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봉씨. 다음 달부터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하지 않을래요?” 이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농사일도 많고, 아직 예순다섯 살이 안 되어 노인이 아니라고 했다. 이장이 내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듯해 속으로 혀를 찼다.

이른 봄부터 마을 이웃들이 노인일자리사업에 동원되고 있었다. 일주일에 사흘, 하루 세 시간씩 마을 골목길 정리와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한창 밭 장만할 시기에 이웃들이 청소한답시고 집게며 빗자루 따위를 들고 골목을 몰려다니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었다.

이 산골 마을에 무슨 할 일이 그리 많다고 여덟이나 되는 이웃 농부들이 하루걸러 한 번씩 마을 청소 일에 나서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그나마 일거리가 꽤 있어 보이더니 그 일이 마무리되자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듯했다.

작업하는 날 잠시 나와 골목 한 바퀴 돌다 보면 삼만 원 정도 되는 품삯을 받았다. 이 산골 마을에서 한 달 삼십만 원이 적은 돈인가. 그러니 이웃 농부들은 농사일이 며칠씩이나 밀려도 이 일에 나서려 했다. 처음 참가자를 뽑을 때는 서로 먼저 하겠다고 법석을 떨어 이장이 골머리를 앓아야 할 지경이었다.

상반기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한 이웃은 열세 명이었다. 마을청소에 여덟, 마을입구 요양원 청소하는 일에 셋, 마을 보건진료소 허드렛일에 둘이었다. 그렇게 많은 주민이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하다 보니 밭 장만할 시기가 되어서도 논밭이 한산했다.

저렇게 해서 농사가 되나하는 걱정도 들었다. 감자밭에 퇴비 내고 밭갈이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도 논밭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이웃마을 트랙터가 와서 밭갈이를 하는 날이면 서로 먼저 하려고 다툼이 나기도 했다.

우리 밭 먼저 해달라고 했는데 왜 새치기를 해?” “트랙터 기사가 하는 일이지 새치기는 무슨 새치기를 했다고 그런대?” 밭 이웃끼리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일로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도 늘었다. 상반기 노인일자리사업 참가자가 정해질 무렵 아랫담 오쌤으로부터 자기네 고사리밭 고사리 꺾겠느냐며 연락이 왔었다. 경운기 사고로 몸을 다쳐 며칠 병원 신세를 졌지만 알고 보니 노인일자리사업 때문이었다.

오씨는 마을 들머리 요양원 잡일에 배치되었는데 매일 나가야 하는 일자리여서 월급도 상당했다. 게다가 부인마저 요양보호사로 일하니 고사리밭이고 뭐고 농사일을 할 겨를이 없었을 거였다.

삼거리 갈림길 옆에 사는 김씨도 요양원에 배치되어 자기네 고사리밭을 이웃 마을 젊은이에게 넘겼고, 당산 옆 박씨도 근근이 이어오던 논농사를 다른 사람에게 내주고 말았다. 농부로써의 삶을 포기하는 이웃이 늘었다.

하반기 노인일자리사업에 나선 이웃 농부들은 무려 서른 명이나 됐다. 아랫담 청소하는 일에 열 명, 중간담 청소하는 일에 일곱, 웃담 청소하는 일에 일곱이었다. 거기에 경로당 관리에 셋, 보건진료소 허드렛일에 둘, 마을 들머리 요양원 잡일에 셋이 배치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매달리니 그들이 일하는 날은 아예 경운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매주 월, , 금요일이 작업하는 날이었다. 그날이면 골목에 연두색 조끼를 입은 청소부대가 나와 득시글거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조그만 마을에 무슨 할 일이 그리 많겠는가. 외지인의 통행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산골이니 무슨 청소할 거리가 생기겠는가. 그저 빗자루나 집게 따위를 들고 다니다 시간 맞춰 일 끝내면 그만이었다.

일꾼도 문제였다. 삼십만 원의 위력은 대단해서 이웃 농부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허리가 아파서 끙끙대던 골목 안 서씨, 두 무릎 인공연골수술로 지팡이에 의지하는 안쌤댁 마저 이 일에 앞장서다시피 했다. 서른 마지기나 되는 잡곡 농사에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던 명철이 형은 부부가 함께 이 일에 나섰다.

그렇게 일주일에 사흘 오전시간을 노인일자리사업에 매달리니 쉼이 있을 턱이 있나. 서늘한 오전시간 다 뺐기고 점심 먹기 바쁘게 논밭으로 나가 땡볕에서 일하는 이웃 노인네들의 삶이 안타깝고 처절하고 가련해 보였다.

하루는 밭일을 나가는데 마을 뒤편 산촌생태마을에 웃담 청소부대가 모여 있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우리 조는 여기 산촌생태마을 청소담당이거든.”

조장으로 참가하고 있는 시끄러비 아지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아니, 여기는 마을에서 외지인에게 임대를 준 곳이잖아요. 여기 사장이 마을 주민을 고용해서 청소를 하든가 해야지 왜 정부 일자리사업 참가자가 여기 일을 한 대요?” “우리가 뭘 알아. 이장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그들은 주차장 풀 뽑기를 하는 듯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주차장 여기저기에 호미가 몇 개 널브러져 있었다.

산림청에서 예산 들여 지어준 산촌생태마을은 마을공동사업장이 아니라 개인사업장으로 운영되었다. 마을에서 운영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낯선 외지인에게 임대료 받기로 하고 임대계약을 해준 곳이었다. 탈법 불법적인 운영이었다.

임차인이 얼마를 벌어 어디에 쓰든 마을에서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시설인데도 산림청은 관리인에게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지급하고 있었다. 군청 공무원은 그렇게 운영되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 몰라라 했다.

도대체 이 나라는 돈이 얼마나 많아서 저러는 거야.” 면소재지에 일보러 나갔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골목에 득시글거리는 노인네들을 보며 택시기사가 짜증을 냈다.

그러게요. 그 동네는 안 그래요?” “아이구, 말도 마쇼. 우리 동네도 걸을 만한 사람은 다 저리 하고 다녀요.” “산삼엑스폰가 뭔가 한다고 예산이 넘쳐나나 봐요. 내년에 군수선거도 있잖아요.” “농사라도 끝내놓고 저런 일을 한다면 좀 좋아?” “그러니까 말이오. 이 더운 날씨에 저 일 하고 또 자기네들 농사일도 하려니까 노인들 건강이 남아나겠냐고.”

저리 일하고 들어가 봐야 밥이라도 따뜻이 차려주는 사람이 있나. 찬물에 식은 밥 한 덩이 말아 먹고 또 밭으로 나가겠지.” “그러게요. 여기 노인네들 현실이 이런데 여기저기 무더위쉼터 간판만 달아놓으면 뭐하냐고요.”

인적 끊긴 마을회관 앞에 큼지막하게 걸린 무더위쉼터간판이 불타는 햇볕에 녹아내릴 듯 번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농사가 어디 쉬운 일인가. 농부가 그리 한가한 사람인가. 농사는 나랏일의 근본이요, 농부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지 않은가. 노인일자리라는 미명 아래 농사는 일당 삼만 원에 밀리고, 농부는 잡부가 되어버렸다.

차라리 그런 예산으로 농부들 점심식사 한 끼라도 건강하게 차려주면 어떨까. 저런 예산으로 젊은 농부를 고용해 하루 서너 시간씩이라도 노인 농부들의 농사를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농부가 마음 놓고 농사를 짓도록 도와주고 배려하는 정책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굳이 저런 정책 같지도 않은 정책으로 예산을 쓰느니 그 정도의 돈은 거저 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바이러스의 시절 어마어마한 재난지원금을 생각하면 이리 밀리고 저리 내쳐지면서도 꿋꿋이 이 땅을 일구어 온 농부들에게 얼마 정도 생활안정자금을 줘도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쯤에서 농민수당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농부를 잡부로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농부로써 자존감과 품격을 지킬 수 있도록 농민수당이나 농민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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