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공영방송 정상화의 길을 걷던 MBC가 또 다시 위기에 처했다. 최근 한 달 동안 ‘TV수신료 분리 징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지명’,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감사’, ‘공영방송 이사 해임 추진’ 등 공영방송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리고 9일 조선일보는 KBS 이사장에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이, MBC 방문진 이사장에 차기환 전 MBC・KBS이사가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차기환은 이미 방문진 이사를 두 차례 지냈고, KBS 이사도 한 차례 지낸 적이 있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군 침투설을 유포했으며,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맡아 특조위 활동을 ‘세금 도둑’ ‘정치집단’ 등으로 매도하며 노골적으로 진상 조사를 방해했다.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은 방일영장학회 출신으로 8일 열린 방일영의 20주기 추모제에 참석할 정도로 조선일보와 가깝다. 조선일보는 여권 관계자의 말을 빌어 "공영방송 정상화의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박성제 전 MBC 사장은 SNS에 "(차기환은) 2009년부터 6년이나 방문진 이사를 하면서 MBC를 망쳐놨던 검증된 인물"이라며 "목표는 공영방송 장악이 아니라, 공영방송 해체"라고 주장했다.

공영방송 정상화가 아니라 공영방송 해체!

바야흐로 '제2의 MB표 방송장악'이 본격화 된 것이다. 공영방송의 해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평가되는 한국 여론 지형을 완벽하게 '자본' 중심으로 재편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 첫 공식 행사로 전경련, 경총 등 6개 경제단체장들과 회동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업도 국가대표'라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경제단체장들은 윤 당성인에게 노조 불법에 대한 공권력 집행을 요청했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지금 세계는 기업이 국가인 시대'라며 "정부가 노조의 불법・폭력에 법대로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의 '재벌 카르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노동'없는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0대 대선에서 '노동'은 사라졌다. 불과 5년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동 존중 시대’를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조차 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방지를 위해 사회적인 대타협기구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근로자의 삶의 질을 올린다’며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혁하고,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과 비정규직 차별 회사에 대한 징벌적 금전보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던 '노동 존중'과 '양극화 해소'라는 사회적 합의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OECD는 한국을 가리켜 ‘혼란스런 인식을 가진 나라’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불평등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만,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국가의 역할에 가장 소극적이기 때문이란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노동을 지우고 인식의 혼란을 키운 가장 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 권력 감시라는 저널리즘의 역할은 대기업과 재벌의 이익 앞에 균형을 잃었다. 보수신문은 겉으로는 '균형'을 말하고 ‘정치적 독립’을 내세우지만 재벌(대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는 허위 보도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정파적 저널리즘’이다. 특히 재정•조세•복지•고용 등 민생의 기본인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허위보도로 여론을 왜곡하며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왔다.

“무리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청년들의 신규 채용을 막았다”, “공공부문 일자리는 세금알바”, "문캐어로 건강보험기금이 고갈됐다"는 허위 보도는 '공정 프레임'을 만드는데 일조했으며, 연대를 파괴했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 양극화 해소, 복지사회 등 공동체적 삶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보수신문이 만든 탈원전, 국가 재정 위기론은 ’미신‘이 됐으며, 윤석열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었다.

공영방송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론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MBC는 ‘노동’에서 여론의 균형을 위한 마지막 보루이다. MBC는 2021년 11월 <법은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투명인간’ 5백만 명>, <원천징수 3.3%의 비밀…몰라서 당하고 알면서도 당한다>, <콜 못 잡는 대리기사…알고리즘 뒤 ‘진짜 사용자’ 때문?>, <사각지대 ‘1천만 명’인데…“해고할 자유 달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5인 미만 사업장・위장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기본권'조차 없는 소외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대부분의 신문이 기업의 입장만을 보도하면서 ‘무력화’에 앞장설 때, MBC는 <“‘13만 5천 원짜리’ 공사, 혼자 해도 된다”…죽음의 외주화> 등 한전의 하청업체 노동자 38살 김다운씨 사망 사고를 10회에 걸쳐 연속 보도했다. 대부분의 산재 사망 보도가 일회적 사건 보도라는 한계를 갖지만, MBC는 ‘위험의 외주화’가 죽음의 근본 원인이며 작년 한전 산재 사망자 전원이 하청업체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추적해 보도했다. MBC의 취재와 보도로 한국전력은 책임을 인정하고 언론을 통해 공개 사과했다. 2022년 7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서도 MBC의 보도는 공권력 투입이란 최악의 상황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MBC는 7월 18일부터 26일까지 10회에 걸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실태와 구조적 문제를 집중보도했다. <하청노동자의 목숨 건 농성 27일째…"임금 인상이 아니라 회복">, <불황기 줄줄이 무너진 하청업체들, 무너진 조선업 생태계>, <'하퀴벌레' 취급에 최저시급 - 한국 조선업의 현실>, <5백만 원 받으려고 4억 가압류"…괴롭히려고 손배소송?> 등 MBC의 보도는 우리 언론의 파업 보도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무력화하며 자신감을 얻은 윤석열 대통령은 건설노조를 새로운 희생양으로 삼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건설현장 노조 폭력을 ‘건폭’이라 지칭하고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지시했다. '건폭' 프레임 만들기에 앞장 선 조선일보는 故양회동 지대장의 분신을 '분실 방조', '유서 위조 및 대필' 보도로 왜곡하며 자신의 폭력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 '유서 위조 및 대필' 보도는 MBC의 팩트체크로 힘을 잃었다.

조선일보가 5월 17일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며 분신을 방조했다는 보도를 하고,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라며 의혹을 제기하자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분신 방조' 보도가 힘을 잃자 이번에는 월간조선이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월간조선은 “3장의 유서 중 두 개의 필체는 같지만 한 개는 다르다”며 양회동 열사의 유서가 위조됐고 대필로 작성됐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침묵할 때, MBC는 바로 다음 날 관련 자료를 확보해 복수의 전문가에게 감정을 맡겨 '사실이 아니다'고 월간조선의 보도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MBC는 23일 뉴스데스크에서 <"모든 유서 동일 필체…전문가들이 유서대필 일축>, <양회동 두 유서, 동일인 작성했지만 다른 글씨 왜?>를 통해 월간조선의 보도를 팩트체크했다. MBC는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이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는 기사를 쏟아냈다”고 평가했다. MBC는 노태우 정권 시절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비교하며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검찰이 발표하고 언론이 따라갔다면, 이번에는 조선일보 측이 전면에 나섰다”고 조선일보 보도를 일축했다.

MBC의 노동보도가 기존의 사건 위주 보도를 극복하고, ‘구조적 문제’를 다루는 등 한 단계 발전한 계기는 2021년 도입한 전문기자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 MBC는 2021년 6월 ‘전문기자·예비 전문기자 선발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제정했다. MBC 전문기자제는 외부 영입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정 자격을 갖춘 기자를 선발해 전문기자로 양성하는 제도다. MBC는 공모를 거쳐 노동, 국제, 경제, 환경 등 5개 분야의 예비전문기자를 선발했다. 노동 분야 예비전문기자로 선발돼 심층취재를 이어가고 있는 차주혁 기자는 이영광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정책이라든지 현상을 보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많이 한다”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 문제들이 법 제도나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개선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지 많이 고민하게 된다”고 밝혔다. 차주혁 기자는 “MBC의 노동 보도가 ‘노조 편향’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노동자 편향’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은 “차주혁 기자와 그와 함께 취재하고 리포트하는 영상기자들, 그들이 취재한 기사를 제대로 뉴스에 편성하고 방송하는 데스크들 모두가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한다”며 “검경이 주는 자료와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팩트체크도 없이 받아쓰기하는 노동 보도 관행에서 이들의 고민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쯤 '노동’, '노조'를 매개로한 혹독한 공안 정국이 펼쳐졌겠구나 싶다”고 했다. MBC는 올 해에 평가를 통해 예비전문기자들을 전문기자로 발탁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동관이 방송통신위원장이 되고, ‘방송계 일베’로 평가받는 차기환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된다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노동 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동대학원에서 노동법 공부를 시작한 MBC 차주혁 기자에게는 목표가 있다.

“‘일하다 죽지 않게’.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 씨 3주기 추모제에 걸렸던 현수막 문구인데요. 3년째 글자 하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드러나지 않기에 더 위험한 과로 자살 문제를 노동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취재해보려는 목표가 있습니다”

차주혁 기자가 ‘노동전문기자’가 돼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노동’이 공영방송 MBC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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