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석봉]
[사진=김석봉]

저녁밥상을 물리자마자 아랫담 최 씨 내외가 찾아왔다. 소주잔을 앞에 놓았다.

“김 사장. 내년에 이장 해볼 생각 없는가.”

이장을 선출하는 대동회가 열흘쯤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요즘 몇몇이서 말을 맞추고 있네.”

“아이고. 그게 몇몇이서 말 맞춘다고 되나요. 나는 들어온 사람인데.”

“김 사장 들어온 지 십 년이 넘었잖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맘 단디 묵소.”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최 씨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맘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주민 성향을 보나 집안을 보나 내가 당선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저쪽 집안에서 이장 자리를 쉽게 내놓겠어요? 투표하면 백 프로 지게 되어 있어요. 뻔할 뻔자지.”

“아니야. 투표 같은 거는 없어. 새로 이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현재 이장은 자동으로 탈락하는 거야. 지금까지 마을에서는 그래왔거든.”

“말이야 그리 하지만 저쪽 집안에서 가만있겠어요? 난리난리 칠 건데.”

“어허. 그게 아니라니까. 김 사장이 맘만 묵고 있으면 된다니까.”

최 씨는 몸이 달아 거의 읍소하듯 다그쳤다.

 

들어온 사람과 토박이

최 씨가 다녀간 다음날 이번에는 박 씨가 찾아왔다.

“김 사장. 내게 많이 서운했지? 다 용서하고.”

박 씨는 지난날 나와의 관계가 께름칙했던지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일을 생각하면 박 씨는 내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도 못할 처지였다.

내가 주민을 조직해 마을기업을 설립하면서부터 마을을 쥐락펴락해온 몇몇 기득권자들과 함께 내 활동을 못마땅해 했다. 시기와 음해가 진행되고, 끝내 ‘들어온 사람’이라는 이유로 마을 일에 손을 떼게 했다.

이후 마을사업은 쇠락했다. 그들이 내세운 후임자와는 소송까지 가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마을공동사업장이던 산촌생태마을은 개인에게 임대해 주는 불법 편법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그런 박 씨였기에 마주 앉는 것마저 거북했다.

김석봉 농부
김석봉 농부

“이번에 동네 이장을 한 번 맡아줘야겠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이장이라니요?”

나는 비아냥거리듯 능청을 떨었다.

“아 글쎄. 이번 이장이 안하무인이더라고. 아무리 코로나라고 해도 그렇지. 아직 한 번도 동네 회의를 안 하는 거야. 모든 일을 자기 독단으로 하고 있다고.”

돌아보니 그렇기는 했다. 지난해는 동회라는 것을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다. 마을개발위원회 회의도 안 열렸다고 했다. 마을 가운뎃길을 따라 반반한 벽에 벽화그리기 사업을 했는데 그게 모두 아랫담 벽에만 그렸다며 웃담 주민들 불만도 상당했다. 게다가 이장 집은 골목 안에 있어 볼 사람이 없는데도 집 앞에 벽화를 두 개나 그려 자기 욕심 채운 거라며 불평을 쏟아냈다.

“이장이 이래서는 안 되지. 촌사람은 뭐든 주는 거 좋아한다면서 대동회 때 동민들 선물로 나눠준다고 마을자금으로 식용유를 엄청 많이 사서 회관에 쟁여두었대. 이게 말이 되냐고. 또 이장 하려고 동네 돈으로 선심 쓰려는 거지.”

박 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장이 곁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멱살잡이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시끄러비아지매와 예삐엄마가 찾아왔다.

“어이, 동생. 동네 여기저기서 이번에 이장을 동생이 해야 한다고 그러더마. 어쩔 생각이여?”

시끄러비아지매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갔다.

“내가 생각키로는 아랫담에서도 동생 말이 나오고 그러는 걸 보면 될 가능성이 많아. 지금 이장이 인심을 잃긴 잃었나본데 한 번 해볼 거야?”

“나는 안 될 걸? 내가 들어온 사람이잖아.”

“벌써 십오 년이나 되었는데 들어온 사람은 무슨 들어온 사람. 지금 이장은 들어온 사람 아닌가? 어려서 나갔다가 지금 들어온 지 사 년밖에 안 되었잖아.”

“그래도 그게 달라요. 들어온 사람은 이십 년 삼십 년이 되어도 들어온 사람으로 취급한다니까요.”

“잘 되는 동네는 들어온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다 이장도 시키고 그런다더마. 이 동네는 그런 사람을 그렇게 취급하고 참 한심한 동네야.”

예삐엄마가 끼어들었다. 예삐엄마는 서울에서 25년을 살다 2년 전에 귀향했다. 아들딸이 독립하자 홀로 고향을 찾아 내려온 거였다.

“내가 생각은 해보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

“아니야. 그래도 우리 편이 제법 많은 것 같기도 해.”

시끄러비아지매가 손사래를 치며 이 집 저 집 짚어가며 손가락을 꼽았다. 아랫담에서부터 시작한 손가락 셈하기가 마을 중간 김 샌 집에 이르렀을 때부터 시끄러비아지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거 참. 알 수가 없네. 회관 뒤쪽 정가는 우리를 찍을 거 같기도 하고 저쪽을 찍을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애매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시끄러비아지매가 손가락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표 계산이 영 안 되는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 포옥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내 가슴조차 콩닥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년 전 귀향해 노모를 봉양하고 사는 골목 끝집 이 씨로부터 만났으면 하는 전화가 왔다. 마당 가 가마솥에 불을 지핀 이 씨가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뭘 이리 고우시나? 펄펄 끓네. 끓어.”

곁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젊은 시절 서울로 떠난 이 씨는 마트사업을 하다 내려왔다.

“선배가 이번에 이장을 해본다고요?”

“글쎄요. 아직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어디서 들었소?”

이 씨는 나보다 서너 살 아래였다. 가까이 살아도 그리 많은 대화를 해보지 못했고, 특별히 관계를 가져보지도 못했다. 이 씨는 술을 과하게 많이 마시는 편이었다.

“내가 다 알지. 이리 산다고 동네 돌아가는 일을 모를까?”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술 냄새를 풍겼다. 빈정거림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어느새 긴장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무슨 사단이라도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선배. 선배는 이장 하면 안 되지. 들어온 사람인데. 다음에 하더라도 이번엔 현 이장이 계속 해야지.”

목소리에 가시가 박힌 듯했다. 빨리 마무리하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하는 오기도 생겼다.

“현 이장은 들어온 사람 아닌가? 들어온 지 다섯 해도 안 되었잖아요.”

“에그. 이장이야 여기가 고향이지. 고향사람이라고. 고향사람!”

이 씨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아궁이 속 불꽃처럼 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는 자리를 떴다. 이장을 해보겠다고 말하면 당장이라도 봉변을 당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운영을 민주적으로 해보겠다”

대동회 날이 밝았다. 한겨울인데도 날씨는 견딜 만했다.

“아버지. 이장을 하시려고요? 하지 마세요. 옛날에 그렇게나 당하시고 뭐한다고 그런 일을 해요. 그냥 우리끼리 이리 살면 됐지.”

“아부지. 제발 좀 참아. 아부지가 나선다고 달라질 게 뭐 있을 거 같아? 안 변해요. 이 사람들은 그냥 이리 살아야 하는 거라고.”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잖아요. 여기 사람 아무도 믿지 말라고. 당신 생각과 같지 않아. 우린 들어온 사람이라고요. 제발 ‘마을을 위해서’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가족들의 만류가 심했다. 만류가 심한 만큼 오기도 끓어올랐다. 영원히 ‘들어온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마을이 정의로워야 우리 모두의 삶이 안정적일 거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동안 눈 뜨고도 빼앗기고, 속임 당한 주민이었다. 몇몇 기득권자들의 제물이 되어 달라면 내어주고, 밀치면 밀려난 삶을 살아온 주민이었다. 이래도 끄덕끄덕 저래도 끄덕이며 살아온 주민이었다.

못 가지고 못 배워서 한스럽게 일생을 살아온 주민이었다. 나는 그들의 의견을 적는 손이 되고 싶었고, 그들의 주장을 소리쳐 외치는 입이 되고 싶었고, 그들을 대신하여 그릇된 마을운영을 바로 세워놓고 싶었다.

지난해와 올해 결산보고서가 나왔다. 이장은 수입부만 보고하고 지출부는 동회 끝나고 개인적으로 문의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올해 있었던 마을사업을 보고하고, 내년에 할 일을 장황하게 설명한 뒤 계속 이장을 맡겠다고 했다.

수입부를 얼핏 훑어보는데 지난해 수입총액이 2백만 원 넘게 차이가 났다. 매년 1천만 원 산촌생태마을 임대료를 받기로 했으나 수입부에 기재되지 않았다. 그렇거나말거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를 찾아와 게거품을 물던 최 씨도 박 씨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그들 집안과 마을 기득권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다들 꿀 먹은 벙어리였다.

이장은 연임을 기정사실화하며 서둘러 동회를 마치려 했다. 웃담 노인네가 이장연임에 반대하면서 이장선거에 들어갔다. 나에게 정견발표 시간이 주어졌다.

여성과 젊은이와 원로 10명으로 마을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매월 회의를 통해 사업결정과 예산집행 승인을 받겠다고 했다. 주민들의 이익과 복지를 위해 주어진 권리를 적극 행사하고, 마을공동사업을 정비하여 마을기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고 했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제값 받도록 인터넷공동판매망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마을운영을 민주적으로 반반한 토대 위에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토박이들의 강고한 기득권

투표가 진행됐다. 1세대 1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세대확인도 하지 않고 진행자들은 주민에게 종이조각을 마구 나눠주며 현 이장은 1자를, 김석봉은 2자를 쓰라고 했다. 앞줄에 앉은 할머니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진행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투표를 하고 있었다.

동회가 열리는 내내 보이지 않던 주민들이 투표 막판에 몰려나왔다. 읍내 복지기관 이동목욕차가 와서 목욕을 시켜주는 거동불편 할머니를 등에 업고 투표장에 나오는 주민도 있었고, 급히 연락을 받고 부스스한 얼굴로 엉거주춤 나온 젊은 귀향인도 있었다.

결과는 내가 예측했던 대로였다. 주민들은 이장부인이 나눠주는 식용유를 한 개씩 들고 삼삼오오 흩어져갔다.

이장선거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퍼뜩 ‘어쩌면 이 사람들은 이리 사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히 그이들의 삶을 내가 대신 아파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젊은 귀향인들이 늘어나는 만큼 마을은 더 폐쇄적으로 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우리 가족은 영원히 타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일 뿐이고, 그들은 그들대로 한 덩어리가 되어 더 강고한 기득권을 형성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서 보름이와 마주쳤다. 식구라지만 이렇게 마주치니 민망한 기분이었다. 고개를 숙여야 하나 쳐들어야 하나 잠시 고민이었다.

“떨어졌다. 잘 된 거지?”

“그럼요. 아버지. 축하드려요.”

허허롭게 토해낸 내 말에 보름이는 엷고 가지런한 박수를 보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집을 휘 둘러보았다. 낡은 싸리울타리가 천장만장 높아보였다. 헐거운 사립문짝이 더없이 육중해 보였다. 해는 지고 산그늘이 살포시 마당을 가리고 있었다.

황혼에 물든 구름장 하나가 마당 위를 흘러가고 있었다. 그 구름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 집만 둥둥 떠 세상의 물결에 실려 가는 느낌이었다.

되레 홀가분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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