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목) 맑음 -구운몽길

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여행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한 오이환 교수는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 여행기록을 모아 [국토탐방], [해외견문록]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편집자

 

미국 작은 누나의 장남 창환이(Dexter Choi)와 함께 오전 8시에 집을 출발하여 남해바래길 9코스(남파랑길 41코스) 구운몽길 트레킹에 나섰다. 보통은 9시에 출발하지만, 이즈음 해가 짧아진 데다, 트레킹 코스도 상대적으로 길고, 또한 창환이가 상경할 시간도 고려하여 한 시간 일찍 나선 것이다. 지난번과 같은 코스를 경유하였는데, 남해 본섬에 이르러서는 삼동면 소재지인 지족리에서 3번 국도를 취해 바다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물미해안도로를 따라 송정리까지 내려간 다음, 19번 국도로 접어들어 다시 북상하였다. 3번이나 19번 국도는 또한 남해도를 순환하는 77번 국도의 일부이기도 하다. 남해도에서 돌아올 때면 내 차의 내비게이션이 늘 남해고속도로 쪽으로 안내를 하지만, 나는 자주 지나다니는 고속도로보다는 풍광이 좋고 비교적 한적한 국도 쪽을 취한다.

오늘 트레킹의 출발지점인 천하마을은 지난 37일 남해바래길을 처음 시작했었던 7코스(남파랑길 40코스) 화전별곡길의 종착점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잘 몰랐었지만, 오늘 보니 송정해수욕장 바로 왼편으로서 상주해수욕장에 못 미친 지점인데, 이 또한 몽돌해수욕장이 있는 곳이었다. 바래길 앱에는 구운몽길의 거리가 17.6km로 나타나 있지만 현지의 남파랑길 이정표에는 15,5km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다음 10코스인 앵강다숲길(남파랑길 42코스)을 우리가 걸었을 때 원천항에서부터 출발하였으므로, 원천에서부터 앵강다숲에 있는 바래길탐방안내센터까지 2.1km가 추가된 것이다. 앱이 만들어진 이후 바래길 코스가 좀 조정된 모양이다. 우리는 935분 도로변에 주차공간이 표시되어져 있는 천하몽돌해수욕장에 이르러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지도상으로 보면 오늘 코스는 거의 대부분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므로 나는 길이 평탄할 것으로 예상하였고, 그래서 창환이는 등산 스틱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야트막한 야산들을 오르내리는 길이 대부분이므로 평소의 다른 코스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천하마을에서 금포를 거쳐 상주해변에 이르기까지는 3.6km의 거리였다. 상주해수욕장은 뒤편에 예로부터 선비들의 유람지로서 유명하여 여러 등산기가 남아 있는 금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경치가 수려한 곳이다. 우리는 그 해변을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상주해수욕장과 금산
상주해수욕장과 금산

산중턱의 대량마을공원묘원에 이르니 그 입구 쪽에 사각형으로 된 나무 정자가 있고, 근처의 나무그늘에 평상도 두 개 놓여 있으므로, 우리는 정자에서 점심을 들었다. 창환이는 집에서나 식당에서도 대부분 그러하듯이 도시락 중의 밥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상주면 상주로에 있는 대량마을의 표지석에는 괄호 안에 큰양아라고 쓰여 있고, 조금 더 나아간 지점에 소량마을이 있는데 그 표지석 부근의 도로나 집들의 주소 등에도 양아로라는 문자가 보이며, 표지석 기단에 소량마을 연혁이 적혀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마을인들은 임진강(경기도) 가에 있는 양아리에서 이주하여 이곳으로 와 살게 되어 전에 살던 곳의 양아리를 그대로 부르게 되었으며 양아리에서 나누어진 작은 마을이라 하여 소량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소량마을을 지나 두모마을에 이르러도 양아리 혹은 양아로라는 이름이 계속 보였는데, 그 다음의 벽촌마을에 이르는 이곳 일대의 마을들을 통틀어서 양아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량마을의 정자에 이르기 전 내 스마트폰의 바래길 앱에서 음성이 들리면서 위성추적장치에 이상이 생겼으니 스마트폰을 끄고서 재부팅하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그러나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무시하고서 그냥 나아갔는데, 1킬로씩 더 진행할 때마다 나오는 안내음성이 들려오지 않으므로 위성지도를 켜보았더니, 이상하게도 현재 위치가 계속 지난 일요일에 걸었던 다랭이지겟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재부팅하여 그 문제는 해결되었으므로 안심하였는데, 이번에는 잘못된 코스로 접어들었을 때 울리는 경고음이 들리지를 않아 두모마을에서 850m 이상이나 바래길을 벗어나 버스가 통과하는 넓은 포장도로를 따라서 계속 걷다가 되돌아오는 일이 발생하였다.

豆毛(드므개)마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서포 김만중이 귀양 와서 죽은 櫓島가 바로 앞에 정면으로 바라보였다. 길을 잘못 들어 지나친 두모마을 버스 정거장의 안쪽 벽면에 서불과차(徐市過此)’ 바위문양과 그 설명문이 붙어있는데, 이곳 두모와 이웃 벽련마을 여러 곳에서 이들과 유사한 문자 또는 문양을 새긴 바위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거북바위라 불리는 바위에 새겨진 篆書 비슷한 모양의 이상한 무늬는 일반적으로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라는 의미의 서불과차로 해석된다. 진시황이 童男童女 500여 명을 주며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명한 서불이 이곳까지 왔음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새겼다는 것이다. 나는 2013119일에 인문대학 교수친목회 야유회에 동참하여 남해 금산으로 왔다가, 이 글씨를 찾아보기 위해 철학과의 신임교수였던 김준걸 씨와 함께 등산로를 따라 19번국도 상의 두모주차장까지 내려온 바 있었지만, 도중 어디에서도 이 거북바위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를 보지 못하여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벽련항에 도착하니 그 선착장에 소설의 숲 노도라 적힌 표지가 있고, 하루에 여섯 차례씩 벽련과 노도를 오가는 도선이 있다는 안내판도 서 있었다. 나는 201044일에 남강산악회를 따라 남해도에 왔다가 혼자서 벽련마을로 내려와 2만 원 주고서 배를 대절하여 노도에 들어가서 김만중의 유적지들을 둘러본 바 있었다. 벽련마을에 노도 문학의 섬 종합안내도가 있었는데, 안내판의 표시가 10번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당시에 비해 새로운 시설물들이 꽤 많이 들어선 듯하였다. 오늘 트레킹 코스는 김만중의 대표작들의 산실이며 앵강만 입구에 위치한 이 노도를 바라보며 걷는다 하여 구운몽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벽련마을과 노도
벽련마을과 노도

상주면의 벽련에서 이 코스의 종점인 이동면 원천항까지 2.9km19번 국도의 갓길을 따라 이어져 있어서 좀 위태로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왼편으로 앵강만의 바다 경치가 가림 없이 조망되므로 경치가 수려하기도 하다. 오후 310분에 원천횟집 앞에 도착하여 오늘의 트레킹을 마쳤다. 소요시간은 5시간 35, 도상거리 13.57, 총 거리 13.79km, 걸음 수로는 26,625보였다. 보통은 산길샘 앱에 나타나는 거리가 이정표 상의 것보다도 좀 많은데 오늘은 오히려 더 적으니, 도중에 바래길 앱의 이상으로 전원을 끄고서 새로 부팅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천에서 카카오택시를 불러보았으나 응답이 없으므로, 지난번에 이용했었던 남면의 김종문 씨 개인콜택시를 불러보았으나, 그 역시 현재 자기가 있는 곳에서 이곳까지는 거리가 멀어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별 수 없어 바래길 앱에 나타난 남해콜택시를 불러보았으나, 읍에서 이곳까지 와서 출발지점까지 이동하는 데 3만 원 이상의 요금이 든다는 것이었다. 좀 난감하였는데, 그 새 창환이가 지나가는 택시를 발견하고서 손을 들어 불러 세웠다. 그의 말로는 우리가 이곳까지 걸어오는 도중 19번국도 상에서 지나가는 빈 택시를 세 대쯤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 택시를 타고서 천하몽돌해수욕장까지 가는 데는 13,700원의 요금이 들었다.

우리 차를 몰아서 갔던 코스를 따라 되돌아오는데, 창환이가 도중에 있는 독일마을에 들러보고 싶다고 했다. 그 새 알아보니 독일마을은 일반적으로 물가가 비싼 편인데 맥주 값은 싸다고 한다면서, 생맥주를 마시며 정말 독일 현지의 맛과 같은지 다른지를 비교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마을에 들러 맥주집 한 군데에 들렀더니 그 집에서는 병맥주만 판다는 것이므로, 그 바로 앞 길 건너편에 있는 Kunst Lounge라고 하는 보다 큰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창환이는 Krombacher Pils라고 하는 독일 생맥주를, 나는 수제 자몽에이드를 시켜 넓은 발코니로 나가 요새 유행하는 푹신한 의자에 반쯤 드러누워 바로 앞의 물건방조어부림과 그 건너 바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셨다. 맥주 맛이 괜찮았던지 창환이는 자기 돈으로 Ayinger Brauweisse라는 생맥주를 한 잔 더 사왔다.

독일마을 카페에서 물건어부방조림을 바라보며
독일마을 카페에서 물건어부방조림을 바라보며

독일마을은 20041225일 크리스마스 휴일을 이용하여 부산에 사는 막내 누이 미화네 가족 전원과 우리 가족 전원, 그리고 큰 누나를 포함한 일곱 명이 가서 독일인과 결혼한 한국 부인이 경영하는 펜션에서 1박 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번 방문하였다. 독일 교포들이 다년간 고국에다 청원하여 실현되었던 당초의 실정과 달리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반면 유흥지 혹은 관광지화되어 설립 취지가 무색해진 감이 있다. 지금은 독일과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 거액을 투자하여 도회지에서나 볼 수 있는 호화로운 카페와 술집들이 들어서고, 아내의 제자인 보건소장 김향숙 씨도 이곳에다 몇 층짜리 빌딩을 마련하여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입이 꽤 쏠쏠하여 믿음직한 노후 대책이 되었다고 한다.

독일마을을 떠나 돌아오는 도중 삼천포 실안의 처가 식구들이 가끔씩 들르는 유자집에 들러 장어구이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때마침 그 집은 개인 사정으로 휴업 중이라, 바로 뒤편 바닷가인 사천시 노을길 132(사천시 실안동 1245-4)에 있는 기룡정 장어구이로 가서 장어 2인분과 장어국 및 공기밥을 먹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모를 위해 2인분을 추가하여 스티로폴 박스에 담아 왔다. 창환이는 오늘의 경치와 음식 맛에 모두 반해 서울에서 남해까지 내려오는 교통편에 대해 여러 번 내게 물었고, 다도해와 석양의 풍경이 아름다운 실안에다 집을 마련하고 싶다고도 했다.

실안을 떠나 사천읍을 거쳐서 진주로 돌아올 때까지 도로상의 교통 정체가 심했다. 오늘 남해도로 가는 도중에는 시종 바흐의 피아노곡들을, 돌아올 때는 모차르트의 관현악곡과 바흐와 비발디, 그리고 주로는 바흐의 첼로 곡들을 감상하였다. 7시 무렵 진주의 집에 도착하여, 창환이는 샤워를 마친 다음 집 부근에 있는 터미널로 가서 7시 반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하였다.

 

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했고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 [남명학의 현장] 1-5권(2013), [국토탐방] 상하권(2014), [해외견문록] 상하권(2014)을 펴냈다.
오이환 경상국립대 철학과 명예교수. 대학 재직 중 ‘남명학’을 연구했고 국내 및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 [남명학의 현장] 1-5권(2013), [국토탐방] 상하권(2014), [해외견문록] 상하권(2014)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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