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세월도 이제 저런 모습으로 흘러 바다로 스며들겠지

“어머이, 자요.”

핼쓱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 잠든 어머니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살이 많이 빠졌다. 눈자위도 뀅하게 음푹 들어갔다. ‘아, 이제 머지않았구나.’고 생각하는데 어머니께서 눈을 번쩍 뜨셨다.

“깊이도 자네.”

“오, 왔냐. 보고 싶더니만.”

“그래 내 왔소. 점심 언제 먹었다고 뭔 잠을 그리도 자는가.”

벽시계는 오후 한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나는 들고 온 바나나맛 우유와 요구르트와 바나나를 꺼내 병실을 돌며 다른 요양환자들께 나누어드렸다. 바나나를 하나 벗겨 손에 쥐어드렸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허겁지겁 드신다. 바나나맛 우유에 빨대를 꽂아 건넸다. 쪽쪽 빨아 단숨에 마신다.

“배고파?”

“죽만 조금 준다. 멀건 죽을......”

“와, 지난번에 왔을 때 밥 드리라고 했는데.”

다시 비피더스 요구르트를 하나 물려드렸다. 그것도 금세 마셔버린다. 쪼글쪼글한 입 가로 요구르트가 흘러내려 휴지로 닦아드렸다.

“너그 새끼는 애기 놨나.”

“지난번에도 물어보더만. 놨지. 벌써 두 돌이 다 되었구마.”

“아들이가.”

“딸이라니까. 올 때마다 물어보네.”

“그래...... 아들 하나 더 나야 할 낀데......”

▲ 김석봉 농부

병실을 나와 간호사실을 찾았다. 지난달에 봤던 간호사가 자리에 있었다. 가져온 바나나맛 우유와 요구르트와 바나나를 건네며 조금씩 챙겨드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는 넙죽 받으며 그러겠다고 했지만 어머니께 잘 전해지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이동식 변기가 눈에 띄어 한동안 숨이 막혔다.

“너그는 묵고 살만 하냐.”

“아, 묵고야 살지. 별 걱정을 다하고 그런다.”

“농사도 짓고?”

“농사짓지. 우리 묵고 살 만큼은 지어요.”

“그래, 그래......”

점심 먹을 시간을 놓쳐 배가 고파왔다. 버스터미널 앞 국수 무한리필하는 순대국밥집이 생각났다. 벽시계는 두시를 앞두고 있었다.

“형님이나 형수는 한번 다니러 왔던가?”

“너그 형수가 왔더라. 형님은 일 나간다더라.”

“그래요. 그래도 일자리는 있나보네......”

다시 흘끔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가야 안 되나. 가거라.”

“그래, 가야겠소. 함양 가는 직통버스가 세시에 있거든.”

나는 몸을 일으켰다. 병상 등받이를 내려 다시 어머니를 눕혀드렸다. 어머니의 몸은 삭정이처럼 살짝만 거머잡아도 푸스스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홀로 남겨두고 병실을 나서는데 가슴이 몹시 아팠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도 아닐 터인데 속절없이 손을 놓아버린 내 처지가 서글펐다.

밖으로 나오자 거리마다 당선사례 낙선사례 현수막이 요란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선거가 끝났구나. 부산으로 오는 버스 속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었다. 함께 환경운동을 하던 후배가 일자리를 얻었다는 소식이었다. 정부산하기관의 임명직 공직이라고 했다. 참 잘됐구나 싶었다. 언제나 수고롭게 일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축하전화를 해주었다. 전화기를 건너오는 그의 목소리는 한껏 밝고 힘찼다. 완도 미역 양식장에라도 일하러 갈까했던 지난해 겨울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쓴웃음을 삼켰다.

순대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진주로 버스표를 끊었다. 밭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왼쪽 어깨가 묵직하게 아파오더니 요즘은 팔을 늘어뜨릴 때마다 손가락 끄트머리까지 찌릿찌릿 모든 세포를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고 저렸다. 필경 크게 좋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병원에 가는 것이 못마땅해 하루하루 미루었었다. 오늘은 나온 김에 한의원에라도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구, 김 대표께서 어쩐 일로.”

동산한의원 문을 들어서자 오랜 세월 환경운동을 함께 한 원장께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요새 손주 보는 재미는 어떠신가?”

“좋지요. 이제 막 뛰어다니고 그러네.”

“그러게. 많이 컸을 기라. 정 여사는 잘 계시고? 무릎이 아프다더만.”

“아이고. 집사람도 고물 다 되었지 뭐. 이제는 무릎보다 나처럼 어깻쭉지와 팔이 많이 안 좋다고 그래요. 다음 주에 병원에 나와서 사진이라도 찍어볼라고 그러네.”

“어허, 그리 안 좋아서 어째? 어깨가 어떻소?”

“참 나. 밭일 시작하고부터 어깨가 그리 안 좋네. 묵직하다가 찌르르르 온 팔이 저리고......”

“목을 한번 돌려봐요.”

“목은 이상 없는데......”

목을 빙글 돌려 보여드렸다. 증상을 미루어볼 때 목 디스크가 의심된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으련만 나는 한사코 목은 아프지 않다고 했다. 아파서는 안 될 처지였다. 더 아프면 안 될 몸이었다. 어깻쭉지에 부항을 뜨고 피를 뽑았다. 침을 맞았다. 팔다리에 침을 꽂은 채 누워있는데 아, 내 인생이 이렇게 저무는구나싶어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함양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옅은 황혼을 강물에 드리운 채 해가 뉘엿거렸다. 차창 밖 흐르는 강물을 본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깨어지면서 빠르게 골짜기를 벗어난 물이 편평한 곳에 이르러 느릿느릿 흘러가는 모습을 본다. 숨가쁘게 흘러온 내 청춘의 세월도 이제 마침내 저런 모습으로 흘러 바다로 스며들겠지.

다음 주부터 장마에 든다고 한다. 주말엔 감자 양파 수확해서 주문자들께 보내야겠다. 장맛비가 시작되기 전에 팥 심을 밭이랑 김매기를 하고, 감자를 심었던 밭에는 들깨모종을 옮겨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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