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막힌 진입장벽 앞에서

TV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정우성이 로힝야 난민을 말하고 있었다. 유엔친선대사로 난민캠프를 직접 방문했다고 했다. 근데 로힝야가 나라 이름인가? 아, 부족이라고 했지?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기에. 영화 ‘비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그의 경이로운 얼굴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 역시 청춘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바. 역시 잘생긴 남자는 나이 들어도 멋있구나. 태평양처럼 넓은 저 어깨로 난민을 말하는데 여부가 있나. 무조건 새겨들을 수밖에.

다음 날 기사가 떴다. 그 방송이 종편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전국에 나 같은 추종자가 많았다는 뜻이지. 그 뒤에도 틈틈이 동영상을 돌려보기 했다. 잘생김에 개념까지 탑재한 멋진 배우를 수시로 꺼내 볼 수 있다니. 진정한 일상의 행복이었다. 검색창에 ‘로힝야’도 쳐보았다. 미얀마의 소수민족. 종교 문제로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왔다고 한다. 인접한 방글라데시나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입국을 거부당했고 지금도 표류 중이라는 설명이 따라왔다. 딱하기도 하지, 참 안됐네. 쯧쯧.

▲ 재인 초보엄마

그런데 무슨 일인가. 정우성이 말한 난민들이 제주도에 왔단다. 로힝야 족은 아니고 예멘에서 왔다는데. 예멘은 또 어디야? 모르긴 마찬가지였지만 나의 반응은 한층 즉각적이었다. 머나먼 미얀마나 방글라데시가 아니라 제주도라니. 당장 제주도 여행이 걱정이었다. 제주도에서 난민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하지?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야하나? 거리에서 그들이 끼니를 굶었다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면? 돌아서는 발걸음이 꽤나 무거울 텐데. 착한 척을 견지하지 못하고 본심을 들켰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황망할 것인가. 오직 그것이 측은하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아이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한담? 저들의 처지는 안됐지만 어차피 우리와는 서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해야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담담하고 일목요연하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 가족은 당분간 제주도 여행 계획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온갖 근심걱정이 풀가동 되었다. 난민이 왔다는 기사 제목 단 한 줄을 봤을 뿐인데.

그제야 알았다. 난민은 제주도에만 있지 않음을. 대한민국 곳곳에 난민들이 넘쳐나고 있음을. 그 대열에는 나도 포함된다. 나는 이른바 고용 난민, 비정규직이다. 지금도 일을 하고 있지만, 꽤 오래 일을 해왔지만, 소속되지 않은 채로, 조직의 바깥을 표류하는 중이다. 각종 신문과 방송에는 고용 난민의 표류기가 장기 연재되고 있다. 정부에서 직접 고용을 지시했음에도 불법파견직 774명의 직접 고용을 거부한 어느 조직의 후안무치 스토리는 회를 거듭할수록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이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던 어느 공항 스토리도 지지부진, 진척 없이 나자빠지는 중이다. 대통령이 말하면 다 되는 줄 알고 꿈에 부풀었던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의 반대에 부딪히며 길을 잃었다. 문제는 이런 곳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고용난민에게 높은 장벽을 치고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

예멘에서 온 난민들은 우리 정부의 심사단계를 거친다고 들었다. 심사를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가려진다고. 어떤 방향이든 결과가 나오면 세상은 또다시 시끄러워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찬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그 어느 지점에서 어정쩡하게 찬성과 반대를 오가며 당혹스러워하는 내가 보인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난민을 거부하는 다른 나라를 욕하면서도 정작 내 나라에는 발들일 자리가 없다고 철벽을 치는 나도, 약자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주면 조금이라도 손해볼까봐 발을 동동 거리는 나도, 역시 비슷한 이유로 고용 난민 신세를 면치 못한 채 표류하는 나도, 모두가 동일한 ‘나’라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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