다. 공부도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지독히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정신 좀 차리라고. 하지만 직접 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우리는 더울 때 시원한 건물에 앉아있을 수 없다. 공사장에서 땡볕 아래 벌겋게 달궈진 철근을 묵묵히 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없으면 건물이 올라가지 못하니까. 에어컨 설치기사가 땀을 바가지로 흘려가면서도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 위험부담을 감수한 덕에 우리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냉기가 철철 흐르는, 에어컨의 은혜를 입고 산다. 전화 한통이면 갑갑한 헬멧을 쓰고도 번개처럼 달려오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시원한 집안에서 짜장면, 탕수육을 편하게 먹고 드러누워 TV를 본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에게 ‘공부 안했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친구들이 다 가는 학원은커녕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부모님께 문제집 사달라는 소리는 엄두를 내지 못했거나. 아니면 풀리지 않는 인생을 비관해 술로 인생을 허비하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의 짐을 지느라 책이나 보고 앉았을 여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갈수록 공부도 환경이 중요하다는데. 모든 사람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날 순 없지 않나. 그가 살아온 과정을 보지 않고는 ‘공부 안 해서’라는 질시어린 결론에 함부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공부’란 무수히 많은 정신적, 물질적인 조건들이 부합해서 도출되는 결과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폭염 속에서도 덥다고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에는 그 어떤 책에서도 배울 수 없는 숭고한 땀의 가치가 깃들어 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백점짜리 인생을 일궈나가고 있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굴러간다는 것을 아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 더더추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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