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을 앞두고 보수신문과 윤석열 정부의 ‘짬짜미’가 한창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0년 4월 경기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2021년에 제정됐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시행됐지만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을 2년 유예했다. 매일경제는 10월 23일 기획면을 통해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사망사고는 더 늘었다"며 ‘실효성’이 없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매일경제는 22일 중소기업중앙회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600곳을 대상으로 긴급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응답자 중 84%가 "중대재해법 확대에 큰 부담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대재해 발생 주요 원인’으로 응답자의 70.5%가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안전수칙 미준수 등)’을 꼽았으며, ‘기계 장비에 설치한 센서・덮개 등 각종 안전 장치 설치’를 생산성 저해 요인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4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매일경제가 실시한 조사는 최근 발생한 후진적인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의식은커녕 안전과 생명에 대한 천박한 인식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중앙일보는 10월 26일 사설 <중대재해법 적용 확대보다 합리적 개선이 먼저여야>에서 "정작 산업재해와 사망을 줄이는 효과는 분명하게 나오지 않았다"면서 "법 조항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실효성부터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을 위반하면 누가 어떻게 처벌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때 까지 확대 적용을 유예하라는 것이다.

 

보수신문이 먼저 분위기를 띄우자 윤석열 대통령이 화답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0일(10월)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라며 ILO 탈퇴와 함께 소규모 사업장에선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서울경제는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의 칼럼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늦춰야 한다>를 통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년 10개월이 지났는데 법 적용 사업장에서 오히려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과도하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위헌 법률이이라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이 칼럼에서 "현행 중대재해법에는 중소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의무 사항들이 너무 많다. 감당할 수 없거나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중소기업들에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며 50인 미만 사업장에 이 법의 적용을 2년간 유예할 것을 주문했다.

세게일보는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의 칼럼 <규제의 덫에 걸린 노동시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위헌 논란에도 여론에 밀려 서둘러 제정됐으며, 예방 효과는 크게 없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2022년 산업재해로 인한 재해자 수와 사망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년부터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으로의 적용은 일단 유예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들 보수신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사람 수’에 따라 차별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의 기본권을 부정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효가 없다’는 주장도 최근 발표한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와는 전혀 딴판이다.

고용노동부가 6일 발표한 ‘2023년 9월 말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재해 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올해 9월까지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45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산재 사망자 510명보다 51명(10.0%) 감소한 수치다. 9월까지 제조업 산재 사망자 수는 123명으로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는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명(14%) 감소했다.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현장의 사고 사망자가 97명으로 한해 전(82명)보다 15명(18.3%) 늘어났다. 반면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업 사망자는 143명으로, 여전히 전체 산재 사망자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한해 전(171명)에 견줘선 28명(16.4%) 줄었다. 올해 건설업의 산재 사망 증가는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과 무관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건폭’ 발언 이후 집중적인 현장 탄압으로 건설노조가 맺은 단체협약은 많은 현장에서 파기됐으며, 안전 관리 활동조차 곳곳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건설노조는 10월 18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건설노조 조합원이 건설현장 안전 실태를 안전신문고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폭로했다. 건설노조는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도 검경이 조사하지 않고, 건설사가 처벌받지 않으니 건설현장은 산 세상과 죽은 세상의 경계에 놓인 ‘이판사판 공사판’ ‘막장’이 돼 버렸다”며 자유로은 노조활동을 요구했다.

보수신문은 “산업재해는 줄이지 못하면서 사업주만 무더기로 처벌받게 될 우려가 있다”, “법이 시행되면 오너 범법자가 양산되고 뿌리 기업의 폐업이 잇따를 수 있다”고 엄살을 떨고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솜방망이 구형과 판결이 반복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가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겨레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나온 총 7건의 판결문을 모두 분석한 결과 사업주(경영책임자)에 대한 선고 형량이 대체로 징역 1년∼1년6개월에 그치고 그마저도 단 1건을 제외하면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돼 실형을 면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일하게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한국제강 사건으로 하청 노동자가 1.2톤 방열판에 깔려 숨진 산재 사건에서 한국제강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검찰은 7건의 사건 가운데 5건에서 원청 대표에게 2년을 구형했다며 사실상 '정찰제 구형'이 아니냐며 비판했다. 한겨레 분석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에만 법 적용 대상이 되는 중대산업재해가 전국에서 229건 발생했는데, 지난 8월 말 기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23건에 불과하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법 조항의 모호성을 줄여 지킬 수 있는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법원은 이같은 주장을 기각했다. 최근 창원지법은 두성산업이 제기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에 대해 명확성 등이 위배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우리 사회의 부실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개선하고,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보건 및 안전 의무 부과로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제정됐다"며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원칙, 평등원칙이 모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 그 적용 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되고 있는 행위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또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고의로 위반하고 그로 인해 중대한 산업재해가 야기된 경우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라며 과잉금지・평등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기각한 바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향신문 [정동칼럼] <왜 근로조건은 인간존엄성인가>에서 “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인간의 존엄성이 우리 헌법의 최고 가치’라고 강조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2021년 1월 19일 '언론윤리헌장'을 발표했다. 언론윤리헌장은 서문에서 "언론은 인권을 옹호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추구한다"며 "날로 다원화하는 언론환경에서 저널리즘의 원칙과 책무에 충실한 윤리적 언론은 시대의 요청이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는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에서 “미디어는 사회의 혐오표현을 막고, 시민의 인권의식을 높임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언론인 스스로 윤리강령을 비롯해 스스로 약속한 ‘인권선언’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언론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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