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증원’ 숫자 뒤에 가려진 ‘지역 의료 공백'

지난 3월 윤석열 정권은 ‘27년 만의 의대 증원 2,000명 확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맞서 ‘전국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하며 무리한 의대 증원 정책을 규탄하며 병원을 떠났다. 지난 5월 21일 기준 100개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전체 1만 3000여명 중 658명만이 환자곁에 남았을 뿐이다. 

과연, 의대증원이 되면 지역 의료 체계는 좀 더 나아질까?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경상남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정백근' 교수를 만나 현재 의료 갈등 상황을 짚어 보았다. 

지금 상황은 아주

위험하고 비극적이다.

물론 의사도 상황에 따라 파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원칙은 지켜야 한다. 바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다.  4년 전에도 의사 파업이 있었지만, 적어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은  마지막까지 의사가 지켰던 곳이다.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외면하는 '의사'라면  과연 그에게 " '의사' 자격이 있는가? " 되묻고 싶다. -  정백근 교수 인터뷰 중에서 

2020년 4월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 (위원장 정백근 교수)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2020년 4월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 (위원장 정백근 교수)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 다음은 정백근 교수와 나눈 일문 일답이다.

◆ 경상국립대의 경우에도 2025년 의대 증원을 발표했다. 이후 상황은 어떤가?

경상국립대는 의대 증원 학칙 개정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21일 학무회의에서 ‘의대 증원’에 관한 내용은 가결되었으나, ‘지역의사제도 도입’은 논의에 포함되지 못했고, 이마저도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는 ‘대학평의회’에서는 부결되었다. 대학에서 재심의를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25년 입학 기준으로는 138명을 뽑는다면 기존의 78명에서 62명을 증원하는 셈인데, 실제 한정된 학습 공간에서 늘어난 학생을 수용해야 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 경상국립대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의 5% 수준을 지역 의사전형으로 뽑는 것을 검토했으나, 의사 면허 조건 등 의료법 개정이 선행되어야 ‘지역 의사전형’을 추진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제도 도입이 미뤄졌다.

◆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 정책 실효성 어떤가?  

의대 증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의대 정원 확대(매년 400명)',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육성', '한방첩약 급여화'를 제시 했었고, 당시 의료계 반대가 있었다. 

2020년과 2024년을 비교해도 의대 정원 확충 필요성의 이유는 같다.

2020년 당시 정부는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 의과대학 설치를 주장했으나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 내용이 사라졌다. 의대 입학 증원 정책은 국민의 삶을 지키는 정책으로 실현되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의사협회’가 주장하는 ‘의료 수가’ 올리면, 문제 해결되나?

‘의료 수가’는 시장이 활성화 될 때만 의미가 있다. 최신 의료 장비가 들어오고, 이용 환자 수가 많아진다는 가정하에서만 '의료 수익'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이용 환자 수가 적은 비수도권, 지방 중소 도시, 인구 소멸 지역, 농촌에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공공의료는 국민의 생애주기 동안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자신이 살아가는 인근에서 이용하거나 치료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지자체와 정부는 ‘나 몰라라’ 뒷전이고, 시장 경제 시스템에 맡겨뒀기 때문에 지역 의료, 병원이 취약해진 것이다. 민간 병원은 경영상의 흑자, 이윤을 좇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인구가 적은 농촌에서는 ‘돈벌이’ 가 어려운 탓에 문을 닫고 인구가 많은 대도시로 이전하게 된다. 결국 쇠락한 농촌 지역에는 단 하나의 병원도 운영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의사 수’ 늘어나면 지역 의료 공백 메꿔질까?

OECD 국가별 공공의료 비중 비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영국 폴란드 아일랜드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인구 대비 의사 수가 4-35%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터키, 멕시코 다음으로 의사 수가 적은 나라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 한의사를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2.1명으로 OECD 나라 중에서 가장 인구당 의사 수가 적은 나라다. 

현재 정부가 제시한 안으로는 의사 수가 늘어난다 해도 지역의료, 필수 의료 영역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왜냐하면 지역의사제, 공공 의과대학과 같은 선발 전략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의료제도 공백'은 전적으로 ‘국가’책임

윤 정부, 공공의료 확대에 부정적 입장, 공공 의료 예산 지원 축소 강행

공공의료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취약 지역 또는 진료 분야 근무를 조건으로 하는 특수목적 대학 설립, 기존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동시에 지역 인재전형을 군 단위 지역 전형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배출된 의사들이 근무할 취약 지역에는 공공 보건 의료기관이 설립되어 있어야 하고, ‘지역 의사제’ 를 도입하기 위한 국립 의대 정원 확충, 공공 의대 설립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실손보험이 부추기는 과잉 진료 문제도 있지 않은가?

실손보험 보장이 늘어나면서 의사는 환자에게 과잉 진료를 권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바로 '의료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필요한 의료보험 지출은 정작 필요한 필수 의료 재정의 지원을 빼앗게 된다. 의사들이 산부인과나 소아과 등 필수의료를 외면하고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에만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손보험은 개인이 보험 가입 시 맨 마지막에 가입하게 되는 보험

정작 단 하나의 보험도 가입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 의료 자원 빼앗는 셈

◆ 한국은 의료서비스 공급에서 공공부문의 비중이 기형적으로 취약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비교할 만한 국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공공의료가 취약한 나라다.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은 6%에 채 미치지 못하고 공공 병상의 비중도 10%를 조금 웃돌 뿐이다. 

코로나 최전선 지켰지만, 재정 적자에 시달리게 된 마산의료원

코로나19의 최전선을 지킨 ‘경상남도 마산의료원’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 나서서 헌신적으로 ‘지역 의료 공백’을 메꿔 주었다. 코로나 전에는 외과 수술 등 다양한 형태의 진료가 이뤄어졌으나 정부가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하면서 환자에 대한 진료와 처방이 단순화 됐다. 

공공 의료원에 이미 입원된 환자들을 모두 퇴원 시키고, 코로나 관련 치료만 이뤄지게 되면서 기존의 다양한 의료 체계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관련 전문의가 병원을 떠나게 되거나 응급 상황에 대응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면서 시민의 인식에는  ‘공공병원은 의료의 수준이 떨어진다’ 라는 부정적 인식이 덧대진다. 

현재 마산 의료원 병상 이용률(2024년 1월 기준)은 51.6%로 코로나19 이전인 80-90%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며,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2023년 지난해에만 9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는데, 경상남도는 운영금 지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경상남도'와 '정부'는 공공 의료 병원에 지원 정책을 펼치지 않고 있다. 

메르스, 사스  등 국가 차원의 위급한 상황이 오면, 공공병원은 정부의 비상 의료 체계로 활용되지만 비상 상황이 종료 되고 나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그러니 의사 입장에서도 ‘공공 의료원’ 근무를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최근 전국 41개 지방의료원에 재정 지원 예산을 확정했지만 의료원 한 곳당 2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한해 적자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미 ‘경기도’와 ‘부산시’는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별도 운영비를 책정해 지역 공공 의료 기관에 안정적인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구위기에 대응하는 지역의 미래 전략(국회미래연구원 연구보고서)시군구별 의료시설 접근성 현황(2021년 기준)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인구위기에 대응하는 지역의 미래 전략(국회미래연구원 연구보고서)시군구별 의료시설 접근성 현황(2021년 기준)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 인구 3만 이하 농촌 지역, 제대로 된 병원이 없다

하동, 산청 등 인구 소멸 군 단위 지역에는 제대로 된 병원이 없다. 인구 3만 이하인 ‘의령’ 지역 병원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앞으로 의료 취약 지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건강과 의료 이용의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서부경남의 상황은 거의 재앙 수준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부경남은 경상남도 내에서도 입원 진료, 응급 및 외상 진료, 심·뇌혈관질환 진료 등 필수의료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 시민사회 정치 요구로 해결해야 할 '공공 보건 의료' 시스템

영국은 현재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긴하지만. 정부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의료보장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영 의료 서비스)을 한다. 사실상 국가가 나서서 무상 의료를 보장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합법적인 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하며(치과 제외) 그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국민의 기본 권리 그중에서 건강과 의료권을 보장 받는 권리에 대해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직장인 가입자는 기본적으로 보수월액의 7%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있으며, 의사 수입의 절반 이상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오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시민사회는 ‘의료 분야’는 잘 모르는 분야라고 치부하면서 정부나 전문가 의사 집단에게만 맡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이 심화되면 지역 공공 의료의 상황은 더욱 황폐해 질 것이다.  

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돈벌이 수단'에만 맡겨야 하나? 시민사회가 나서서 정부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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