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면 곤혹스러웠다. 이웃들과는 정반대의 정치관을 가져서 무슨 말을 하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이웃들과 함께 사랑방에 모였어도 정치이야기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쩌다 텔레비전 뉴스채널이라도 켰을 때면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촉촉이 봄비가 내리고, 사랑방엔 어김없이 몇몇 이웃들이 모여 있었다. 군불을 많이 넣었는지 방이 후텁지근했다. 뜨거운 곳을 좋아해서 언제나 내 자리는 정해져 있었고,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던 아랫담 최 씨가 자리를 비켰다.

“김 사장. 대관절 코로나는 어찌 되는 기요?”

“아유, 오늘 읍내 확진자가 팔십 명이 넘었다더마.”

“식당이고 어디고 백신주사 안 맞은 사람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며?”

단연 코로나 이야기가 먼저였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다가온 일이기에 모이기만 하면 코로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백신을 세 번이나 맞히고 난리를 치더니 이게 무슨 꼴이래?”

“그러게? 세 번째 백신 맞고 나는 죽었다 살아났잖아.”

“결국 이럴 걸 왜 설날에 자식들도 못 만나게 하고 지랄을 떨었는지 몰라.”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백신을 맞을 때면 관광버스가 마을입구에서 기다리고 이장은 백신 맞을 걸 강조하며 이른 아침부터 마을방송을 해댔다. 마을 노인네들은 양떼처럼 몰려 나와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읍내 보건소를 향했다.

혹시라도 백신을 안 맞은 주민이나 도시 자식 집을 다녀온 주민은 경계대상 1호로 낙인찍혔고, 읍내 장을 다녀오기만 했어도 가까이 만나기를 꺼려할 정도였다.

그런 코로나가 하루 십만 명 넘게 걸리는데도 이렇게 풀어버리니 속 시원하기는 고사하고 허망할 거였다. 뉴스나마 들어온 내가 정부방침을 대충 설명하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있나. 그동안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다 해오면서 살아온 코로나 세월에 속은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할 거였다.

불평불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런저런 세상이야기로 이어졌다.

“어느 외국 나라에서 전쟁이 났다며. 왜 전쟁이 일어난 거야?”

“사람도 많이 죽고, 아파트까지 폭탄이 떨어지더라고.”

주로 ‘나는 자연인이다’나 ‘미스 트롯’같은 채널만 봐오다 나만 만나면 스쳐 지나가며 들은 뉴스를 물어오는 거였다. 그저 민화투나 치고 앉았으면 좋으련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웃이 한둘은 있었다. 그렇다고 꼭 속 시원한 대답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어찌 한 마디로 설명할 수가 있나. 제정러시아 시대가 어떻고, 소비에트연방이 어떻고, 나토가 어떻고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알아들을 리 만무한 이웃이었다. 결국 나는 ‘전쟁이 나면 되나. 전쟁은 무조건 나쁜 일이지.’ 대충 이런 말로 얼버무린다.

“남의 나라 전쟁이야기가 뭔 도움이 된다고. 농사걱정이나 하라고. 농사걱정.”

그렇게 주제가 넘어가고, 결국 우리들 살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이 모아진다.

“요소비료 한 포에 이만구천 원이라며?”

“보조 받으면 일만오천 원쯤 된다니 작년에 비해 삼천 원 올랐나?”

“소주값도 한 병당 백 원씩 올랐다며?”

“식당에서 사 먹으려면 오천 원은 줘야할 걸?”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뛰는 물가이야기 끝에 주제는 마침내 대통령선거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랑방 아궁이 앞에 선거공보물이 봉투도 안 뜯긴 채 쌓였지만 대통령선거 이야기엔 너나없이 뛰어들었다. 모두들 자신있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들 한 길로 걸어온 선거동지들이니까.

이웃들은 이승만 당에서 출발해 박정희 당, 전두환 당으로 이어온 대통령선출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노태우 당으로, 김영삼 당으로, 이명박과 박근혜 당으로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이 대오를 이탈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다면 누구도 구원해줄 수 없을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존재자체가 소멸되어버릴 것이라 여겼을 거니까. 실수로 1번 찍을 걸 2번에 잘못 기표했다며 투표장에서 충성과 결백을 주장하며 울고불고하지 않던가.

해방공간에서 겪은 험한 일은 여기 산골 주민들의 선거유전자를 그렇게 바꿔버렸다. 우익에 저항하면 죽음이라는 등식을 어찌 거부할 수 있었겠나. 그 칼날의 세월에서 살아남으려면 오직 공개적인 지지와 공개적인 투표로 자신의 정치관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윤석열이 말하는 거 좀 보라고. 아직도 세상에 좌익이 활개를 친다며. 저쪽 놈들은 다 좌익이라 하더라고."

“그러니까 저쪽에서 윤석열 도둑놈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있지. 그게 말이 돼? 검사가 도둑질을 어찌 하냐고.”

몇몇 이웃들이 한마디씩 뱉었다. 옛날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거나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것은 일종의 버릇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우익들의 나라고, 좌익척결의 기치는 유효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변함이 없을 거였다.

이들 앞에서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케케묵은 색깔론이라고 항변한다는 것은 이들의 살아있는 생명을 부정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1번 2번 3번 4번 모두가 다 우익이라고 해도 이들의 선택이 달라질 일은 만무했다. 그런 뻔한 결론 앞에서 입씨름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삼십만 원씩 나온다는 농민수당 신청 하셨지요?”

나는 슬며시 화두를 돌렸다. 선거이야기가 무거웠던지 다들 주제전환을 기다린 듯했다.

“그래. 며칠 전에 이장이 신청하라 하더라고. 농민수당이 뭐야?”

“아무도 농사지으려고 하지 않는데 농사지어줘서 고맙다고 주는 거래요.”

“거짓말. 세상에 그런 돈이 어디 있어.”

“그렇다니까.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이 줄 걸? 어디는 육십만 원 주는 곳도 있대요.”

“줄 거면 다 같이 줘야지 그게 왜 차이가 나?”

“그러게요. 그게 다 선거에서 결정된다니까. 농민 잘 챙겨줄만한 시장 군수 뽑으면 많이 받게 되는 거라고.”

“이왕이면 대통령이 나서서 다 똑같이 주라고 하면 좋겠네.”

“대통령 잘 뽑으면 월급 받는 농민이 된다니까. 농촌 농사 농부가 대접받는 세상이 온다니까. 그러니까 선거공보물이라도 꼼꼼히 잘 읽어봐요. 제발 뜯지도 않은 채 불쏘시개로 쓰지 말고.”

이웃들은 선거공보물 따위엔 관심 없는 투표를 해왔다. 정책이나 공약은 고사하고 경력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나이 일흔에 농사를 포기하고 월 50만 원의 농지이양은퇴직불금 받으며 요양원 들어가라는 대통령후보가 있는가하면 농업을 전략안보산업으로, 농촌을 균형발전의 주요거점으로,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약속하는 후보가 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웃들은 이런 내용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런 정책이나 공약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도시 사는 자식들이 제발 제대로 투표하라고 졸라도 이웃들 눈치보기가 먼저다.

“이것 보소. 정 여사님. 평생을 도둑놈 앞에 놓고 조사만 해왔던 사람이 대통령 된다고 세상에 도둑질이 없어질 것 같아?”

나는 작심하고 꾹꾹 눌러두었던 속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대통령 하려면 뭐 좀 아는 거라도 있어야지. 엊그제 토론회 안 봤어? 눈과 귀가 있으면 보고 들었을 거 아냐. 우리나라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어쩌든가. 말할 때마다 눈 내리깔아 적어온 글자나 읽고 있고, 종이쪼가리 안 보고 말하면 엉뚱한 말이나 하고 있고. 솔직히 말해 그게 대통령 감이야?”

침이 튀었다. 목소리가 컸던지 모여 앉은 이웃들이 혹시라도 골목길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 들을세라 몸을 사리는 듯했다. 이 좁은 사랑방에 몇몇이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 자체가 불경이요, 죄악이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온 국민이 보는 토론회에서조차 상대당 후보에게 윽박지르고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거 안 봤어? 선거유세장에서도 거들먹거리며 모인 사람들 앞에 주먹질이나 퍼붓고. 사람이 깡패도 아니고 어찌 그리 오만방자할 수가 있냐고. 차라리 도둑맞아 몇 푼 잃는 게 낫지.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서야 되겠어? 품행을 보면 성품을 알 수 있잖아. 우리같이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 얼마나 업신여기겠어.”

숨이 막히는지 골목 안 송 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필경 대통령 선거 앞두고 이런 말을 듣기는 평생 처음이었을 거였다. 혹시라도 경찰이 잡으러 오지나 않을까 가슴이 벌렁거릴 거였다. 함께 모여 앉은 이웃들이 어디 가서 고자질이라도 하면 낭패일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아, 글쎄. 정 모르겠으면 도시 사는 자식들 말이라도 좀 들어요. 제발 좀 자식들이 찍으라는 대로라도 찍어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술병으로 빈 잔을 채웠다. 저장해둔 가을무와 고구마가 안주였다. 가을무 성겅성겅 썰어 굵은소금에 찍어먹으면 안주로써는 그저 그만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해가 뉘엿거렸다.

내일은 한국농업방송에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된 날이다. 지난해 낸 내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응하는 거였다. 오랜만에 해보는 방송인터뷰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전해 받은 질문지를 꺼내보았다. 도시생활이 그립지 않으냐는 질문이 있다. ‘처음엔 그리웠다. 지금은 도시에서 하룻밤 자는 것도 갑갑하다. 도시에서의 2박3일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1박2일도 싫다. 도시에 발을 내딛자마자 산골 우리 집이 그립더라.’ 대충 이렇게 답해야지.

그리고 ‘산골에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할까. ‘이웃 주민들과는 정치관이 다르고, 삶의 문화가 다르고,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니 그것을 극복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라고 말하면 거짓일까.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있었던가.

내 이웃들이 정치적 문외한이라며 안타까워하면서도, 건강한 공동체를 갈구하면서도 정작 나는 나를 희생하지 못했다.

그저 비켜서고 외면하면서 쉬운 길을 찾았다. 차라리 인터뷰를 취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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