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부녀회의 공식 활동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을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온갖 뒷일을 챙기며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길흉사를 집안에서 치를 때 유족의 마음을 위무하는 일이며, 그 많은 조문객의 음식을 대접하는 일, 평토제 지낼 제례음식 준비하는 일 등 부녀회원이 빠지면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지요. 그런 일을 마치면 상주가 고마움의 표식으로 사례금을 주었고, 그런 돈들이 모여 부녀회 기금의 종잣돈이 되었다 합니다. 지금은 농약 빈병이나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으로 약소한 기금을 모으고 있습니다.그런 우리 마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0년. 강산이 한 번쯤은 변했을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자리라 해가 갈수록 안타까움만 더해간다.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으며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를 약속이나 한 듯이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9번째 변주곡 “Nimrod”를 연주했다.이 음악에 얽힌 얘기는 놔두고 이 곡이 왜 연주되는지는 그냥 차분히 마음을 내려놓고 들을 수 있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격정적으로 마음 깊은 곳까지 표현한 음악이어서가 아닌가 싶다.작곡가
교사로서 내가 볼 수 있는 입학식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지난 3월 입학식을 지켜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본다.교장 재임 시절 나는 기존의 모든 입학식 절차를 생략하고 새로운 형식의 입학식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을 ‘이해와 친교의 입학식’이라고 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입학식은 입학의 환영이나 기쁨보다는 학교의 공식적인 ‘의례’에 가까웠다. 물론 이 형식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또 입학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가정하에서 입학식이라는 이름 아래 학교 모든 구성원들(2, 3학년 학
의대 증원을 포함하는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추진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정부와 의사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경상남도의 지역의료 불균형 실태와 불균형 해소 전략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경상남도의 지역의료 불균형 실태는 의사의 분포 불균형을 첫 번째로 들 수 있다. 아래의 표처럼 2022년 10월 기준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가 1명 정도인 지역이 경남에 다수 있다. 전국 평균인 2.22명(한의사 제외, 2022)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진료기능이 제한되어 있는 공중보건의를 제외하면 의사 인력이 훨씬 더 부족함
영문도 모른 채 학교에서 쫓겨났던 적이 있다. 초임 발령받아 부임한 27살 총각 선생이 정년퇴임을 앞둔 교장 선생님과 맞짱 뜬 게 문제였다. 군사 독재 시절 '야만의 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신축 학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저것 교장 호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는 푼돈과 콩고물이 꽤 있는 듯했다. 새파란 신규 교사 눈으로 봐도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 조직에 충성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1년 후 본인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학교로 '강제 내신'을 당했다. 교장 권한이라며 호통쳤다. 억울한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농촌 지역의 성 불평등 문제는 아직도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성차별 문화가 일상생활 곳곳에 너무도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무엇이 성평등에 가까운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바로 우리 지역 축협조합장이 여직원들에게 지속해서 성적 괴롭힘을 일삼아 온 일입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서 곧장 해결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사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직급이 조금이라도 높은 사람에게 함부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이 직장 내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왔다. 봄이 오면 우리의 옷차림에서도 알 수 있지만 가장 빨리 봄을 알려주는 것들이 봄꽃들과 음악이 아닐까 싶다.가장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는 지치지도 않는 단골손님이다. 이 외에도 봄을 대표하는 곡들이 많지만 오늘은 독일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첫 번째 교향곡 ‘봄’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오래 전에 이란 TV프로그램에서 본 영화 중에 이란 영화가 있었다. 나스타샤 킨스키가 슈만의 부인 클라라 역을 맡았다. 슈만은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 클
조선일보가 지난 5일부터 전태일재단과 창간 104주년 공동 기획으로 는 보도를 시작했다. 조선일보의 기획에 대해 한편에서는 ‘조선일보와 논쟁과 토론을 통해 담론 경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태일재단이 용산-노동부-조선일보 삼각편대에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와 전태일재단의 는 해법이 무엇인지는 기획 기사가 끝나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공동 기획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 그려진 노동조합의 모습” 확인과 ‘조선일보와
所信者目也 (소신자목야)而目猶不可信 (이목유불가신)所恃者心也 (소시자심야)而心猶不足恃(이심유부족시)“믿는 것은 눈인데 오히려 눈을 믿을 수 없고, 의지하는 것은 마음인데 마음은 오히려 의지하기 부족하구나."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날 굶어 지쳐 있을 때 안회가 겨우 양식을 얻어 밥을 했다. 그 사이 지친 잠에서 깬 공자가 흐릿한 눈으로 부엌 쪽을 지나 안을 보는데 안회가 밥을 먼저 집어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자는 내심 마음이 상했다. 안회의 행동에 돌려 말하기를 “꿈에 아버지를 뵈었는데 먼저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내야겠다” 했
2023학년도 졸업식이 끝났다. 마침내 고등학교 교육과정 1년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졸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등학교 졸업을 통해 획득된 연결망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기간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한편으로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해 거쳐야 할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대학이 가지는 의미는 너무나 기괴하고 참담한 수준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를 잘 알 것이다. 그 대학을 위해 12년을 불살랐거나 허비했거나 혹은 휘둘렸던 아이들이 오늘 학교를 떠났다.대학 교육에 대해 말을 하자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나치 독일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전범 재판 과정에서 분석한 개념이다.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은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 혹은 “인간의 내면에 악마가 내재해 있다”로 풀이된다.하지만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은 무사유(無思惟, thoughtlessness)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말한다. 즉, ‘악인’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행’의 동기가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앞두고 한국신문들의 기업 편들기가 사실 왜곡 수준을 넘어섰다. 이들은 허위보도를 통한 ‘공포 마켓팅’에 나서며 기본적인 언론윤리조차 포기했다는 비판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제인총연합 등 경제단체들은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고 “이대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사업장 폐업과 근로자 실직 등 많은 우려가 현실화 할 것”이라며 ‘유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국회에 적용
우리 지역의 겨울 주 작목은 마늘이나 시금치입니다. 윗녘보다 덜 춥기는 하지만, 한겨울의 쨍한 추위에도 풀과 함께 작물이 자라니 월동농사가 경쟁력이고 농민들의 주 소득원이지요. 강추위 예보가 있는 날에도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노는가? 일을 하지!’라는 듯 시금치 수확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코끝이 얼어붙는 쨍한 날씨에도 거침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숙연해집니다. 무엇이 저토록 움직이게 하는가? 이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싶고, 그리하여 오늘날 어느 분야에서나 고도의 생산력이 유지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과 이 말을 뜻을 토론해 보았다. 참으로 다양했지만 핵심을 살짝살짝 어긋나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의 생각은 사뭇 놀라운 구석이 있다. 2023년을 보내며 나의 개혁, 혁신, 혁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1학기가 끝나 가고 있다.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학년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는 학교 풍경은 언제나, 어느 곳이나 비슷해 보인다. 내년에는 뭔가 좀 더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는 의지와 기대, 그리고 지나온 한 해에 대한 희미한 반성과 회한의 공간이 지금 학교의 풍경이다.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사
#1“천변을 등장수가 지난다. 등은 무던히나 색스럽고, 풍경은 그의 느린 한 걸음마다 고요하고 또 즐거운 음향을 발한다. 날도 좋은 오늘은 바로 사월 팔일. 아이들이 서너 명, 끈기 좋게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눈에, 그것들은 탐스럽게 신기하다. 만돌이는 윗입술에까지 흘러내린 시퍼런 콧물을 들이마실 것도 잊고 동무들 틈에 끼어, 바싹 장수의 뒤를 쫓아간다. ‘아마, 일 환두 더 줄게다...’ 그는 하 탐스러운 통에, 이내 참지 못하고 장수 못 보게, 그 색색이등을 만져보는데 성공하였다.”박태원 소설 에 나오는 글이다.
너무 일찍 잠에서 깬 일요일 새벽, 홀로 넷플릭스에 접속해 '멧 데이먼' 이름 하나 보고 무심히 플레이 버튼을 누른 영화 한 편이 종일 머리속을 맴돌고 있다. 타국으로 유학 갔다가 살인 혐의로 수형 생활하고 있는 딸을 면회 가는 빌(멧 데이먼)의 굳은 얼굴이 나오는 초반부터 나는 이미 감정에 동화돼 ‘에휴~’ 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새벽 3시라는 묘한 시간 탓인지, 아니면 심장을 물러터지게 만드는 나이 탓인지, 마치 내가 먼 타국 땅 감옥으로 딸 면회 하러 가는 기분이 들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영화의 줄거리나 흐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조금 나은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이젠 전쟁과 자연재해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가까운 일본에선 큰 지진이 일어나 희생자가 수백 명에 이르고 유럽에선 강추위, 또 다른 곳에서는 폭우가 난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언제 전쟁이 끝날지 알 수 없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예전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영토 분쟁이 심각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전쟁이 다시금 벌어질지 몰랐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상이 바뀌기는 바뀌었나 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여성이 후보자로 올랐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그저 놀랍습니다. 농촌 마을에서는 여성 이장도 보기가 드문데, 농업 관련 유일한 국무위원 자리에 75년 만에 첫 여성 후보가 올랐으니, 관심으로만 보자면 성공한 후보자 지명입니다. 이변이 없는 한 인사청문회 후에 임명이 되겠지요? 인사청문회에서의 물가안정이 급선무라는 지명 소감,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산물 가격안정제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보아, 유감스럽게도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농업정책에 대한 후보자의 철학과
지난 12월 7일 한국경제는 에서 "정치 논리에 밀린 무리한 정규직 전환'으로 제빵사 수가 25% 줄었고, 신규 채용 규모가 3분의 1 토막 났다"며 '정규직의 역설' 사례라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제빵사를 고용하지 않고 점주가 직접 빵을 굽는 매장은 2018년 말 283개에서 지난달 말 918개로 224.3% 늘었다며 그 원인을 무리한 임금 인상과 제빵사 직고용 등 왜곡된 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보도는 ‘파리바게뜨 불법 파견 판정에 따른 사회적 합의’의 의미를 왜곡할
최근 교육 ‘생태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약간의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에 대해 천천히 짚어 본다.여기서 ‘생태계’라는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그리고 수많은 학자들이 ‘교육 생태계’를 표방한다. 이미 주류가 된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조금 삐딱하게 이 용어를 생각한다.(일종의 의심이다.)그 의심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1. ‘생태계’라는 용어의 배후에 도사린 ‘자본주의’의 그림자, 이를테면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이미지에 대한 우려:1935년 영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