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면 곤혹스러웠다. 이웃들과는 정반대의 정치관을 가져서 무슨 말을 하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이웃들과 함께 사랑방에 모였어도 정치이야기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쩌다 텔레비전 뉴스채널이라도 켰을 때면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촉촉이 봄비가 내리고, 사랑방엔 어김없이 몇몇 이웃들이 모여 있었다. 군불을 많이 넣었는지 방이 후텁지근했다. 뜨거운 곳을 좋아해서 언제나 내 자리는 정해져 있었고,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던 아랫담 최 씨가 자리를 비켰다.“김 사장. 대관절 코로나는 어찌 되는 기요?”“아유, 오늘 읍내 확진자가 팔
올 겨울은 삼일이 추우면 사일이 따뜻한 날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겨울 날씨다.사온이 끝나고 삼한이 시작되는 날에, 김해 봉하마을을 경남생명의숲 회원들과 찾았다.봉하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잔디광장에서 신나게 놀고 오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겨울 바람에 기를 못 펴고 살펴보는 시간만 가졌다.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 둘레에 있는 생태체험장과 화포천은 생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노무현 대통령 묘역과 둘레에 있는 이야기 중에, 이번에는 민속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했다.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 많
올해도 표고버섯 심을 참나무 준비하는 걸 놓치고 말았다. 차일피일 미루고, 할까 말까 망설이다 세월만 보내 버렸다.산언저리를 몇 번이나 맴돌면서 몇몇 참나무를 찜해 두었지만 정작 나서지 못했다. 우리 산이 아닌 데다 마을 사람들 눈치가 보였고, 아내의 만류도 심해 나무를 자를 수 없었다. 표고버섯 심을 나무는 12월에 잘라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 세월은 흘러 어느새 입춘(立春)이 지나 버렸다.소한 대한 지나면 나무가 활동을 시작하고, 수피에 물이 오른다. 그때는 잘라봐야 쓸모가 없다. 그렇게 늦게 자른 나무는 표고버섯 종균을 넣어두어
- 04:20잠을 깼다. 곤히 잠든 아내가 깰까봐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거실은 한기로 가득하다. 찬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내려서자 겨울별자리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천지사방이 고요하다. 입춘(立春)이 닷새도 남지 않았다.다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내일이 설날이다. 명절이 와도 딱히 갈 곳이 없다. 명절차례를 없애고 기제사만 지내기로 한 탓에 부산 큰집에 갈 일도 없다. 이 나이에 처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은 집 안팎을 청소하고 명절음식 만드는 아내를 도와야 한다. 해마다 그래왔듯 제사가 없어도 아
지방에 있는 성곽 중에 온전히 보전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은 곳을 꼽으라고 하면, 순천 낙안읍성, 공주 공산성, 해미읍성, 그리고 진주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무너지거나 사라진 성곽을 복원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찍부터 진주는 진주성을 중심으로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를 만들어, 진주를 대표하는 문화로 만들어왔다. 타 도시 사람들은 남강과 진주성을 가진 진주를 부러워한다.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진주성을 찾으면서, 이렇게 좋은 조건을 갖춘 진주성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체험교육 장소로 더 많이
새해 들어 노인일자리 문제로 마을이 술렁인다. 지난해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해 월30만 원 받았던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연금소득이 꽤 되는 주민이 탈락했고, 부부가 모두 참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은 탈락했다.그런데 이 탈락기준이 공정한 것도 아니었다. 탈락한 주민보다 더 많은 연금소득을 가진 주민이 그대로 일자리를 꿰차기도 했고, 부부가 다 참가하는 가구라고 모두 탈락하지도 않았다. 안타까운 탈락자도 있었고, 탈락했어도 누구나 수긍할 만한 사람은 탈락하지 않았다.“그 집은 떨어지면 안 되는 집인데 왜 떨어진 거야?”
저녁밥상을 물리자마자 아랫담 최 씨 내외가 찾아왔다. 소주잔을 앞에 놓았다.“김 사장. 내년에 이장 해볼 생각 없는가.”이장을 선출하는 대동회가 열흘쯤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요즘 몇몇이서 말을 맞추고 있네.”“아이고. 그게 몇몇이서 말 맞춘다고 되나요. 나는 들어온 사람인데.”“김 사장 들어온 지 십 년이 넘었잖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맘 단디 묵소.”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최 씨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맘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주민 성향을 보나 집안을 보나 내가 당선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어느새 다가온 2021년의 끝자락, 초록걸음 길동무들은 올해의 마지막 걸음을 걷기 위해 명석면 오미마을에 모였다. 얼마 전 길이 열린 진양호 자전거길을 따라 청동기박물관을 지나 산청 소남마을까지 약 11Km의 길을 걷기 위해서다. 작년에 이어 올 한 해도 코로나로 위태롭긴 했지만 총 열 차례의 초록걸음이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 초록걸음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싶다.오미마을에서 진양호 순환도로를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은 차도 옆 호수 쪽으로 데크를 놓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휠체어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수
“돈 모으는 데는 저 집 따라갈 수 없다.”시끄러비아지매 집을 두고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시끄러비아지매의 억척스러움은 정평이 나있었다. 젊은 시절 읍내에서 개최되는 군민씨름대회에서 여자부 십 년 연속 우승한 경력을 가졌으니 그 장대한 기골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그 체격으로 농사일을 하니 보통 사람 서넛 몫은 거뜬히 해치우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경운기를 몰고 마을을 누비던 그녀도 어느새 앓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프고 무릎도 안 좋아 앉았다 일어나면서 연신 끙끙댔다. 바깥양반은 무릎 아픈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밖에서 노는 시간이 죄수보다 적다는 말이 있다.자연과 함께 놀아야 할 아이들이 그만큼 밖에서 노는 시간이 적다는 표현일 것이다.입시 위주 교육을 따라가는 많은 학부모들 때문에 아이들이 놀 시간이 적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놀 수 있는 공간은 잘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학교는 교실과 운동장 그리고 일부 다목적 공간이 있다. 공부는 교실에서 체육은 체육관에서 주로 이루어진다.체육을 하던 운동장 쓰임새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이 운동장을 아이들이 흙과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차츰 바꾸어가고 있다.경
개울 건너 밭에서 양파모종을 돌보고 있는데 저만치 들길 모퉁이를 돌아 아들이 손수레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카페 마당에서 뽑은 잡초를 버리러 가져오나보다 했다.“그게 뭐야?”밭이랑 건너에서 큰소리로 물었다. 밭가에 손수레를 놓고 무엇인가를 들어내는데 불그스름한 색이 언뜻 비쳤다.“단호박. 다 썩어버렸어요.”단호박이라는 소리에 나는 헐레벌떡 손수레 쪽으로 달려나갔다. 늦은 여름 백 개가 넘는 단호박을 수확해 붉은 양파망에 넣어 저온창고에 보관한 것이었다. 양파망 한 자루에 열대여섯 개씩 넣어두었는데 대부분 허옇게 곰팡이가 피어 썩
아들 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읍내로 나가면서 언제 말을 꺼내야 하나 주저주저했다. 시각을 확인하니 그 방송작가로부터 전화 올 시간이 되어간다. 답변이야 들어보나마나 하겠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비에스 한국기행 있잖아. 거기서 작가라며 전화가 왔더라고.”“왜? 텔레비 찍자고?”“응. 이번엔 우리 집에 딱 맞는 컨셉이래. 마음 따라 발길 머무는 뭐라던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좌석에 앉은 아내가 홱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급히 말을 얼버무렸고 일렁이는 아내의 머리카락에서 벌써 찬바람이 났다
“꽝!” 바로 앞 개울 건너 길모퉁이에서 귀청을 찢어놓을 듯 총소리가 났다. 여음이 온 산골마을을 뒤흔들었다. “이게 어디서 난 소리야?” 카페에서 일하던 아들이 놀라 헐레벌떡 뛰쳐나왔다.카페 건너편 길모퉁이를 돌아 낯선 트럭 한 대가 천천히 이동하는 게 보였다. 사냥꾼인 듯했다. 오후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저녁나절이 되자 총소리가 났던 밭두렁 근처엔 까막까치가 떼로 날아들었다. 또랑이는 아침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추운데 또 어디서 한뎃잠을 잤어?” 아들은 밥그릇에 한가득 사료를 부어놓고 발돋움을 하며
올해 들어 아내는 이웃에 말동무가 생겨 심심찮은 시간을 보낸다.버려진 듯 몇 년째 대문이 굳게 잠겨있던 뒷집에 주인이 지난해 귀향했다. 주인은 아내보다 두 살 많은 또래였다. 알록달록 조그만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왔는데 ‘예삐’라 불렀고,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예삐엄마’라 불렀다.그녀는 서울에서 살다 귀향했다. 읍내에서 여고를 나오고 어린 나이에 이 산골로 시집을 왔는데 농지가 많아 농사일에 매달려 살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이들 교육걱정에 집을 뛰쳐나가다시피 서울로 갔다고 했다.그 사이 시부모도 죽고, 몇 년 전에는
11월 초록걸음을 걷기 하루 전날인 11월 19일은 하동알프스프로젝트 철회를 요구하며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 주민들이 하동 군청과 악양면사무소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시작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었다. 형제봉 일대에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그리고 모노레일까지 설치하겠다는 하동알프스프로젝트, 국립공원 1호 지리산에 뜬금없이 알프스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 프로젝트의 중심인 형제봉 아래 동정호에서 걸음을 시작하는 까닭에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이기도 한 평사리 무딤이뜰 한쪽에 있는 동정호는 이곳 악
2021년 11월 11일, 가을날에 밀양에 있는 나무 어른을 만나러 갔다.함께한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읽거나 가까운 곳을 찾아다니는 모임 회원들이다.지난 봄에는 밀양에 있는 독립운동가들 흔적을 찾아 나섰고, 이번에는 오롯이 밀양 가을 풍경을 즐기자고 떠난 답사였다. 밀양 오연정 은행나무. 암그루가 아니어서, 떨어진 은행잎 위에서 놀 수가 있었다. 2021년 11월 11일은 이 멋진 은행나무가 오연정 주인이다.어느 곳이든지 역사와 문화가 깃들지 않는 곳이 없지만,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동은 다르다.
며칠째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겨울을 재촉하는 날씨다. 개울 건너 언덕바지 느티나무 잎이 구름장처럼 날렸다.양파모종 옮겨 심은 밭을 둘러보고 소나무 숲 언저리 모과나무를 살폈다. 올해는 모과가 예닐곱 개밖에 달리지 않았다. 보름이 카페에서 쓸 모과를 어디서 구하나 하는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오늘 읍내 나가?”집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물었다.“안과에 가봐야지. 아무래도 가서 진료는 받아봐야지.”그제 비가 내려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날씨여서 마음먹고 고미 털을 깎았다. 털이 너무 덥수룩하게 길어 방에 조금만 있어도 더워 숨을
동이 터오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 아내는 바쁘게 서두른다. 오늘 여행을 가는 날이다. 여행이랬자 산 너머 산내에 사는 젊은 아낙 둘과 하룻밤 자고 오는 일정이니 굳이 여행이랄 것도 없다.기껏해야 간단한 나들이 정도건만 아내는 많이 설레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가을옷을 하나 살까하며 망설이기도 했다. 새 옷은 끝내 사지 못했어도 기분은 무척 좋아보였다.준비에 한창인 아내를 보며 가끔 어디든지 다녀오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수십 년 만에 찾아온 시월 추위에 지붕은 허옇게 된서리가 쌓였다.두툼한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자 골목 안
아내와 함께 김해시 장유면에 있는 장유누리길에 다녀왔다. 오전 9시 무렵 진주의 집을 출발하여 국도 2호선을 따라 나아갔다. 2번 국도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부산광역시 중구에 이르는 길이 377.9km의 일반국도로서 1957년부터 2002년에 걸쳐 건설된 구 도로이다. 남해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경전선(慶全線) 철로와 더불어 국토의 최남부를 관통하는 간선도로였는데, 지금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특히 진주를 출발하여 마산의 진전에서 거제·고성으로부터 오는 14번 국도와 만나기까지는 아주 한적하여 마치 전세 낸 듯한 기분이므로,
아내와 함께 남해바래길 3코스 동대만길(남파랑길 36코스)에 다녀왔다. 3번 국도를 따라서 삼천포대교‧초양대교‧늑도대교‧창선대교를 차례로 건너 남해군 지역인 창선도로 들어가 오전 10시 20분 무렵 상죽리(上竹里)에 있는 창선면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였다. 동대만이라 함은 이곳 창선면 소재지에 이르기까지 창선도의 한가운데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온 만을 이른다. 오늘 코스의 출발지점은 창선대교를 건넌 직후의 검문소인 창선연륙교 치안센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종착지점인 면사무소로 온 것은 검문소가 차량 통행이 빈번한 3번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