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겨울을 재촉하는 날씨다. 개울 건너 언덕바지 느티나무 잎이 구름장처럼 날렸다.

양파모종 옮겨 심은 밭을 둘러보고 소나무 숲 언저리 모과나무를 살폈다. 올해는 모과가 예닐곱 개밖에 달리지 않았다. 보름이 카페에서 쓸 모과를 어디서 구하나 하는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오늘 읍내 나가?”

집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물었다.

안과에 가봐야지. 아무래도 가서 진료는 받아봐야지.”

그제 비가 내려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날씨여서 마음먹고 고미 털을 깎았다. 털이 너무 덥수룩하게 길어 방에 조금만 있어도 더워 숨을 헐떡거렸다. 밤이면 거실에 나가려고 낑낑거려 몇 번씩 문을 여닫아야 했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일이 귀찮기도 하거니와 저 딴에는 얼마나 괴롭겠나 싶어 작심하고 전기바리깡을 들었다.

고미 털 깎는 시간은 자그마치 세 시간이나 걸렸다. 털이 촘촘하고 엉겨 붙기도 해서 전기바리깡으로 좀체 잘리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하는 털깎기여서 고미도 자꾸만 몸을 보채 일이 힘들었다.

털을 다 깎고 몸을 씻기고 거실로 나오자 아내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당신 눈이 왜 그래?”

? 내 눈이 어때서?”

눈에 핏줄이 터졌나봐. 온통 벌겋다.”

얼른 거울 앞으로 갔다. 오른쪽 눈동자가 빨갰다. 실핏줄이 터진 것 같았다.

가을걷이 하느라 피곤한데다 고미 털 깎느라 오랫동안 내려다보며 신경을 써서 그런 거겠지 했다.

하루 이틀 지나도 눈은 그대로였다. 암만해도 안과에 가봐야겠다 싶었다.

올해 들어 병원을 자주 찾았다.

들깨타작을 마친 다음날부터 옆구리가 결리기 시작했다. 잠을 잘 때 몸을 뒤척이다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아프기도 했다. 담이 붙은 거라고 여겼다.

며칠 지나면 나을 거라 여겼던 옆구리 통증은 날이 더할수록 강해졌다. 팔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고, 몸을 틀기조차 어려웠다. 아내가 부항기를 들고 다가왔지만 나는 곧 나아질 거라며 한사코 거부했다. 마침내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렸다.

날씨가 꾸중중해선지 읍내 병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다들 노인네들이었고, 옷매무새를 보아하니 산골 농부들인 듯했다. 논밭에서 보낸 평생, 골병이 들어 틈만 나면 병원을 찾는 이들이었다.

접수를 하고 노인네들에 섞여 차례를 기다리는데 푹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살다간 몇 년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저런 모습으로 이 병원을 기웃거리겠지 싶었다.

컴퓨터 앞에 앉은 내과의사는 젊었다. 청진기를 목에 걸지 않은 의사를 참 오랜만에 본 듯했다.

옆구리가 결린다고요? 어디쯤이?”

한 열흘 전부터 여기가 자꾸 결려요. 갈수록 더하고.”

그쪽은 간 신장 담도 등등 주요한 장기가 있는 곳이니 씨티 촬영을 해보는 게 좋겠어요. 간호사 따라가서 엑스레이 찍고, 씨티 찍고 오세요.”

간호사는 복도 끝을 가리키며 엑스레이 찍고 주사실로 오라고 했다.

촬영기 앞에 서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끝없이 주저앉는 느낌이었다. 위잉 위잉, 내 몸 구석구석을 뚫고 어디론가 방사능이 지나가는 듯했다. 간과 콩팥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여기 서명하세요.”

주사실로 돌아오자 간호사가 조영제를 투여하는데 필요한 동의서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간호사의 손끝은 이미 이름을 쓰고 서명하는 칸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영제가 뭔데요?”

씨티 촬영할 때 사진이 선명하게 나오게 하는 거예요.”

내용을 대충 훑어보자 십만 명 당 한 명 될까말까한 부작용이 있다는 내용이 언뜻 보였다. 얼른 서명이나 하지 뭘 그리 보느냐는 듯 간호사는 서명란에 손가락을 계속 짚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병원의 포로가 되어 이리 하라면 이리 하고 저리 하라면 저리 하는 신세가 되어있었다.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주사바늘이 커 좀 아플 거예요. 그리고 약물이 들어갈 때도 좀 아프고.”

간호사는 버려진 내 팔을 들고 툭툭 치더니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씨티 촬영실 앞으로 가자 먼저 와서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가 몇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보세요. 이게 신장이고, 이게 간입니다. 다 말짱합니다. 다행이네요. 아마 근육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근육이완제하고 뭐 이런 거 처방해 드릴게요.”

씨티 촬영을 마치고 다시 내과의사 앞에 앉았다. 젊은 의사는 컴퓨터를 내 앞으로 돌려 화면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화면 속에 간과 콩팥이 또렷이 보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담이 붙었다고 여기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서는데 궂은 날씨에 한 줄기 차가운 빗줄기가 후두둑 지나갔다.

군대 가서 맞은 주사와 이빨 치료하면서 맞은 마취주사가 전부야.”

어느 자리에서건 건강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자랑처럼 이 말을 했었다.

사실 그랬다. 술을 많이 마셔도 다음날 점심나절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멀쩡하게 살아났고, 그동안 정기건강검진도 올해 처음 받아보았으니까. 이 나이에 밥은 머슴밥으로 고봉이요, 씨락된장국은 양푼으로 한가득 먹으니까.

아버지야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아흔일곱까지 사셨지. 숙부도 고모도 아흔 넘게까지 살았고, 외삼촌도 이모도 아흔 넘게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니까.

당신 술 그렇게 마시고, 운동 안하고, 고기 좋아하고 그러면 안 돼. 보험 하나 들어놓지도 않았으면서.”

아내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나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걱정도 팔자다. 밥 잘 먹고 똥 잘 싸지. 집안에 병력 없지. 뭐가 걱정이야. 나는 멀쩡하다고.”

그러나 옆구리가 결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담이 붙은 거라면 대개 사나흘 뒷면 풀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열흘이 가도 안 풀리고 통증이 더 심해지는 거였다.

견디다 견디다 이거 혹시 간덩이가 굳어버린 거 아닐까. 맹장에 염증이 생긴 거 아닐까. 췌장이나 대장에 뭔가 탈이 생긴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마침내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한시름 놓긴 했어도 이렇게 살아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접수창구에서, 씨티 촬영실 앞에서 기다리던 수많은 환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성긴 머리카락에 수척해진 얼굴들. 함께 따라온 보호자의 근심어린 표정들. 바깥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병원 분위기가 내 인생의 앞길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전화기를 꺼냈다. 산언저리 콩밭 주인 전화번호를 찾았다. 내년부턴 농사를 포기할 거라는 전화를 해주려고 했지만 전화기에 번호가 남아있지 않았다.

나 오늘 무밭 무 갈무리해야 해서 안과 안 갈래. 당신 읍내 간다면서. 다녀오면서 안약이나 하나 사다 줘.”

아이고. 눈은 저래가지고. 병원에 가야 낫지.”

어허 참. 눈에 실핏줄 터진 게 무슨 병이야? 안약이면 돼. . . 어제보다 많이 풀렸잖아.”

나는 끝내 안과에 가지 않았다.

담이 많이 가라앉자 산언저리 콩밭 주인께 전화할 생각도 잊어버렸다.

산다는 것이 생각대로 잘 되나. 이리 생각하기도 하고, 저리 행동하기도 하지. 그렇게 살다보면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게 인생이지.

삶의 처방전 약물은 달콤하기도 하고 때로 쓰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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