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내가 사랑했던 세상은 산 너머에 있고..

나는 이 산골짜기에서 깊이깊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김석봉 농부l승인2018.07.18l수정2018.07.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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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팥죽 같은 땀이 흘러 온몸을 적신다. 들깨밭 김매기는 오전8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난다. 그렇게 사흘을 일해야 마무리된다. 양파와 감자를 캐낸 빈 밭에 들깨모종을 심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얼마 전까지 비닐멀칭이 되어 있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그 많은 풀씨가 날아들었는지 풀은 빈틈없이 자랐다. 아직은 어린 들깨모종을 피해가며 잡초를 뽑았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밭에 김장채소 심을 면적만큼 남기고 들깨를 심었으니 잘해야 열댓 되 정도 수확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 되에 일만 원, 잘해야 십오만 원어치 들깨를 거둘 수 있을 것이었다. 김매기를 하면서 그만큼의 들깨를 거두기 위해 쏟는 나의 노동을 생각해 보았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차라리 괭이자루를 집어던지고 이 살인적인 뙤약볕을 벗어나는 게 옳겠구나 싶었다.

허리를 펴고 땀을 훔치며 건너편 다랑이논밭을 훑어보았다. 밭마다 한두 사람이 박혀 꼬물거리고 있었다. 이웃들은 밭일이 있으나 없으나 밭에 나가는 것이 습관이었다. 심을 것 다 심었고, 제초제도 다 뿌렸고, 고라니 멧돼지 방지용 그물망도 촘촘히 엮어놨으니 나가봐야 딱히 할 일도 없으련만 그래도 꾸역꾸역 밭으로 나가신다.

▲ 김석봉 농부

“여보, 내년엔 저 앞 밭뙈기를 이삼백 평 더 빌려볼까 하는데......” 일전에 아내와 마주앉았을 때 품고 있던 생각을 넌지시 꺼냈었다. “어깨쭉지도 아프고 무릎도 안 좋다면서 뭐한다고 또 농사를 늘려.” 아내는 단호한 말투로 받았다. “아니, 올해 감자 양파도 잘 팔렸는데 내년엔 조금 더 늘려볼까 하고.” “보소. 그러다 몸 아파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아내는 여전히 완고한 목소리였다.

지금 농사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여기서 더 늘렸다간 한해 농사도 못 버티고 주저앉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래도 농사를 하지 않을 순 없고, 하려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게끔 해야 하는데 올해 감자와 양파가 그나마 잘 팔려서 기대를 가지게 해준 탓이었다.

다른 일거리가 있으면 농사를 포기하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아직은 경제적으로 몸을 움직여야할 처지다보니 이런저런 계획도 세워보았지만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내게 맞는 일거리가 쉽게 나올 리 없겠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은 탓도 있었다.

설령 일거리가 있다고 한들 내가 쉬이 산골을 떠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떠나 다른 삶을 선택하고서도 지금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다며 주저앉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십년을 넘겼다. 그동안 나는 이 산골에 고립되어 살아왔고, 잠시 마을일을 한답시고 설쳤던 시절을 제외하면 농사일을 한 게 전부였다. 서울을 다녀온 지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고, 교통카드 이용방법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극장을 찾은 것도 언제였는지 아슴아슴하고, 서점에서 시집 한 권 고른 일도 가물가물하다.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이래야 이웃 평상에서 모이는 몇몇이 전부고, 나누는 대화라고 해봤자 도라지 옮겨 심는 이야기며 고추 역병문제가 전부였다. 화투치기로 면소재지 중국집 자장면 배달시켜 먹는 날이 그나마 뿌듯한 하루였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통화기록은 하루 한두 건도 쌓이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이렇게 허접한 산골 노인네가 되어있었다.

나는 이제 영영 이 산골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고 해도 결국은 안 나가겠다고 생떼를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세상에 부닥쳐 잘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지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 같고, 주변 낯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설령 나간다한들 한 달을 못 버티고 비 맞은 늙은 수탁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가끔 다른 환경이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읍내 장날 장터거리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 늘 가는 생선가게를 가고, 늘 가는 건어물점을 가고, 늘 가는 선술집을 기웃거렸다. 내 이웃들이 오랜 세월 그리 살아왔듯 내게도 단골집이 생겼고, 그 단골집이 아닌 다른 집을 찾아든다는 것이 낯설어서 싫었다. 나는 그처럼 제자리에 주저앉아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아버지. 인터넷으로 ‘실내페인트작업 하는 방법’을 검색해 보세요. 내일 페인트 와요.” 며칠 전부터 집 단장 한답시고 실내페인트를 칠하기로 했었다. 그저 대충 칠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아무 준비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데 보름이가 건너와 콕 찌르듯 말하는 거였다.

“뭐, 그냥 칠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녀요. 창문틀, 전등, 가구 등등 테이핑 철저히 하고, 롤러질은 더블유자로 해야 하고...... 아무튼 인터넷 꼭 찾아보시고 배워야 해요.” 시키는 대로 인터넷에서 실내페인트 칠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표준방법대로 칠했다. 묵은 때가 덕지덕지 묻은 벽면이 환해졌다. 이왕에 시작한 집단장이니만큼 전등도 엘이디 등으로 바꿔달았다. 하루 사이 거실과 주방이 눈부시게 바뀌었고, 특급호텔 부럽잖게 변했다.

“바꾸니까 좋네. 안방도 칠해요. 내일 당장!” 아내가 나를 향해 다그쳤다. 그래, 당장 안방도 확 바꿔버리기로 마음먹고 밖으로 나오니 그동안 우리 집을 밝혀주었던, 이사 올 때 설치한 제법 아름다웠던 그 전등은 처참한 몰골로 쓰레기봉투 곁에 버려져 있었다. 여기로 들어올 때 진주시내 조명가게에서 아내와 저 등을 골라놓고 한없이 만족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저 등이 밝힌 불빛 아래 모여 정담을 나누던 무수한 얼굴과 기나긴 세월이 어른거려 버려진 전등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벽이 바뀌고 전등이 더욱 환해졌어도 결국 나는 내일 들깨밭에 나가 괭이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건너편 빈 밭에 감자와 양파를 더 심어야 할 거라는 생각을 끝끝내 놓지 못할 것이다. 일그러져가는 손가락 마디마디와 찌릿찌릿 저려오는 어깨죽지를 주무르면서도 계속되는 이 삶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세상은 산 너머에 있고, 그렇게 나는 이 산골짜기에서 깊이깊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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