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지난 12월 7일 한국경제는 <제빵사 직고용의 역설…일자리 25% 줄어>에서 "정치 논리에 밀린 무리한 정규직 전환'으로 제빵사 수가 25% 줄었고, 신규 채용 규모가 3분의 1 토막 났다"며 '정규직의 역설' 사례라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제빵사를 고용하지 않고 점주가 직접 빵을 굽는 매장은 2018년 말 283개에서 지난달 말 918개로 224.3% 늘었다며 그 원인을 무리한 임금 인상과 제빵사 직고용 등 왜곡된 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보도는 ‘파리바게뜨 불법 파견 판정에 따른 사회적 합의’의 의미를 왜곡할 뿐 아니라 SPC그룹의 ‘합의 불이행’의 책임을 은폐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구나 한국경제의 보도가 ‘노조 탈퇴 강요’ 혐의를 받는 황재복 SPC 대표이사 소환을 앞두고 이뤄져 ‘SPC그룹과 짜고 친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받는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임삼빈 부장검사)는 한국경제 보도가 나가고 난 며칠 뒤인 13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 피의자로 황재복 SPC 대표이사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SPC 본사 압수수색 과정에서 PB파트너즈의 부당 노동 행위에 SPC그룹 차원의 개입이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경제는 기사에서 ‘제빵사 직고용’을 ‘시장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점주 의사와 상관없이 정부와 노조가 '가격'(임금)을 대신 정한 부작용"이라고 잘못된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제빵사 직고용’은 2017년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 파견 사실을 확인해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 5400여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시정 지시한 이후, 2018년 1월 제빵기사들이 가입한 양대 노총 노조, 정당, 시민사회단체, 가맹점주협의회, SPC까지 참여해 체결됐다. △파리크라상이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피비파트너즈)를 설립해 고용하되, 제빵기사의 임금을 파리크라상 수준에 맞추고 △그동안의 부당노동행위를 시정하고 △불법 파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할 것 등이 당시 ‘사회적 합의’의 핵심이다. 한국경제는 “정치권과 고용노동부, 양대 노총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SPC는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란 편법으로 불법 파견에 따른 과태료 162억원을 면제받고, ‘직접 고용’ 부담에서도 벗어나는 혜택을 누렸다.

2021년 4월 SPC는 사회적 합의 ‘이행 완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사회적 합의 이행 등을 촉구하며 2022년 3월 28일부터 5월 19일까지 53일간 단식투쟁을 진행했다. 산재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이 전개되는 등 ‘사회적 합의’ 이행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논란이 지속되자 학계·법조계·노동인권 전문가들이 참여한 검증위원회는 “사회적 합의 12개 항목 가운데 2개만 이행됐다”는 중간 검증결과를 발표했다.

한국경제는 기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제빵사의 월급은 2018년 이후 약 50% 뛰었다”며 ‘제빵사 월급이 500만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제빵기사 실태조사 토론회(이하 실태조사)'에서 발표된 노동실태보고서에 따르면 매장 기사의 평균임금은 최대 28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200만원 미만과 300만원 이상의 응답을 제외하고, 93%를 차지하는 200만원 ~ 300만원의 응답자 112명에 대해 최고 임금액에 대한 평균값을 낸 금액으로 실제 응답자들의 임금 평균은 이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 SPC그룹은 2021년 4월 ‘이행 완료’를 선언하면서 “지난 3년간 제빵기사 임금을 40% 인상하는 등 연봉과 복리후생 수준을 파리바게뜨 본사 수준으로 높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리바게뜨지회가 2022년 공개한 자료를 보면,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의 연 급여(고정급 기준)는 2018년 2,300만원대에서 2,900만원대 수준으로 약 25% 오르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해 조돈문 검증위원회 위원장은 “파리크라상과 피비파트너즈에 호봉 테이블과 급여체계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청했으나 (회사가 이를) 거부했다”며 “비밀스러운 자료가 아닌데도 제출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맹점주들의 부담이 늘어난 원인도 제빵사들의 임금 인상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실태조사 토론회에 참석한 박선영 중앙대 중앙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은 PB파트너즈(이하 자회사)가 설립된 후 점주들이 내는 도급비가 1.5배~2배 증가한 것은 ‘새로운 운영·관리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의 주장에 따르면 자회사는 기존에 제빵 용역을 공급하던 8개의 협력업체를 ‘사업부’의 형태로 그대로 흡수해 만들어졌다. 자회사는 가맹점주가 지불하는 도급비 이외에 다른 수익 구조가 없는 파리크라상의 인력 회사에 불과하다. 자회사가 설립되면서 매장 기사를 관리하는 노무직과 사무직이 생겨나고, 자회사 운영을 위한 새로운 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자회사의 조직 체계는 매장에 파견된 메인 기사, 메인기사 들의 출퇴근 확인과 휴무 시 파견되는 지원기사, 지원기사 중 조장 역할을 하는 지원조장, 품질교육주임 QC(Quality Coach), 지원기사와 지원조장을 관리하는 현장관리자 BMC, 제조장, 사업부장, 대표이사로 구성된다. 이전 협력업체는 대표와 제조장으로 구성됐으나, 불법 파견 시절 본사에서 담당하던 현장 관리 업무를 자회사가 담당하게 되면서 (자회사의) 운영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것이 도급비 증가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자회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본사인 파리크라상의 이익은 증가하지만, 점주들의 부담은 늘어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제빵사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제빵사들은 하나같이 요즘 이슈는 ‘고용 불안’이라고 증언하였다. 자체 제빵사를 고용하는 매장이 생기기 시작하고, 과다 경쟁으로 폐업 매장도 늘어나고, 지난해 SPC그룹의 평택 SPL 제빵공당에서 20대 여성 근로자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를 계기로 한 달 넘게 SPC 계열사의 불매운동이 이어져 매출이 줄면서 긴축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사 채용도 줄었다. 특히 카페기사(매장에서 샌드위치나 음료를 만들며, 제빵사보다 임금이 적음)는 처음에 노동조합 설립하고 불법 파견 투쟁할 때 5300명 정도 중에 1200명이었으나 최근 600명으로 줄었다.

도급비가 증가하자 점주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1개 매장 1 제빵기사 원칙’을 지키게 되고, 제빵사 채용이 줄어들면서 남은 제빵사들의 노동 강도는 견디기 힘들 정도이다. 박 연구원은 실태조사 과정에서 만난 제빵기사들이 하나같이 “청년 여성 노동자를 갈아서 빵을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제빵기사들은 매일 9시간 안에 50~100종 정도의 빵을 400~900개 만들어야 하며, '아파도 쉬기가 어렵다'고 증언했다.

임종인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한국경제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빵기사 채용 현황과 자회사 설립과정, 임금 등 근로조건 현황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으나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경향신문은 조선일보의 고 양회동 열사 분신 방조와 유서대필 의혹 보도에 대해 사설에서 “언론이 명확한 근거 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인권을 짓밟으면 그것은 시쳇말로 '언폭'이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윤리헌장에서 "날로 다원화하는 언론환경에서 저널리즘의 원칙과 책무에 충실한 윤리적 언론은 시대의 요청이다"고 밝혔다. 노동 혐오보도가 넘쳐나면서 우리 사회에서 연대는 사라지고 민주주의는 근본에서 위협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불평등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자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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