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터오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 아내는 바쁘게 서두른다. 오늘 여행을 가는 날이다. 여행이랬자 산 너머 산내에 사는 젊은 아낙 둘과 하룻밤 자고 오는 일정이니 굳이 여행이랄 것도 없다.

기껏해야 간단한 나들이 정도건만 아내는 많이 설레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가을옷을 하나 살까하며 망설이기도 했다. 새 옷은 끝내 사지 못했어도 기분은 무척 좋아보였다.

준비에 한창인 아내를 보며 가끔 어디든지 다녀오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시월 추위에 지붕은 허옇게 된서리가 쌓였다.

두툼한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자 골목 안쪽 집터를 닦는 공사장은 어느새 작업기사와 인부들이 도착해 있었다. 나대지로 방치된 집터였는데 어제부터 포클레인이 들어와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기 새로 집을 지으려나?”

공사장에서 책임자인 듯한 포클레인 기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으려나 봅니다. 터를 닦고 곧 시작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저기 저 자른 감나무 감은 어쩐대요?”

, 그거야 그냥 버리지요.”

아무나 주워가도 되나? 아깝네.”

어르신이 주워가세요.”

담장 아래 커다란 감나무를 잘라 작업장 구석에 모아두었는데 벌겋게 익어가는 감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공사가 시작되면 필경 흙 속에 묻혀버릴 거였다.

나는 기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가서 커다란 통을 가져와 감을 따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감나무여서 그냥 따 담으면 그만이었다.

금세 한 통을 땄다. 감나무에 올라 간짓대로 따려면 한 나절은 족히 걸려야 할 감을 순식간에 따버린 셈이다. 곶감 깎아 처마 아래 걸어야 할 감을 어디서 구하나 걱정하던 참이었다.

감통을 들고 집으로 들어서자 채비를 마친 아내가 마당에 서 있었다. 서하 어린이집 데려주는 길에 따라 나서려는 모양이다. 아홉 시에 산내에서 출발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서하 준비가 자꾸 지체되는가 보다.

무슨 감이야?”

감이 가득 든 통을 보고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 뒤에 공사하는데 감나무를 잘라버렸는데 감이 그대로 달려 있더라고.”

그거 잘 됐네. 다녀와서 곶감 깎아 걸면 되겠다.”

놀러가는 마당에 또 일 타령이야. 곶감 깎는 일은 좀 잊어.”

저기 솥단지에 불 넣어놨는데 끓으면 한 번 저어주고 불 꺼버려요.”

아내가 마당가 가마솥 걸린 곳을 바라보며 당부했다. 커다란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도라지와 돌배를 갈아서 고우는 중이었다. 사나흘에 걸쳐 다 고와지면 벌꿀을 넣어 이른바 도라지고가 되는 거였다.

목이 안 좋은 지인들이 가끔 찾는 거여서 돌배가 익고, 도라지 살이 차오르는 요즘 계절부터 이른 봄까지 아내는 도라지고를 만들곤 했다

아내는 떠나고 홀로 남았다.

어제 들깨타작 마무리한다고 죽자사자 도리깨질을 한 탓인지 온몸이 뻐근했다. 하루 쉬어야지 하는데 이 한가을에 쉴 수가 있나. 산언저리 밭에 심은 산마라도 캐 들여야 할 것 같아 손수레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집터 닦는 공사장을 지나는데 공사장 한쪽에 버려진 듯 쌓여있는 나무등걸이 한눈에 들어왔다. 집터에 있던 감나무와 돌배나무와 호두나무를 잘라 모아둔 거였다.

저 나무는 어쩐대요?”

팔짱을 끼고 포클레인 일하는 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인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버릴 거요. 저기 길 아래 밭뙈기가 이집 밭이라면서 거기에 버리라네요.”

저 나무 큰 거 내가 잘라 가져가도 되나? 화목으로 하면 좋겠는데.”

그러세요. 버리면 썩을 건데요. .”

그이는 흔쾌히 말했다.

이런 횡재가 있나 싶었다. 땔감나무를 해 나르려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이렇게 간단히 나무를 얻을 줄이야. 가져가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 엔진톱을 챙겼다. 내내 묵혀두었지만 엔진톱은 시동이 잘 걸렸다.

점심나절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나무를 해 날랐다. 나무는 족히 두 달 땔감이 되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지나가던 이웃 두부박샌댁이 덩달아 좋아했다. 일찍 깬 닭이 낱알 한 톨 더 찾아먹는다는 말이 떠올라 나무를 나르는 내내 실실 헛웃음이 났다. 실은 뼛속까지 차있는 욕심을 엿본 듯해서였을 것이다.

바깥마당 귀퉁이를 가득 채운 나무를 보고 있으려니 뿌듯했다.

서산으로 해가 뉘엿거렸다.

저녁밥을 챙기러 들어가는데 뭔가 허전하고 빈 것 같아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문득 밝은 불빛이 있고, 마주보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잔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면소재지 개인택시를 불렀다.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지금 시간에 무슨 일로 나가세요?”

개인택시 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 그냥 짜장면이나 한 그릇 먹을까 하고요. 집사람도 어디 가고 없어서.”

면소재지 초입에 자리한 농협 앞에서 내렸다. 면사무소가 있는 방향에선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고, 길 건너편에 호떡과 어묵을 파는 조그만 포장노점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시각, 이렇듯 밝은 불빛을 본다는 것이 얼마만인지 가슴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포장노점 안을 기웃거렸다. 마천이발관 얼굴 넓적한 이발사와 가끔 마을에 고장 난 경운기나 관리기를 고치러 왔을 때 만난 농기구 수리점 사장이 소주병을 앞에 놓고 어묵꼬지를 베어 물고 있었다.

불쑥 포장노점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들이 눈인사를 했다. 서로 말을 많이 섞어보지는 못했어도 오며가며 만난 얼굴이라 알만한 사이였다.

어쩌다 면소재지에 나가 이발사를 마주칠 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읍내 목욕탕에 갈 때 이발을 하기 때문에 마천이발관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게 마음에 걸려 어떤 때는 눈길을 피하기도 했다.

어쩐 일로 여기를 다 나오시고? 저쪽으로 앉으시지.”

농기구 수리점 사장이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아이구, 여기 이런 자리가 있었네요. 저녁시간엔 처음 나와 봐서.”

소주와 어묵을 시켰다. 이발사와 농기구 수리점 사장에게 술을 권했다. 나도 이발사가 따라주는 술잔을 받았다. 어묵꼬지를 간장에 찍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거였다.

아하,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이 있긴 있었지.

도시에서 살던 시절이 떠올랐다. 진주 상봉동 못안골 초입 주택에서 살았다. 대문 앞은 체육공원이고, 큰길 건너편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밤이 늦어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아내를 불러내어 그 포장마차에 들곤 했다.

엉덩짝이 펑퍼짐했던 주인아낙은 우리 내외를 유난히도 반겼다. 벌써 열다섯 해 전이다. 세월은 물처럼 흘렀고, 나는 어느새 늙은이가 되어 이 낯선 면소재지 거리 포장노점에서 어묵꼬지에 잔술을 마신다.

마천 오신지 꽤 되었지요?”

농기구 수리점 사장이 잔을 건넨다.

벌써 열다섯 해로 접어들었네요.”

잡다한 대화가 오가고, 몇 순배 술잔이 돌고, 구워놓은 지 제법 되었음직한 세 개 남은 호떡을 사들고 다시 거리에 나섰다.

철물점은 벌써 문을 닫았고, 흑돼지구이집은 파리만 날리는 듯했다. 2층 당구장에선 밝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생맥주치킨집 간판 불빛은 요란하게 깜빡거린다. 텅 빈 면소재지 중앙로를 천천히 걸었다.

젊은 시절, 내 고향 하동 옥종 면소재지와 같은 느낌의 거리였다. 소주와 양주를 파는 술집 주희네는 손님이 들었을까. ‘훈이노래연습장은 왜 간판 불을 켜지 않았을까. 지난해 불타고 다시 지은 마천할인마트는 대낮처럼 환한 불빛을 토해낸다.

옛날 손짜장 중국관에 들었다. 주인내외가 화들짝 놀란다.

장사 하지요?”

그럼요. 우리집 브이아이피 손님인데 안 해도 해야지요.”

일을 하거나 비가 내리는 날 이웃끼리 모일 때면 가끔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달시켜 먹는데 요즘은 가을일이 많아 배달시키는 횟수가 늘었다. 게다가 한 번 시키면 한두 그릇이 아니라 예닐곱 그릇이나 되었다. 며칠 전에는 한번 시키는데 매상이 구만이천 원이나 되어 이과두주 한 병을 서비스로 가져오기도 했었다.

볶음밥 해주세요. 낮에 수제비를 먹어서 저녁엔 밥으로.”

면소재지 중국집에 앉아 볶음밥을 먹었다. 밥을 먹는 동안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홀 서빙을 하는 안주인이 누군가 마시고 남겼을 법한 반 병 남은 소주를 내왔다. 눈치가 빨라 내 마음을 읽은 듯하다.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잔. 나는 어느새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택시를 부를까 하다 집까지 걷기로 했다. 한 시간이면 집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먼 옛날, 풋풋한 숫총각이 아가씨를 만나러 꼭 이 거리만큼의 밤길을 자주 걸었었다. 지금은 아내가 되어 있는 그 아가씨를 위해 십리 밤길을 마다않고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미루나무 가로수가 별을 매달고 서있던 그 신작로가 지금 여기 이 길 위에서 내 발걸음을 끌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시간이었다. 저녁나절 어스름이 깔리면 이렇게나마 외출을 하고, 옛 시절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진 하루였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살아야지. 너무 허겁지겁 살았어.

면소재지를 빠져나오자 널찍한 공터가 있고, 거기 촤르르 촤르르 영사기가 돌아가는 가설극장이 있고, 도둑영화 보려고 천막 주변 어둠 속에서 천막 안으로 숨어들어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소년이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십 리 길 신작로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늙수그레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빛과 별빛이 함께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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