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마을엔 예닐곱 명이 확진되었다. 모두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친 노인네들이었다. 이웃으로 마실 다니는 발자국소리는 끊겼다.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가끔 논밭을 나가는 이웃들은 너나없이 마스크를 꼭 끼고 다녔다.

얼마 전 서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보여 손을 짚어봤더니 열이 있었다. 서하가 다니는 유치원 원생 열에 일고여덟이 확진되거나 가족 확진으로 등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덜컥 겁이 났다.

“서하 열이 있네. 자가검사키트 한 번 해보지.”

예감이 안 좋아 나는 얼른 마스크를 챙겨 꼈다. 할아버지라면서 하는 꼴이 너무 비정하다 싶었다. 아들 내외는 서하 데리고 집으로 내려가고 아내는 그 모습을 쳐다보며 발을 동동거렸다.

“코로나면 어떡해. 카페와 우리 민박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냐?”

“일단 문 닫고 검사를 받아봐야지. 당신 하루 종일 서하와 함께 있었잖아.”

아내가 걱정이었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면서도 안절부절이었다. 아래 아들집에서 전화가 왔다. 자가검사결과 서하는 붉은색 두 줄이 제법 선명하게 나타났다 하고 저들 내외는 음성으로 나왔다고 했다.

날 밝으면 읍내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했다. 아내는 서둘러 약통을 꺼내 타이레놀과 인후통약을 챙겨먹었다. 다행히도 아내는 열이 없었다.

다음날 읍내로 나가 검사를 했는데 서하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속항원검사 결과 저들 내외는 음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쩌랴. 보름이는 서하를 돌보느라 함께 지내야 했고, 다음날 열이 나기 시작했고, 읍내로 나가 검사한 결과 역시 확진 판정을 받아버렸다. 보름이도 3차 접종까지 마친 상태였다.

동네 확진자에게 볼멘소리

마을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마을방송이 요란을 떨었다. 2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니 마스크를 끼고 이웃 방문을 자제하라는 방송이 울려 퍼지자 모든 주민들 발길이 뚝 끊겼다.

확진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오며가며 만날 수도 있겠기에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시끄러비아지매께 전화를 넣었다.

“누가 걸렸어? 두 명이라며?”

“아직 몰라. 내가 한 번 알아볼게.”

“마을 안테나가 그것도 모르면 어떡해.”

언제나 씩씩하던 시끄러비아지매의 목소리도 두려움에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점심나절이 되자 확진자 신상이 알려졌다. 서울에서 아들이 다녀간 집과 평상시 외부접촉이 많은 집 노인네였다. 이런 시국에 뭐 하러 아들이 내려왔느냐며 이웃들은 볼멘소리를 했다.

확진자 신상은 비밀이라고 했지만 이 좁은 마을 안에서 어떤 경로로든 알려지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확진자의 집 주변을 피해 다녔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사나흘 뒤 또 2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사나흘 뒤 또 2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렇게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첫 확진자 이후 공포에 떨던 마을 분위기도 많이 누그러졌다. 자가격리기간이 끝난 확진자가 마스크를 끼고 골목에 출현하자 처음엔 데면데면하던 관계가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도 나누는 상태로 바뀌었다.

“아유, 코로나 그거 한 번은 걸려야 한다드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진즉에 걸려 나아버리는 것이 마음 편하다더라고.”

심지어는 마을 노인네들 생각이 이렇게까지 변해 있었다.

이럴 즈음 서하와 보름이가 확진되었으니 마을 사람들도 크게 놀라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서하 유치원에서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측은지심까지 유발해 오히려 안타까워하는 노인네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만약 우리 집에서 먼저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 봐. 동네가 난리 났을 걸?”

“민박이고 카페고 온갖 험담과 손가락질에 시달려야 했겠지.”

사실 그랬다. 마을 첫 확진자가 우리 가족이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한복판에서 카페와 민박을 운영하니 드나드는 외지인이 많다. 돈 많이 번다는 말이 돌자 일부 노인네들은 우리 카페와 민박을 시기하기까지 했다. 그런 노인네들이 떼로 몰려와 어떤 행패를 보일지 모를 일이었다.

퍼뜩 수년 전 일이 떠올랐다. 마을일로 이런저런 민원을 자주 넣던 귀촌인이 있었는데 몇몇 노인네들의 선동으로 경운기며 트랙터를 끌고 와 집 입구를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마을동회에 불러내어 욕설과 모욕으로 협박하기도 했고, 술에 취해 주먹질까지 해대는 주민도 있었다.

“아무튼 동네 노인네들이 먼저 확진되었으니 우리로썬 다행한 일이야.”

“참 나. 어째 사람이 이리도 이기적일까? 미안한 마음도 없어?”

“이게 다 코로나가 만든 세상이라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이어야 살아남는 세상.”

우리 부부의 후속대화는 이처럼 한심했다.

 

‘백신 효과 믿을 수 있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창궐했다. 지구촌 5억 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이 나라도 만만치 않아 1천5백만 명 넘는 확진자를 보였다. 국민 3명에 1명꼴인 셈이다.

2년여 전 처음 이 바이러스가 세상에 알려지고 지금까지 국민들은 별별 고생을 다했다. 이 역병에 걸리면 폐가 시커멓게 타버린다는 흉흉한 소문에 벌벌 떨었다.

여기저기서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확진자가 나온 도시의 텅 빈 거리를 보면서 모두들 숨을 죽였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 했고, 주민등록증까지 내보여야 겨우 3장의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방역당국의 조치는 강경했고, 강압적이었다. 누구도 그런 조치에 토를 달지 않았다. 역병에 대한 공포에 모든 개개인의 자유와 양심은 저당 잡혔다. 확진자의 동선에 노출된 사람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고,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는 망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백신이라는 게 나왔다. 이 나라에 첫 백신이 도착했을 때 텔레비전 뉴스 앵커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살았구나’ 했다.

1차 백신접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 방역당국은 2차 접종까지 서둘렀다. 3차 접종에 진입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6개월 남짓이었다. 실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백신의 이상반응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서하는 접종을 하지 않았고, 아내와 아들 내외는 3차 접종까지 완료했고, 나는 3차 접종을 미루었다.

“백신 이거 정말 효과가 있는 거야?”

나는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었다. 바이러스의 출현부터 잔뜩 의혹이 갔고, 이후 진행되는 과정들이 미심쩍었다.

미국은 처음부터 중국 우한연구소를 지목했다.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휩쓸자 중국을 상대로 피해소송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미국이 제3국가에서 운영하는 한 생화학무기 연구실험실을 지목했다. 세계 곳곳에 그런 연구소를 가진 미국으로써는 중국의 그런 주장이 부담스러웠던지 이후 원인 규명은 흐지부지해졌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이 바이러스는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해 생성하였고, 어떤 실수나 혹은 또 다른 목적으로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지구촌은 온통 극심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런 가운데 혜성처럼 등장한 백신이었다. 정부사절단이 제약회사를 찾아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나라에서만 1억 개가 넘는 일회용 주사기를 썼다.

“암만 생각해도 백신을 믿을 수가 없어.”

밥상머리에 앉으면 나는 늘 이 말을 곱씹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아들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백신무용론 그거 유럽 쪽 일부 극우들의 주장이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 백신 아니면 무엇에 기대?”

“당신은 어찌 그리 매사에 부정적인가 몰라. 정부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 그리고 온 세계가 이런 꼴을 당하는데 거기에 무슨 음모가 섞였겠어?”

아내와 아들의 핀잔 속에서 나도 어쩔 수 없이 1차 접종을 했고, 4개월을 기다려 2차 접종을 했다. 나의 접종은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민박을 운영하지 않았다면 그 주사를 맞지 않았을 거였다. 우리 집을 찾는 손님을 맞이해야 하고, 손님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백신을 맞아야만 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아들 내외가 젊은 나이인데도 서둘러 3차 접종까지 마무리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백신패스’라는 방역당국의 통제시스템으로 이 나라 국민들 백신 접종률은 유난히 높았다.

“참 나. 백신 3차까지 다 맞았는데도 걸리네.”

3차 접종까지 마무리한 보름이가 이 바이러스에 덜컥 감염되자 백신에 신뢰를 보내던 아들과 아내마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신을 맞아야 중증화가 줄고, 사망률이 떨어진다잖아.”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푸념처럼 이 말을 뱉으며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어른 노릇 하기 몹시 힘들어

읍내 장에 나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순대국밥집에 들었다. 오랜만에 먹는 순대국밥은 맛있었다. 곁들인 소주 한 잔이 온몸을 확 풀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난 3월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갈 때부터 바깥출입을 자제해왔고, 특히나 마스크를 벗어야하는 장소 출입은 일체 하지 않았다. 읍내 장터에 나갔어도 필요한 것만 사들고 부랴부랴 돌아왔다. 그렇게 좋아하는 국밥집과 목욕탕 출입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미뤄오던 이발도 하고, 순대국밥에 소주도 한 잔 마시고 돌아오자 문간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순대국밥에 한 잔 하고 왔지.”

“웬일이래? 코로나 걸릴까봐 식당엔 안 가겠다더만? 이발도 했네?”

“그래. 이젠 내 마음대로 하며 살 거야. 걱정할 게 뭐 있어?”

사실 그랬다. 서하와 보름이가 차례로 코로나에 감염되었을 때 별 고통 없이 낫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론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우리 가족도 감염을 피해가지 못할 거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먼저 감염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조심하지 않고 여기저기 쏘다니다 덜컥 감염되어 어린 서하에게 옮기고 보름이에게 옮길까봐 내내 조바심 속에서 살았다.

어른 노릇 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혹시라도 원인 제공자가 되어 눈치라도 보며 살아야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가족 사이도 이렇듯 비정하고 처참하게 변해버렸다.

서하와 보름이도 말끔히 나았으니 이젠 걱정거리가 사라진 셈이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될 뿐이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했다. 약국에서 약 사먹고도 나으니 이젠 걱정 내려놓고 국밥집이고 목욕탕이고 마음대로 다녀야지.

4차 접종을 준비한다는 말이 나온다.

내가 가진 불신과 의심이 한갓 기우라 할지라도 그게 풀리지 않는 한 더 이상 백신은 맞고 싶지 않다. 국제보건기구의 발표나 이 나라 방역당국의 정책이나 주류언론들의 세뇌적인 보도가 불편하다.

이 지긋지긋한 공포의 장막 저편에 세상을 차지하고 농락하는 어두운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어떤 야심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온전히 믿어 넘기기엔 너무 억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백신을 맞으라는 대로 맞고, 방역지침 그토록 잘 따랐건만 우리 삶은 너무 황폐하게 파헤쳐지지 않았나.

어떤 근거를 곧이곧대로 들어야 하나. 이익 앞에서 머뭇거리는 제국은 없었고, 거대한 거짓은 그 스스로 진실로 바뀌어버린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가 보여주지 않았나.

솔직히 말하자.

4차 접종은 뭐며 5차는 안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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