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일) 대체로 흐림 – 다랭이지겟길

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여행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한 오이환 교수는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 여행기록을 모아 [국토탐방], [해외견문록]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편집자
 

아내와 함께 남해바래길 11코스(남파랑길 43코스) 다랭이지겟길에 다녀왔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오전 9시경 승용차를 운전해 진주의 집을 출발하여 3번 국도를 따라서 사천시 삼천포에서 남해군 창선도로 건너간 다음, 본섬에 진입하여 미국마을 앞을 거쳐서 11코스의 출발지점인 가천다랭이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주차장은 차고 넘쳐서 1057분에야 다랭이마을을 한참 지난 지점인 가천마을 표지석 앞 도로변의 여유 공간에다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남해군 가천마을 표지석
남해군 가천마을 표지석

그곳에서 다랭이마을 방향으로 비스듬히 이어진 도로가 있어 입구에서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그 길가에 바래길 표지가 이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므로 그 길로 가면 바래길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따라가 보았다. 도중에 바다 쪽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눈에 띄어 그쪽으로 접어들었더니 그 길은 과거에 군인 초소가 있었던 듯 도중에 철조망이 보이고 콘크리트로 지은 초소 같은 작은 건물도 눈에 띄더니 결국 바닷가의 바위 절벽에 이르러 끊어지고 말았다. 도로 올라와 차를 세운 곳으로 돌아오니, 반대편 방향으로 이어진 바래길 표지가 눈에 띄어 비로소 바른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남해바래길은 모두 19개 코스로 나뉘는데, 그 중 11개 코스는 남해바다를 따라 국토의 남단을 횡단하는 남파랑길과 겹친다. 나는 종래에 아내와 함께 산악회 등을 따라 매주 한 번씩 주말마다 등산을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2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루하게 오래 끌고 있는 코로나19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산악회가 활동을 접었으므로, 이제는 그 대신 승용차를 운전하여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으로 트레킹을 다니고 있다. 이즈음은 7코스인 화전별곡길을 필두로 하여 남해바래길을 걸어 10141312 코스를 차례로 거쳐 역방향으로 오늘의 11코스에 이르렀다.

11코스 다랭이지겟길은 가천다랭이마을 바다정자에서부터 시작하여 항촌선구사촌유구마을들을 차례로 거쳐 평산항으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시점에서 0.7km 혹은 1km 떨어진 지점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셈이다. 아내는 네이버에서 이 코스에 제초가 되어 있지 않아 뱀이 출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오늘은 다리에다 일종의 행건인 스페츠까지 착용하고서 나섰다. 그러나 이미 전체 코스에 제초가 잘 되어 있어 사실상 그것은 필요치 않았다.

걷기 시작한 지 2km가 채 못 된 지점의 바다 풍광이 좋은 그늘진 길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다시 응봉산 중턱 길을 한참 동안 걸어 펜션 단지인 빛담촌을 지나 몽돌해변이 유명한 항촌마을에 다다랐다. 오늘 보니 인접한 거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되지 못한 남해도에 웬 펜션이 그렇게나 많던지 지나가는 곳마다 펜션 천지였다.

며칠 전 저녁회식 자리에서 항촌마을 출신인 극동문화재연구원의 류창환 대표에게 바래길 앱의 지도를 확대하여 마을 모습을 보여주면서 고향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가 알려준 바 있었으므로, 오늘 위성사진 지도를 따라서 그 집을 찾아가 보았다. 근처에 도착하여 마주친 마을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긴가민가하면서 남면로1031번길 8에 있는 은빛 금속대문을 단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마침 그 집 마당에 은빛 승용차가 한 대 서 있었으므로, 대문 안으로 들어가 주인을 찾았더니 밀짚모자 차림인 류 박사의 형 류석환 씨가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부산대 독문과 출신으로서 부산 거제리의 교육대학 부근에 사는데,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지금은 여러가지 사회활동을 하며 틈이 날 때마다 혼자서 이곳 고향집을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팡팡지혜라는 유튜브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도 했다.

항촌마을 류창환 본가
항촌마을 류창환 본가

그의 전송을 받아 바닷가까지 나온 다음, 다시 바래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웃한 선구마을 산중턱에서 트랙터가 밭을 갈고 있는데, 그 옆의 길가에 커다란 호박이 네 덩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선구보건진료소 앞을 지나는데, 지금도 남해군내에서 보건소장을 하고 있는 김향숙 씨가 경상대학교 간호대학 박사과정 재학 시절에 이곳 소장을 맡은 바 있어 당시 아내와 동료인 김은심 교수가 초청받아 와서 강연을 했었다고 아내가 일러주었다. 또한 선구마을에는 2021년 기준으로 수령 약 389년 된 팽나무 고목을 비롯하여 그 주위로 일곱 그루의 고목들이 호위장수처럼 늘어선 쉼터가 있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그곳 원형 벤치에 앉아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길은 끊어질 듯 묘하게 이어져 마침내 종착지점인 평산항을 1.15km 남겨둔 유구마을 외딴 바닷가의 남면로 1651-137에 있는 햇살한스푼이라는 펜션 부근에 이르렀는데, 아내가 지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하므로 오후 422분에 거기서 트레킹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산길샘 앱에 의하면 소요시간은 5시간 25, 도상거리 12.76km, 오르내림 포함 총 거리 13.51km, 만보기의 걸음 수로는 20,917보를 기록하였다. 거기서 카카오택시를 불러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는데, 마침 오는 도중에 눈에 띈 남면 개인콜택시 김종문 씨의 전화번호를 아내의 권유로 촬영해둔 것이 있어 그리로 전화를 걸어 10분 쯤 후에 탑승할 수 있었다.

남파랑길 43코스 안내표지판
남파랑길 43코스 안내표지판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온 다음 갈 때의 코스를 따라 640분쯤 진주의 집에 도착하였다. 운전 중 갈 때는 바흐와 비발디의 대표곡들, 돌아올 때는 바흐의 프랑스조곡을 블루투스로 계속 들었다. 오늘은 챙이 넓고 양쪽 옆이 치켜 올라간 여름용 모자를 썼고, 갈색 등산복 상의가 두터워 좀 더웠다.

 

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했고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 [남명학의 현장] 1-5권(2013), [국토탐방] 상하권(2014), [해외견문록] 상하권(2014)을 펴냈다.
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했고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 [남명학의 현장] 1-5권(2013), [국토탐방] 상하권(2014), [해외견문록] 상하권(2014)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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