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4월 16일.그리고 해마다 다가오는 그 날.깊은 슬픔으로 각인되어버린 안타까운 날이다.슬픔이란 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기 어렵다. 다만 살면서 조금씩 무디어질 뿐이지만...슬플때는 한없이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슬픔은 슬픔으로 치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오랜만에 비탈리의 샤콘느 음반을 꺼냈다.도입부부터 흘러 나오는 장중한 오케스트라 그리고 이어 나오는 애절한 바이올린의 울림.이것 하나만으로도 슬픔은 위로가 될 수 있다.많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샤콘느를 연주했지만 프랑스 출신의 지노 프란체
눈물마저 죄가 되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흉터, 제주 4.3의 흔적을 찾아 4월 2일부터 4일까지 다녀온 역사탐방을 3회에 걸쳐 나눠 적는다. 역사탐방은 제주도 초청으로 경남을 비롯한 전국 14개 시도 파워블로거와 SNS기자단, 공무원 90여 명의 에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명예기자 자격으로 다녀왔다. 팸투어 이야기를 3회로 나눠쓴다.글 싣는 순서1. 섬뜩한 진실과 마주하는 제주 4.3기념관(클릭)2. 꽃 피워라 제주 4.3정신(클릭)3. 4월 동백을 본다면 제주 4.3을 떠올려보자
눈물마저 죄가 되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흉터, 제주 4.3의 흔적을 찾아 4월 2일부터 4일까지 다녀온 역사탐방을 3회에 걸쳐 나눠 적는다. 역사탐방은 제주도 초청으로 경남을 비롯한 전국 14개 시도 파워블로거와 SNS기자단, 공무원 90여 명의 에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명예기자 자격으로 다녀왔다. 팸투어 이야기를 3회로 나눠쓴다.글 싣는 순서1. 섬뜩한 진실과 마주하는 제주 4.3기념관(클릭) 2. 꽃 피워라 제주 4.3정신3. 4월 동백을 본다면 제주 4.3을 떠올려보자 정부의
툭 하고 동백이 질 때면 제주도로 떠나야 한다. 동백을 보러, 흉터를 보러 갈 때다. 시간이 흐르면 그날의 기억은 흐려진다.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더구나 침묵을 강요받았던 그 날의 상처는 이제 봄이면 동백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흉터로 다가온다. 흉터는 그날을 떠올리게 한다. 눈물마저 죄가 되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흉터, 제주 4.3의 흔적을 찾아 4월 2일부터 4일까지 다녀온 역사탐방을 3회에 걸쳐 나눠 적는다. 역사탐방은 제주도 초청으로 경남을 비롯한 전국 14개 시도 파워블로거와 SNS기자단, 공무원 90여 명의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0.0px Helvetica}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0.0px Helvetica; min-height: 12.0px}어린 시절 수업시간에 배운 노래들 중에 봄만 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그 중 하나의 가사는 대충 이렇다.“솔솔 부는 봄바람 쌓인 눈 녹이고, 잔디밭엔 새싹이 파릇파릇 나고요. 시냇물은 졸졸졸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섬과 별 다름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벼랑가에 얼마쯤 포전이 있고, 언덕배기에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다.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 배경에서 통영은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집들이 먼저 그려지는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칭을 안고 있는 도시. 충무 자개와 소반, 통영갓, 통영누비, 통영꿀빵. 바닷가이니 해산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문학, 미술, 음악이 고루 다 갖추어진 도시. 거기에 조선수군의 위용을 가진 역사적인
설 가까워지면 생각난다. 추워지면 더욱 그리워진다. 진주 시내에서 합천, 의령 방향으로 가려면 넘는 말티고개가 바로 그곳이다. 봉황의 동쪽날개에 해당한다. 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은 진주를 봉황이 날개를 크게 펼쳐 에워싼 형상을 한다. 서쪽 날개가 두고개와 당산재이고, 동쪽날개가 말티고개와 선학산이다. 이 고개에는 모진 매를 맞다가 죽은 나막신쟁이에 관한 설화가 깃들어 있다. 찾은 날은 설을 며칠 앞둔 1월 27일이었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도 지났는데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시내에서 말티고개로 넘어가는 옥봉삼거리에
진주 나들이를 계획하며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남강과 진주성, 논개 등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바로 진주성 내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을 찾으면 옛날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진주 도심 속에 있는 진주성은 접근이 쉽다. 정문에 해당하는 공북문을 들어서면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이 우리를 반긴다. 진주성을 에둘러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며 성곽을 따라 걸으면 당시의 총통들이 화약에 불을 붙이면 바로 적들을 향해 날아갈 듯 서 있다. 총통 전시물을 지나 2018년 11월 말, 10년 만에 재단장한 국립진주박물관
희망을 나누는 1월이다.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한 해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고 싶을 때이기도 하다. 단숨에 산정에 올라 탁 트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진주 도심에 있다. 선학산 전망대가 바로 그곳이다.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오전 6시 40분. 말티고개 봉황교 아래에 차를 세웠다. 비봉산과 선학산을 연결하는 봉황교에 올라 진주 시내를 바라보자 까만 도화지 속에 먼지가 내려앉은 듯 드문드문 하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비봉산 쪽을 바라보자 대봉정도 조명에 의지해 존재를 드러낸다. 가로등과 달빛에 의지해 산을 올랐다. 마치 거
화개동천 벚꽃 십 리길, 겨울 칡꽃 핀다는 화개동천 가는 길, 꽃비 나리는 사월도 비켜가고 만산홍엽 그 황홀한 단풍철도 에돌아가고 우린 을씨년스럽게 밤색빛 겨울 나절을 따라 마실을 갔다. 신선이 노닌다는 옛 말을 위안 삼아 그래도 좀 낯익은 하동 포구길 끝자락 화개장터로 조잘대며 가는 시간 내내 차창 밖 날씨는 맑지 않았다.장터로 가는 길 얼마만인가, 대학 3학년 때 교지 기자로 화개장터 취재갔던 기억을 더듬어 오랜 손 때 묻은 한 척 짜리 자로 모시천을 팔던 노인, 호미, 괭이를 팔던 대장간 같은 철물점, 붓을 현란하게 놀리던 민
서울에서 진주는 천릿길이다. 지금이야 교통수단과 길이 좋아서 3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지만 조선 시대는 머나먼 길이었다. 서울에서 촉망받던 최영경(崔永慶1529~1590)이 일가족 모두를 데리고 진주로 내려온 까닭이 궁금했다. 남명선생이 돌아가시자 뜻을 잇기 위해 천릿길을 주저하지 않았다. 진주 도동 만죽산 기슭 대나무 숲속에 집을 지어 수우당(守愚堂)이라고 했다. 진주 연암도서관과 남강초등학교 사이에는 수우당 최영경의 집터가 있다. 집터였던 곳에 1936년 수우당의 위패를 모신 도강서당(道江書堂)을 세웠다. 남강(藍江)가 도동(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의 시, -어머니 배추잎 같은 발소리와 가을볕도 서러운 방울장수 ㅡ신경림 시 목계장터 싯귀ㅡ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장터. 문둥병에 걸려 아들 술이와 생이별하고 혹여 장터에 나타날까 찾아 헤매는 술이어
진주 사는 순간순간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중 하나는 가까운 곳에서 시원한 전망을 구경하는 즐거움이다. 시내에서 걸어서 20분 이내 거리에 선학산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경치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맑게 한다. 지리산에서 출발한 산세는 남강과 함께 힘차게 내달려 진주에 이르러 숨을 고르며 산세가 부드러워진다. 마치 가야 시대 고분군을 닮은 모습들은 여성적이다. 실제 진주의 산들은 다들 높지 않다. 진주의 주산(主山)인 비봉산은 봉황이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듯한 모양새다. 동쪽 날개는 말티고개를 지나 선학산에 이르고,
모두가 지식인인 요즘. 참된 지식인은 누굴까.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긴 지식인을 찾아 뜨거운 여름의 햇살을 동무 삼아 집을 나섰다. 실천하는 학자였던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로 배운 바를 실천에 옮긴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1546~1623) 선생의 흔적이 깃든 부사정(浮査亭)을 찾아 나섰다.진주시 금산면 금산농협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빠른 길이지만 금호지(금산못) 쪽으로 에둘러 들어갔다. 부레옥잠을 비롯한 각종 수중 식물들이 못을 가득 메웠다. 금호지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신라 때 형성된 자연 못이라고 전
에어컨 밑의 피서만을 꿈꾸게 하는 요즘이다. 잦은 비와 맞물려 더운 날씨는 기분마저 축축하게 만든다. 지난 6월 17일 진주문화연구소에서 마련한 ‘진주 옛 건축의 자취를 찾아서’ 문화기행에서 고영훈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함께한 기억을 정리하며 역사를 품은 시간을 떠올리는 기억은 시원하게 젖게한다. 이날 진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진주성에 모였다. 촉석문에 모여 진주성(촉석문->촉석루->영남포정사->북장대->공북문)을 시작으로 용산사(용호정원), 광제서원, 청곡사, 지수면 청원리 이씨 고가를 둘러보았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1.0px Helvetica; color: #272c36}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1.0px Helvetica; color: #272c36; min-height: 13.0px}span.s1 {font: 10.0px Helvetica; color: #000000}span.s2 {text-decoration: underline ; color: #456daa}클래식 음악사에서 보면 “황제”란 표제가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0.0px Helvetica}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text-align: justify; font: 10.0px Helvetica; min-height: 12.0px}오늘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첫 경기가 있는 날이다.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지만 올해는 그 열기가 시들하다. 아마도 남북회담과 북미회담, 지방선거를 치르고 난
설렜다. 2월 21일 문을 열었다는데 꼭 가보고 싶었다. 역사와 미래가 만나는 곳을 나는 박물관이라 부른다. 경상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더부살이하던 박물관이 새로 건물을 지어 옮겼다. 더구나 박물관에는 고문헌 도서관도 함께 있다. 마치 대학 신입생처럼 설레고 부푼 마음을 안고 3월 20일, 학교를 찾았다. 지리산을 닮은 정문을 지나 본관 뒤편 공사 중인 국제문화회관 바로 뒤에 ‘우리 지역 문화의 정수를 담았습니다’라는 걸개그림과 함께 경상대학교 박물관/고문헌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에 들어서자 왼편에 위에서 아래로 길
어제 수요일 점심 때 학생 둘과 돼지국밥을 먹었다. 진눈깨비가 찬바람에 흩날리는 날씨여서 국밥 한 그릇 하기 딱 좋았던 것이다. 에 전화했더니 자리가 없단다. 전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줄 짐작했지만. 으로 가서 국밥을 향한 애정을 풀어놓았다. 순대국밥에 든 시레기는 보들보들했고 순대는 말랑말랑했다. 낮술이 그리웠지만 용케 잘 참았다. 손님이 꽤 많았다.오늘 목요일 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었다. 간밤의 숙취로 쓰라린 속을 풀어헤치기엔 돼지국밥만한 게 없다. 오늘은 혼자
겨울 지나 봄으로 가는 길. 묵은 겨울을 털어내고 봄을 보고 싶었다. 지나온 세월의 더께만큼 넉넉한 풍경이 품어주는 공간에서 느긋하게 즐기고 싶었다. 봄 햇살을 길동무 삼아 3월 12일, 천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 산청군 단성면 남사예담촌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다가 나오는 첫 번째 삼거리에서 입석‧청계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시각도 멈춘 듯 천천히 흘러가는 마을을 지났다. 승용차로 10분 정도 들어가면 입석리가 나온다. 입석리는 입석(선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입석마을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