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나도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산두릅을 따는 계절이다. 일진이 좋아 숲속에서 넓은 두릅군락지를 발견하면 금세 한 배낭을 따게 되는데 이게 제법 비싸게 팔려서 용돈벌이로는 이만큼 짭짤한 것도 없다. 돈 될 것 없는 춘궁기에 나에게 산두릅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산두릅을 발견하고 가지를 휘어잡는데 또 전화가 왔다. 지방선거전화였다. 곧 시작될 경선에 신경을 써달라는 전화였다. 조금 전에도 전화를 받았었다. 몇 백리는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연고자를 찾는다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 도시, 그 지역구에 그 후보와 정치관이 비슷한 지인이 있을 리 없건만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왔다.

무릎과 허벅지와 팔뚝을 가시에 찔리고 긁히면서 겨우겨우 두릅나무 가지를 휘어잡았는데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리는 것이었다. 한 나무를 휘어잡으면 대개 서너 송이를 따게 되는데 어찌 전화를 받을 수 있겠는가. 대충 일고여덟 번 울렸다 끊기기도 하련만 선거전화는 집요했다. 두릅을 따 담고, 장갑 벗고, 앞치마 지퍼 열어 전화기를 꺼낼 때까지 전화벨은 숨 가쁘게 울렸다.

산자락을 한 바퀴 휘돌아 솔숲 사이를 넘어 언덕배기로 올랐다. 등에 멘 배낭이 제법 묵직했다. 오늘은 이만큼이면 됐다 싶었다. 편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고 목을 축였다. 사방은 고요했다. 전화기를 켜보니 선거정보 문자가 수두룩하게 쌓였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자가 줄줄이 낚여 올라왔다.

▲ 김석봉 농부

아, 세상은 바야흐로 선거철이구나. 나도 한때는 선거철이면 설레고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선거판을 기웃대곤 했었다. 199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나도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적이 있었다. 제4대 지방자치선거였다. 경남 진주시 상봉서동 선거구였다. 수서비리투쟁이 한창인 때였다.

진주의 한 재야인사는 ‘앞으로 선거는 꾸준히 계속 될 것이므로 지역민들의 표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선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서른다섯 혈기 왕성한 나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응했었다. 진주에서 초중고 학연도 하나 없었고, 사돈에 팔촌도 한사람 살지 않았었고, 진주에 터를 잡은 지 고작 4년쯤 되던 해였다.

지역신문은 그나마 유일하게 민주후보가 나섰다고 자랑삼아 기사로 다뤘지만 연일 수서비리집회에 동원되어 선거운동은 할 겨를도 없었다. 투표일을 일주일 남긴 상태에서 상봉주공아파트 앞 낡은 여관방 2개를 얻어 캠프를 차렸고, 지인에게 빌린 짙은 밤색 두루마기를 입고 길거리에 나섰다.

그렇게 한복을 차려입고 나서자 진주시 상봉서동 골목에선 ‘빨갱이 김대중 졸개’라는 말이 돌았다. 경상대학생 서너 명과 지역 택시노동자 다수가 캠프를 드나들었지만 상봉어린이놀이터에서 열렸던 첫 합동연설에서 수서비리응징을 외치고 있었으니 선거는 하나마나한 것이었고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이후 나는 환경운동을 택했고, 어떤 운동이든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나만의 고집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지방선거에선 도의원후보를 내세우려다 실패했고, 그 다음 선거에선 시장후보를 내세워 지근에서 도왔으나 낙선했고, 환경단체의 초록정치연대를 적극 지지했고, 한국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고, 지금은 녹색당 당원이니 내 스스로도 내가 정치인인지 운동가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었다.

요즘 선거판을 보면 격세지감이다. 세상은 많이 변해 ‘시민후보’라는 용어는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내 전화기 문자함에 와서 쌓이는 선거운동정보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더불어민주당’이거나 ‘민중당’이거나 ‘정의당’이거나 ‘녹색당’이었다. 진보단체의 정치권진입은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고, 외고패고 정당인이 되고 정당공천 받아 선거에 나오는 것이 기본적인 선거질서로 자리 잡았기에 ‘시민후보’라는 직함은 녹슨 유물이 되어버렸다.

‘시민후보’가 아니면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정당공천제가 아니기도 했지만 지역 진보단체의 정치적 합의와 참여를 전제로 하는 ‘시민후보’는 결코 쉽게 나타날 수 없었다. 단체마다 속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유독 정치판 앞에서는 분열이 심했다. 27년 전 내가 기초의원선거에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 다음 선거에 나서려던 광역의원후보도 현수막을 걸자마자 사퇴해야했고, 다음 시장선거도 반쪽으로 치러야 했으니 시민후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내가 이 산골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직 도시에서 시민사회운동의 대표격으로 행세하며 살고 있었다면 필경 선거판에 뛰어들었을 것이었다. 어쩌면 나마저도 정당인이 되어 정당공천을 받아 선거에 나서려고 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거에 대한 회한이 깊어선지 아니면 어떻게든 세상을 바꿔보기 위한 간절함 때문인지 나 스스로도 알 수야 없지만 그냥 먼발치서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 중소도시에서 민중당 기초위원에 입후보한 그이가 꼭 당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함께 환경운동을 하고 민주당을 택한 그이가 부디 시장에 당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도시에서 정의당 후보로 광역의원선거에 나선 그이가 당선의 영광을 맛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녹색당 당원동지가 기필코 도지사에 당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당을 선택하지 못한 그 무소속 시민후보가 의원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올해 봄엔 산두릅 많이 따서 돈을 좀 모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벌어야 얼마나 벌겠는가마는 그 돈으로 여기저기 선거자금이나 정치후원금도 좀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 선거는 기분 좋게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내 이웃들의 삶의 한 부분을 그 후보들에게 기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묵직해진 배낭을 메고 비탈진 산길을 내려오면서 이제 더는 거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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