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세상이 바뀌기는 바뀌었나 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여성이 후보자로 올랐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그저 놀랍습니다. 농촌 마을에서는 여성 이장도 보기가 드문데, 농업 관련 유일한 국무위원 자리에 75년 만에 첫 여성 후보가 올랐으니, 관심으로만 보자면 성공한 후보자 지명입니다. 이변이 없는 한 인사청문회 후에 임명이 되겠지요? 인사청문회에서의 물가안정이 급선무라는 지명 소감,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산물 가격안정제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보아, 유감스럽게도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농업정책에 대한 후보자의 철학과 소신을 답변한 부분이 과거 정황근 장관이 후보자 시절에 제출했던 내용과 똑같아서 지적을 받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하지요? 출발부터가 석연치 않습니다.

오늘날 온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꼬이지 않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농업 부분만큼 골이 깊고 다방면에 걸쳐 난제가 많이 쌓여있는 영역도 드물 것입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만큼 쌓여있는 농식품부 장관의 철학과 소신이 어떠한지는 물론이요, 어떤 이력을 가지고 살아왔는지가 더없이 궁금합니다. 그러니 자꾸 묻고 또 묻는 것이겠지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서 도시계획학 석사과정을 밟은 행정학박사 농식품부 장관은 여성농민들의 고민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같은 여성이니까 잘 알 것이라는 기대감을 섣불리 가져도 될까요?

농한기가 따로 없이 사철 농사일 집안일을 하고 사는 여성농민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리기도 힘들 게 바삐 사는지라 실은 농식품부 장관 후보가 여성으로 지명되었는지조차도 모르는 이가 대부분입니다. 농업생산비는 배로 올랐는데 농산물 가격은 20년 전과 같습니다. 어쩌다 가격이 오른 품목은 필시 자연재해로 수확량이 확 줄어서 그런 까닭에 소득은 덩달아 준 셈이지요. 그러니 자기 소득으로 명품가방은커녕 어엿한 코트도 하나 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요?

여성농민은 뼈 빠지게 일하고도 명품백 같은 것을 제 돈 주고 사면 안 되나요? 나이 들고서 자식들한테서나 선물 받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 하나요? (물론 소비를 권장하는 것도, 소비가 미덕도 아니라고 여기지만 불평등이 너무도 커서 하는 소리입니다.) 말하자면 농민들은 소비를 줄이고도 또 줄이고서 죽도록 일하니까 지금처럼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농업이 그래도 유지되는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은 유입되지 않고, 왔더라도 되돌아가고, 어쩌다 퇴직한 사람들이 연금이라도 끼고 있으면서 그 부지런한 근성을 농업에 바쳐서 농촌을 겨우 젊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긴 장관 후보자는 4년에 걸쳐 자식에게 1억원씩이나 증여세도 없이 용돈을 줬다 하니 이런 현실을 알고나 있을까요?

하루 열시간 넘게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노동을 하느라 관절마다 쑤시고 아픈 여성농민의 애환을 알고나 있습니까? 빠듯한 생활비에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농외소득을 벌어들이면, 4대보험 적용받는다고 여성농업인 바우처지원금도 못 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정작 농사일을 더 많이 하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아, 이런 것도 알아야지요. 여성농민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하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간혹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기도 하는데 등외품은 여성농민의 이름으로 출하를 하기도 합디다. 뼈 빠지게 일하고도 농업에서 자기 결정권이라고는 별로 없지요.

그러면서도 생산공동체, 가령 농협이나 축협 등에서 임원은커녕 조합원으로도 활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논밭도 여성농민의 이름으로 등록된 경우가 드물고, 농기계 사용에서도 여성은 한참이나 떨어져 있습지요. 장관도 여성이 하는 마당에 저만 잘나면 뭘 못하겠냐고, 세상사 저하기 나름이라고요? 불평등이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모른다면 최초의 여성 장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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