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여러분. 오늘 우리 마을에 가수 남진이 옵니다. 우리 마을을 테레비 방송국에서 촬영하러 옵니다. 아홉시 반까지 회관으로 모여 주십시오.” 동이 트기도 전에 마을 확성기가 골짜기를 울렸다. 아홉시 반이 되도록 서너댓 번은 울렸을 것이다. 어슴프레 날이 밝아올 무렵 밭에 나와 감자밭고랑 김매기를 하는데 아침 내도록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며칠 전이었다. 마을 이장이 전화를 해왔다. “부인이 음식을 잘한다면서요. 방송국에서 우리 마을 촬영을 나오는데 고사리 음식을 찍는대요. 가수 남진이도 온대요. 부인이 고사리 요리를 해주면 좋겠는데.” “허어 그 참. 아내가 원체 방송 나가는 걸 싫어하니 알아보고 전화하지요.” 답은 그리 했지만 물어보나마나 안 할 것은 뻔할 뻔 자였다.

생각대로 아내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 “남진이 누군데요? 요리산가?” 보름이가 끼어들었다. “아니, 가수야. 트롯 가수. 카페도 찍자고 했다면서?” 방송작가로부터 보름이 카페도 촬영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안 한다고 했어요. 방송사도 마음에 안 들고.” “카페는 나와도 되는데. 돈 안 들이고 광고도 되잖아.” 방송 안 하겠다던 아내의 말엔 아쉬움이 가득 묻어있었다.

점심나절이 지났는데도 평상이 썰렁했다. 모두들 남진이 온다는 소리에 마을회관으로 몰려간 듯했다. 마을회관에 나가지 않은 창원이형이 홀로 가보패를 떼고 있었다. 오후 들면서 마을회관 앞마당에 공연이 있을 거라는 이장의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이라고 다 모아봐야 두 다리로 걸어 모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진을 아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며, 남진이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아는 사람은 그 가운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한 사람이라도 더 모으려는 이장의 필사적인 노력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했다.

산그늘이 조금씩 골짜기로 내려올 무렵 한 떼의 이웃이 평상으로 몰려왔다. 평상은 삽시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마침내 촬영이 끝난 모양이다. “왜 남진이는 노래도 한 곡 안 부르는 겨.” 젊은 시절 남진이 노래를 좋아했다는 유씨가 평상에 엉덩짝을 붙이자마자 거칠게 투덜거렸다. “남진이가 안 부르면 누가 노래를 불렀어?” 마을회관에 나가지도 않고 창원이형 가보패 떼는 것을 지켜보고 앉았던 성샌댁이 말을 받았다.

홍잠언인가 하는 꼬맹이가 서너 곡 부르더만. 남진이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그럴 거면 뭐한다고 남진이 온다고 난리를 치고 지랄이여.” “홍잠언이가 누구여. 가수여?” 창원이형이 화투패를 걷으며 유씨를 향해 돌아앉았다. “가수지. 꼬맹이 가순데 노래를 얼마나 잘한다고.” 텔레비전을 틀었다하면 트롯 노래방송에 채널을 고정시키는 영남아지매가 홍잠언이가 손주라도 되는 양 끼어들었다.

특급 가수가 이런 촌구석 노인네 스무나뭇 모인 자리에서 노래를 하겠는가.” 나도 방송이야기에 말을 섞었다. “젠장, 하루 종일 생고생만 했네.” 느지막이 평상을 찾은 오샌댁이 짜증을 냈다. “? 자네도 방송 찍었는가?” “아유, 왜 고사리만 찍는가 몰라. 그런 줄 알았으면 안 나갔지.”

몇 년 전 오샌댁이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진행하는 꽤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서 김부각 만드는 장면을 찍었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오샌댁은 김부각 주문전화를 많이 받게 되었고, 요즘도 김부각 만드는 것을 일로 삼았다. 이번 방송에서도 김부각 만드는 것이 찍힐 거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김부각은 쳐다보지도 않더라는 거였다.

그만큼 주문 받으면 됐지 또 얼마나 더 팔아보려고 그리 욕심을 내쌓는가.” 투덜거리는 오샌댁을 향해 영남아지매가 툭 쏘아부쳤다. 얼굴엔 부기가 가득하고, 허리가 안 좋은지 걸음걸이도 엉거주춤해진 오샌댁이었다. 그런 오샌댁을 보는 이웃들의 눈치가 맵찼다. 하루 종일 방송사 촬영현장에서 부대낀 오샌댁은 계속 씩씩거렸다.

아니, 출연료는 주냐니까 대답도 안 하더라고.” 욕심 많이 내기로 유명한 오샌댁 다운 모습이었다. 세상이 험해 우리도 오샌댁을 걱정한 적이 있었다. 김부각 만들어 파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 법적으로도 문제 될 소지가 있어서 저러다 큰 탈이라도 나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무동 가는 길 삼거리에서 손두부를 만들어 파는 집이 있었는데 누군가 민원을 넣어 엄청난 벌금을 맞았다는 소문이 떠돌던 때였다. 그 시기 이웃마을 어떤 집은 불법건축물 민원을 받아 집을 뜯어냈다는 말도 들렸다. 허가도 안 받고 식당을 하던 집도 민원에 시달려 문을 닫았다고 했다. 한때 그런 흉흉한 시절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식구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있었다. “등기 받아왔냐?” “저기 책상위에 있어요.” 오후에 읍내 나간 휘근이가 법무사사무실에서 받아온 서류봉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우리 농지를 마련하고 땅문서라 불리는 등기권리증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법적으로 확실한 농지소유주가 되는 날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숟가락도 들지 않은 채 몇 번이고 등기권리증을 살펴보았다.

아버지. 내년엔 꼭 산언저리 그 밭은 농사 포기하는 거예요. 알았죠?” “그래, 알았다니까.” 보름이는 또 다짐을 받고 있었다. 올해는 경운기에 몸을 다친 이웃집 고사리밭까지 맡아서 봄날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렇게 살아가는 내가 보름이 보기에 많이 안쓰러운 모양이다. 나를 볼 때마다 올 봄에 많이 늙으신 것 같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었다. 보름이 다그침에 대답은 했으나 속마음은 내년이 돼봐야 알지.’였다.

벌써 1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온 밭이었다. 비료와 농약을 하지 않았으니 확실한 유기농지인 셈이다. 그렇게 가꾼 밭을 스스로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것이 아깝고, 또 농사를 줄이면 몸이야 편하겠지만 다시 봄날이 와 밭갈이하는 이웃들 앞에서 한갓지게 봄을 맞이하는 것도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이젠 등기권리증도 나왔으니 포클레인 불러 물고랑을 내고, 트랙터 불러 밭갈이를 해야겠다는 내말에 아내가 왈칵했다. “욕심 좀 그만 부려. 또 뭘 심으려고.” “욕심이 아니라 열정이라는 거야. 열정!”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욕심이나 열정이나 그게 그거지.”

사람이 의욕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열정이면 어떻고 욕심이면 또 어떤가. 행동거지에 힘이 있어야 하고, 생각에 생기가 넘쳐야 비로소 사람의 삶이지. 아무리 그래봐야 나는 새로 마련한 우리 농지를 그대로 묵혀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는 아직 농부로써의 삶에 대한 애착이 있고, 열정이 있으니까. 농사짓는 일을 단지 욕심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경스러우니까. 밭을 돌보는 나의 하루하루는 신성하고 거룩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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