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돈도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남성문화재단 김장하 이사장의 말이다. 그가 또 한 번 이 말을 실천에 옮긴다.
남성문화재단은 재단 해산을 결의하고, 기본자산 현금 6억 5000만 원과 서경방송 발행 주식 2만주(평가액 28억여원)를 경상국립대 발전기금재단에 지정 기탁기로 했다. 자산 수증증서 전달식은 오는 9일 5시 경상국립대 GNU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경상국립대는 김장하 이사장의 유지가 이어지도록, 재단 기존 이사진이 참여하는 ‘남성문화사업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남성문화재단의 주요사업인 ‘진주문화를 찾아서’ 발간 사업 등은 진주학 관련 학술·연구사업으로 지속 추진된다.
김장하 이사장은 조건 없는 기부와 지원으로 유명하다. 수십억의 사재를 들여 1984년 명신고등학교를 건립한 뒤 1991년 국가에 무상헌납한 것은 그 한 사례다. 김 이사장이 명신고를 국가에 기증하며 했던 말은 지역사회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설립된 것이 이 학교라면, 본질적으로 이 학교는 저 개인의 것일 수 없습니다. 본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본교가 공공의 것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공립화요, 그것이 국가 헌납입니다.”
김 이사장의 발자취는 지역단체 곳곳에도 남아 있다. 김 이사장은 1990년 진주시민주로 창간한 옛 진주신문 창간 주주 겸 이사로 활동했고, 1992년에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결성을 주도해 200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다.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진주문화연구소 이사 등도 맡았다.
지역문화 창달을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진주가을문예를 만들어 문학신인 발굴에 힘썼고, 진주오광대 복원을 비롯해 마당극 전문극단 ‘큰들’, 극단 현장 등을 지원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지역 문화예술인 중 많은 사람이 그의 지원을 받았다.
청년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등도 거듭했다. 김 이사장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 가운데 한 명이 문형배 헌법재판관이다. 2019년 김 이사장의 생일잔치에 참석한 문 재판관은 눈물로 김 이사장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현하며 이 같은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고맙다고 인사드리러 갔더니 ‘고마워할 이유가 없다. 자신은 이 사회에 있는 걸 저에게 준 것 뿐이니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으라’고 말씀하셨다. 제가 우리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이 있다면 김 선생님의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 이사장을 '존경하는 어른'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진주지역에는 많다.
한편 김장하 이사장은 1944년 사천시 정동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그는 친구들이 학교를 다닐 때 삼천포의 한 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낮에는 약을 썰고 밤에는 공부했다. 1962년 한약종사(한약업사) 자격을 획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