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남성당한약방 건물 매입계획,
김장하 선생 거절하지만..
시민사회도 “역사교육자료로 활용해야”

진주시 동성동에 위치한 남성당한약방(1973~2021.5.31), 김장하 선생은 이곳에서 값싼 가격에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로 인해 얻은 수익금 대부분을 지역에 환원했다.
진주시 동성동에 위치한 남성당한약방(1973~2021.5.31), 김장하 선생은 이곳에서 값싼 가격에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로 인해 얻은 수익금 대부분을 지역에 환원했다.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오랜 기간 진주시민사회의 든든한 후원처였던 남성당한약방이 지난 5월 30일 문을 닫은 가운데, 남성당한약방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진주시는 지난 6월초 남성당한약방 건물을 인수해 1층은 한약방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2~3층은 강의실 등 시민들이 활용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해온 김장하 선생의 반대로 사업 추진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도 남성당한약방 보존을 바라고 있는 가운데, 남성당한약방 보존을 위해서는 김장하 선생의 마음을 돌려놔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김 선생이 한약방 보존에 반대하는 것은 본인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에 부담감이 크고, 혹여나 진주시가 기념관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란 후문이다. 그럼에도 지역에서는 남성당한약방을 보존해 역사에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약방이 역사·교육자료이자, 후원문화가 정착되는 기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진주시에 따르면, 시는 남성당한약방이 위치한 남강로 677-1번지 건물을 사들일 계획을 지난 6월 2일 세웠다. 재선에 성공한 조규일 진주시장의 지시에 따라서다. 진주시 핵심관계자는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인 6월 2일 조규일 시장이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며 “김장하 선생이 건물을 내놨다고 해 인수할 뜻을 여러 차례 전했는데, 번번이 거절하셔 아직까지 사업이 진척된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시는 남성당한약방 보존을 위해 앞으로도 김 선생을 설득할 뜻을 내비쳤다. 시 핵심관계자는 “남성당한약방은 진주의 역사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할 일”이라면서 “개천예술제를 만든 설창수 선생을 기록화하는 작업 당시에도 설 선생의 생전 기록들이 소실돼 아쉬운 점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득작업은 이어가겠지만 김 선생의 철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시민사회에서도 남성당한약방이 보존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성당한약방이 진주의 역사 가운데 하나이고, 김 선생이 해온 후원이 후세대에게는 교육자료가 된다는 이유이다. 한약방 보존이 후원문화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김장하 선생이 오랜 기간 후원했던 옛 진주신문 관계자는 “김장하 선생님 개인을 기록하기보다 그의 선행들을 기록해 후대에 물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자료이자 후원문화를 촉진하는 데 한약방 보존이 큰 역할을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설립 초기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극단 현장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전하며 “후세대에게 좋은 교육자료가 될 거다. 후원문화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장하 선생이 오랜기간 지역사회에 해온 후원들을 언론보도로 알게 됐다는 30대 ㄱ씨는 “진주에 이러한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가,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분이 활동했던 한약방이 보존돼 진주시민들이 이 분의 뜻을 이어가면 좋을 것 같다. 후세대들이 보고 배울 점이 많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이 분과 같은 인물들이 진주에서 많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보는 훈훈한 기사이기도 했고..”라고 덧붙였다.

 

2019년 김장하 선생의 생일날, 시민들이 마련한 축하연 자리에서 김장하 선생이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이 자리는 비밀리에 추진됐다. 김장하 선생이 반대할 게 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19년 김장하 선생의 생일날, 시민들이 마련한 축하연 자리에서 김장하 선생이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이 자리는 비밀리에 추진됐다. 김장하 선생이 반대할 게 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장하 선생은 1973년 진주시 동성동에 한약방을 개소한 뒤 오랜 기간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왔다. 10여년 간 옛 진주신문을 후원하며 지역언론을 돌봤고, 진주문화연구소,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진주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 힘썼다. 진주가을문예가 27년간 운영되며 지역작가를 발굴할 수 있었던 것에도, ‘진주문화를 찾아서’라는 책자가 나와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릴 수 있었던 것에도 그의 도움이 있었다.

김장하 선생이 1984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해 명신고등학교를 연 뒤, 1991년 국가에 무상헌납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면서 기금 34억 5000만 원 전액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탁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결성을 주도해 200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다. 여러 문화예술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어려운 시기 도움을 주기도 했으며, 가난한 학생들에게 오랜 기간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은 그의 지론에 따라 이루어졌다.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 단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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