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언저리에 붙어있는 밭은 이런저런 잡다한 것을 심었다. 그래서 하루도 발걸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는데 중간에 사방댐을 만들어 물웅덩이가 커다랗게 생긴 곳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사방댐 다리 위에서 물웅덩이를 내려다보곤 한다.

지난해 긴 장마에 비가 많이 내린 뒤로 물웅덩이에 피라미가 살기 시작했다. 장맛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물고기 그림자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아래쪽에선 거슬러 오를 수 없을 만큼 댐 석축이 높으니 필경 골짜기를 가득 채운 장맛비에 골짜기 위쪽에서 떠내려왔을 것이다.

한 해를 지나면서부터 피라미는 몸이 불어 큰 놈은 제법 손바닥만 해졌고, 번식을 했는지 개체수도 많이 늘어 떼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다시 큰 비가 내리면 어디로든 떠나련만 올해는 하늘이 잠잠하다.

어제 아침, 밭을 둘러보러 가다 물웅덩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무엇인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드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주 잠깐 사이에 녀석은 물웅덩이 중간쯤에서 삐쭉 목을 내밀더니 금세 위쪽 달뿌리풀 덤불 속으로 줄행랑을 치는 것이었다.

수달이었다. 물고기가 살기 시작하니 수달이 기웃거린다. 이 산골에서 만난 수달이 반갑기도 해서 잠시 녀석이 사라진 달뿌리풀 덤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수달을 만난 상쾌한 아침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산언저리 밭은 평온했다. 가끔 나타나는 족제비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아침산책을 나왔을 때 담비 삼형제가 폴짝폴짝 뛰어가던 밭이다.

단호박 수확한 이랑은 풀이 한가득 자라있었다. 고라니가 쉬어갔는지 풀숲 여기저기에 앉은자리가 생겼다. 감자를 수확한 이랑에 심은 팥은 가뭄 속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 호박덩굴은 여전히 무성하고, 여기저기 둥글둥글한 호박이 누렇게 물들어간다.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콩밭도 싱싱하다.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콩 모가지를 따주어야 가지치기를 잘 해 콩이 많이 열린다고 했는데 바빠 돌보지 못해서 콩대가 허리춤까지 차오른다. 산마 덩굴은 풀숲에서 풀과 함께 자라고, 겨우내 먹으려고 심어둔 대파는 북을 하지 못해 겉잎이 누르팅팅하다.

우엉은 곧 캐야 할 정도로 자랐고, 황기도 활짝 꽃을 피웠다. 올해 처음으로 이랑을 널찍하게 잡아 심은 생강은 여느 해보다 작황이 좋다. 가뭄에 취약한 토란은 아직 크게 자라지 못한 채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풋호박 두어 개 따들고 아래쪽 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노동을 해야 할 밭은 아래쪽에 있다. 김장 채소를 심기 위해 밭갈이를 했는데 며칠 전부터 괭이질로 이랑을 지어가는 중이다. 이제 절반 남짓했으니 하루 이틀 아침이면 끝날 판이다.

법화산 등성이로 해가 떠오른다. 몇 번 괭이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랑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였다. 괭이 끝자락이 막 흙속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주변 흙이 푸스스 흩어지더니 불쑥 두더지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놀란 녀석은 허둥지둥 흙 속으로 다시 몸을 숨긴다. 녀석이 파고 들어간 방향은 괭이질을 계속해 나가야 할 곳이어서 얼른 괭이로 녀석을 다시 건져 올렸다. 그리고는 이미 이랑이 만들어진 곳에 놓아주었다.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랑을 파고 들어가 숨어버렸다.

이쁜 녀석, 귀여운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는 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느껴진다. 괭이질을 계속하는데 녀석이 숨어든 이랑 곳곳에서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이랑 위의 부드러운 흙이 스륵스륵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수달도 보고, 고라니 잠자리도 보고, 두더지도 본 아침이 즐거웠다. 오후 나절 해가 설핏해서였다. 예초기를 짊어지고 산언저리 들깨밭으로 가는데 점돌이 형 콩밭에서 철망 공사가 한창이었다. 업체 직원과 함께 점돌이 형도 팥죽 같은 땀을 쏟고 있었다.

보조 받았어. 이거 하는데 내 돈 얼마 안 들어.” 형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앗따, 이제 산짐승들은 얼씬도 못하겠네요.”

땀을 훔치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여 대답은 해주었지만 단절의 금을 긋는 촘촘한 철망 앞에 마음이 켕겼다. 너른 콩밭 밭두렁을 따라 쭉 박아놓은 철망 지주대가 뉘엿거리는 햇살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지난해 고구마 몇 이랑 심었다가 모조리 산돼지에게 빼앗기더니 급기야 야생동물 방지용 철망보조사업을 신청한 모양이다. 얼추 예닐곱 마지기나 되는 농지를 철망으로 빙 둘러치자면 사나흘은 족히 걸릴 공사였다.

나도 저런 철망 공사를 해볼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서너 해 전이었다. 개울 건너 길가 임대한 밭 500평에 고구마를 심었다. 마을과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둔 지척이어서 산돼지는 피해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산돼지는 비웃듯 하루걸러 한 번씩 밭을 다녀갔다. 고구마가 새끼손가락만 해졌을 때부터였다. 한 번 다녀갈 때마다 정확히 고구마 쉰 포기 정도를 해치웠다. 그렇게 한 달 내내 들락거렸다. 그해 고구마 농사는 100% 망했다.

산돼지가 두어 번 고구마밭을 드나든 뒤 면사무소를 찾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보상 제도를 이용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했다. 야생동물 침입방지용 철망설치 보조사업을 신청해 보라고도 했다.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피해보상신청서를 제출하고 가을을 기다렸다.

보상금 수령하게 도장 가지고 나오세요. 계좌번호도 필요하고요.” 연말이 되어 담당 공무원에게서 보상금이 십 육만 원쯤 나왔다는 전화가 왔다.

모종 값이 오십만 원이나 들었는데......”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홧김에 전화를 끊어버렸더니 금세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거였다. 나는 그깟 것 안 받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며칠 뒤 직불금 수령계좌로 피해보상금이 입금되었다.

면사무소로 달려가 담당 공무원에게 왜 내 저항권을 함부로 빼앗느냐.’ ‘왜 내 계좌를 함부로 쓰느냐.’ ‘직권남용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아니냐.’며 한 판 걸쭉하게 화풀이를 하고 돌아왔지만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예산이 모자라서 그래요. 조금뿐인 예산으로 야생동물 철망보조사업에 많이 쓰다 보니 직접 지불하는 피해보상금은 모자랄 수밖에 없지요.”

곁에서 지켜보던 공무원이 딱한 마음에 나를 위로한다며 던진 말이었다. 산언저리 밭 곳곳에 저런 철망을 치기 시작했다.

이태 전 마을 건너편 하쌤 논배미에 철망이 들어서면서부터 너나없이 철망보조사업 신청을 한다고 법석이었다. 이듬해는 마을 끄트머리 김씨 그 너른 논배미도 철망을 둘렀다. 이제 야생동물이 나다닐 곳이 차차 줄어들고 있었다.

가는골 서씨 고사리밭 주변은 조그만 농로 하나만 가운데 남기고 양쪽에 철망이 들어섰다. 한번은 그 사잇길을 가는데 혹시라도 산돼지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피할 길이 없는 상황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점돌이 형 밭을 빙 둘러쳐진 철망은 은빛으로 반짝반짝 눈이 부셨다. 이제 고라니고 산돼지고 너구리고 산토끼고 저 밭으로 들어가기는 영 글렀다. 저 밭은 점돌이 형 부부만 들어갈 수 있는 밭으로 변해버렸다.

아차차. 그러고 보니 우리 밭이 큰일이다. 점돌이 형 밭에 못 들어간 산짐승들이 우리 밭으로 몰릴 것 같았다. 우리 들깨밭에 숨어들어 들깻대를 마구 분질러놓을 것 같았다. 우리도 철망사업을 할까. 그래도 어찌 그리 야박하게 밭에 촘촘한 철망을 두르랴.

산짐승 발자국도 더러 찍히고 산짐승 똥도 뒹굴어야 건강한 밭이지. 산돼지와 다투기도 하고, 고라니와 교감도 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지. 번쩍이는 철망만 두른다고 해결될 일인가. 야생동물을 미워하고 멀리한다고 끝날 일인가.

예산을 조금 더 늘려 잡고, 철망보조사업으로 쓸 예산을 피해농가에 직접 지불하는 편이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쇠말뚝을 박고 철망 두른 논밭 속에서 곡식을 가꾸고 채소를 기른다고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울까. 아름다운 농촌의 모습과 넉넉한 농부의 모습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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