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31 (일) 맑음

아내와 함께 김해시 장유면에 있는 장유누리길에 다녀왔다. 오전 9시 무렵 진주의 집을 출발하여 국도 2호선을 따라 나아갔다. 2번 국도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부산광역시 중구에 이르는 길이 377.9km의 일반국도로서 1957년부터 2002년에 걸쳐 건설된 구 도로이다. 남해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경전선(慶全線) 철로와 더불어 국토의 최남부를 관통하는 간선도로였는데, 지금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특히 진주를 출발하여 마산의 진전에서 거제·고성으로부터 오는 14번 국도와 만나기까지는 아주 한적하여 마치 전세 낸 듯한 기분이므로, 우리 내외가 이즈음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아침에 안개가 짙더니 얼마 후 개이고, 들판의 논은 가을 추수가 거의 끝나가는 풍경이었다.

마창대교를 경유할 작정이었는데, 내비게이션을 무료도로 위주로 설정해둔 까닭인지 갈림길에서 마산시내 방향을 지시하므로, 아차 하는 사이에 그곳을 지나쳐버리고 마산과 창원 시내를 경유하는 코스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처럼 통과하는 마산항의 풍경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늘어선 창원의 주도로 주변 단풍도 볼만하였다.

 

사진1. 장유화상사리탑 이정표
사진1. 장유화상사리탑 이정표

1시간 반 정도 후인 1042분에 대청계곡주차장에다 차를 세우고, 근처에서 길을 물어 7~8분 정도 걸어 내려와 장유누리길의 시작점인 동림선원(대청계곡길 168-14) 부근에 도착하였다. 동림선원에도 드넓은 주차장이 있지만 유료이므로, 좀 위쪽의 무료주차장을 이용한 것이다. 동림선원은 대한불교조계종에 속한 절인데, 기와집이 아니고 3층으로 된 양옥 건물이었다. 은암선()문화센터와 그 안에 수카바라는 북카페가 있고, 동림불교대학·명상아카데미·토요경전강독과정 등을 운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그곳에서 4.5km 떨어진 곳에 장유암(長遊庵)과 장유화상 사리탑이 있음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동림선원에서 멀지않은 대청천 상류에 장유폭포가 있고, 그보다 더 위쪽 장유암 경내에 우리나라 최초로 불법을 전파했다는 장유화상의 사리탑이 있는 모양이다. 장유화상은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배를 타고 와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거등왕 등을 낳았다고 기록된 허황옥(許黃玉)의 오빠로서 설화 상으로만 전해 오는 인물인데, 보옥선인(寶玉仙人)이라고도 한다.

나는 199451일에 도선을 타고서 가덕도로 들어가려고 오늘날의 부산신항에 있는 용원동에 이르렀다가 허황옥이 상륙한 장소임을 표시하는 비각을 본 바 있었고, 20001017일에 김해의 신어산에 올랐다가 정상 부근의 영구암(靈龜庵)에서 장유화상이 그 절의 전신인 구암사(龜巖寺)와 더불어 산중턱의 동림사(東林寺)와 서림사(西林寺, 현재의 은하사)를 창건했음을 적은 안내문을 읽은 바도 있었으며, 2014927일 가야산 칠불리지에 올랐을 때는 가야산의 최고봉인 칠불봉이 왕후의 10왕자 중 일곱 왕자가 장유화상을 따라가 그 부근에서 수도하던 곳임을 알았다. 그리고 지리산 칠불암은 장유화상이 그 7왕자를 데리고 가야산으로부터 옮겨가 성불케 한 장소라고 전해오고 있다. 이곳 장유라는 지명 또한 그에게서 유래하는 것이다.

장유누리길은 동림선원 주차장 진입로 부근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데, 우리는 그곳 지리를 모르므로 첫 안내판이 서있는 곳에서 대청천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는 건너편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모양으로서, 도중의 시작점으로부터 몇 km” “남은 거리 몇 km”라고 적힌 이정표가 모두 그쪽 길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장유누리길의 안내판들에는 꼭 가야왕도 올레길이라는 말이 덧붙어져 있었다.

트레킹 코스는 반룡산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형성된 두 하천인 율하천과 대청천 그리고 그 둘이 합류하는 조만강을 타원형으로 연결한 것으로서, 짧게는 반룡산을 한 바퀴 두르는 반룡산 코스 10.6km가 있고 길게는 동림선원까지 이어지는 장유누리길 13.5km의 둘로 나뉜다. 장유의 주요지역을 두루 포괄하는지라 도심 속 산책로라 할 수 있다. 길은 대체로 평탄하여 등산 스틱을 배낭 포켓에 꽂아 갔지만 그것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또한 나는 평복 차림으로서, 얼마 전에 난생 처음 산 블루진 바지에다 티셔츠와 체크무늬 점퍼를 입고, 산티아고 순례길 도중에 산 방수 운동화(알고 보니 태국제였다)에다 머리에는 이탈리아 알프스의 돌로미티에서 산 티롤식 모자를 썼다.

도중의 아파트 단지들에서 소각장 설치를 반대하는 마이크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는데, 그 가운데 “16만 장유시민이라는 말이 있었다. 장유가 김해시에 속하는 하나의 면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웬만한 도시의 규모를 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많아, 진주의 혁신도시인 충무공동에 있는 김시민장군둘레길과 흡사하다는 느낌이었다. 김시민장군둘레길도 세 개의 코스로 나뉜다.

 

사진2. 대청천변
사진2. 대청천변

둔치 길도 있으나 우리는 주로 냇가의 둑길을 따라 걸었다. 도중의 카페 거리에서 아내는 디자인이 예쁘다면서 양말을 한 뭉치 샀다. 실은 카페뿐만 아니라 음식점도 많아 도시락을 준비해올 필요도 없었다. 그러므로 배낭을 맨 사람은 우리 외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꽤 많아 코스에 따라서는 자전거 일색인 곳도 있었다. 대청천에는 백로가 무리를 지어 서성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4km 가까이 걸은 지점의 징검다리 건너편에 Perfect Hotel이 마주보이는 장소에서 점심을 들었다. 식사를 하면서 보니 백로 한 마리가 물속의 피라미를 부리로 쪼아 먹는데, 냇물 속에 그런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므로 물은 아주 맑은 모양이었다.

코스가 도심 지역을 벗어나자 억새 비슷한 꽃이 핀 풀이 우거진 한적한 시골길로 바뀌었다. 조만강이 가까워질수록 강폭은 넓어지고 그런 곳에는 군데군데 오리 떼가 떠다니고 있었다. 꽤나 긴 이 코스에서 화장실이 도무지 눈에 띄지 않더니, 조만강파크골프장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하나 발견하였다. 두 개울물은 조만강에서 합류하여 서낙동강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파크골프장은 조만강 가를 지나 반환점에 접어든 율하천으로까지 이어져 1km 정도는 될 듯하였다. 나는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부산으로 가다가 건너편에 예전에는 없었던 대규모 위락시설이 들어선 것을 보고서 무엇인가 하고 궁금했던 바 있었는데, 오늘 보니 롯데아울렛 부근에 있는 롯데워터파크였다. 시멘트로 인공 바위산을 조성해 놓은 것이 디즈니랜드를 방불케 하였는데, 오늘 바로 그 옆을 지나치게 되었다.

 

사진3. 율하천변
사진3. 율하천변

율하천 가를 걷는 도중에 두 번째로 화장실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김해율하유적전시관 뒤편에 설치된 것이었다. 그 부근에 꽤 넓은 율하유적공원이 있었다. 두 개의 고인돌공원 및 한 개의 마을유적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유적공원 옆에도 모형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택지개발사업을 시행하기에 앞서 2001년에 실시된 지표조사 및 2004년 실시한 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지석묘, 삼국시대 목곽묘 및 석곽묘, 고려시대 건물지, 조선시대 민묘 및 건물지 등이 대거 확인되었다고 한다. 규모는 25,909에 달하는 것이었다. 마을유적에서는 가야시대의 도로와 선착장으로 추정되는 잔교(棧橋) 시설 등이 확인되었는데, 이 도로는 조선시대와 근세까지 창원과 진해로 가는 주요 교통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고인돌은 상석(上石)과 뚜껑돌 없이 석곽형(石槨形)의 매장 시설만 확인되었는데, 유적전시관 부근에 생울타리로 둘러싸여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오늘의 트레킹에서도 여기저기서 꽃이 한창인 금목서를 만나게 되었고, 나의 외송 산장에서는 아직 개화한 것을 보지 못한 은목서 나무에 꽃이 만발해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율하천의 상류에서부터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져, 개울로부터 멀어진 고갯길을 한참 지나서 출발지점인 동림선원에 닿았고, 오후 327분에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소요시간은 4시간 45, 앱 상으로는 도상거리 16.43, 총 거리 17.05km, 걸음 수 22,413보를 기록하였다. 돌아올 때는 지름길인 불모산터널과 마창대교를 지나서 2번 국도에 합류하였기 때문에, 한 시간 남짓 걸려 오후 5시 무렵 진주의 집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갈 때와 올 때 모두 바로크 음악을 들었다.

 

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했고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 [남명학의 현장] 1-5권(2013), [국토탐방] 상하권(2014), [해외견문록] 상하권(2014)을 펴냈다.
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했고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 [남명학의 현장] 1-5권(2013), [국토탐방] 상하권(2014), [해외견문록] 상하권(2014)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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