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모임] 조선 7대 시장 중의 하나라는 화개장터

화개동천 벚꽃 십 리길, 겨울 칡꽃 핀다는 화개동천 가는 길, 꽃비 나리는 사월도 비켜가고 만산홍엽 그 황홀한 단풍철도 에돌아가고 우린 을씨년스럽게 밤색빛 겨울 나절을 따라 마실을 갔다.

 

신선이 노닌다는 옛 말을 위안 삼아 그래도 좀 낯익은 하동 포구길 끝자락 화개장터로 조잘대며 가는 시간 내내 차창 밖 날씨는 맑지 않았다.

장터로 가는 길 얼마만인가, 대학 3학년 때 교지 기자로 화개장터 취재갔던 기억을 더듬어 오랜 손 때 묻은 한 척 짜리 자로 모시천을 팔던 노인, 호미, 괭이를 팔던 대장간 같은 철물점, 붓을 현란하게 놀리던 민화장이.

가물거리는 그 기억이 가슴 두근거리게 했다.

"한 자 하구나 두 자로 , 서이 너이 ...

"노인이 천을 셀 때 부르던 목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화개장터는 지금 그런 모습이 아니지만 젊은 날 보았던 장터 그림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쌍계사, 칠불사, 구례 가는 길에 스치기만 했던 현대식 화개장터.

주차장 바닥에 우리 먼저 앉은 흰 눈이 먼저 반긴다.

김동리 소설 역마의 배경, 한 대중가수가 부른 화개장터 덕분에 유명해진 화개장터 답게 눈비 내린 날에도 옥화주막집은 북적거렸다.

소설 속에 옥화가 태어나고 옥화 아들 성기가 태어난 옥화주막 .

같은 공간이 아닌 줄 알면서도 문학 속에 공간처럼 일치시키는 마력으로 막걸리와 파전을 음미하는 시간, 밥집 벽에는 이곳을 오간 이들 흔적이 빼곡하게 남았다.

도리뱅뱅 앉아 원각샘이 들려주는 화개면 탑리 역사와 장터 규모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가항종점이란다.

하동포구 끝까지 남해안에서 들어온 배들이 섬진강을 따라 화개골 장터까지 상선들이 들어오는 포구 끝, 배들의 종착지.

화개장터는 그래서 조선 7대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나는 산나물, 약초와 남해안 해산물, 하동, 구례 등지에서 나는 농산물이 다 모이는 곳, 수많은 보부상들과 방물장수들이 상권을 휘젓고 다녔을 커다란 시장.

섬진강, 지리산, 문학, 노래라는 말만 들어도 묵직한 삶들이 어우러질 것 같은 이름, 화개장터다.

주막집 샛문을 열고 뒤뜰로 가니 민박을 하는 방이 있다.

마당엔 능수벚꽃나무 한 그루 있고 인조 짚으로 이엉을 엮은 지붕 두 개가 주막집 답게 옹숙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사립문도 있다.

봄날 지나는 길에 벚꽃이나 봐야겠다 여겼다.

옥화주막에서 따뜻한 소고기 국밥과 재첩 백반을 먹고 시장구경을 했다.

입구에 화개장터 연혁이 있다.

유행가 화개장터 가사비와 보부상 동상.

2014년 화재로 시장이 반쯤 불타 버리고 이듬해 70~80 여 개 상가들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개천예술제 상가 같다.

야외백화점 같다.

한바퀴 빙도는 동안 약초와 나물이름을 적은 한글 글씨체만 눈에 들어왔다.

어느 시장이든 돌다보면 낯익은 약초 이름들, 낯설은 이름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중에서 이슬송이 , 신이화 (辛夷花)라는 이름이 낯설었다.

신이화는 목련꽃봉오리라고 한다.

목련꽃잎차는 목을 건강하게 해 준다고 했는데 신이화 역시 비염에 좋다고 칭찬을 한다.

연근을 말려서 바싹거리는 맛을 안겨주는 가게, 관광객들이 지날 때마다 가게집 아들인지 어린 학생이 쥐어주는 것을 입에 머금으며 무심하게 지나니 미안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상가마다 따뜻한 차를 우려내 주는 판촉활동, 고달픈 자영업자들 겨울살이가 만만치 않았다.

시장을 반쯤 돌아 들어가니

모시잎 송편이라는 낯선 떡집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해서 한 봉지 샀다.

모시옷을 만드는 그 잎이라고 한다.

주인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날이 추워서 더 오래 있지 못하고 시장을 돌아 차에 올랐다.

화개 벚꽃 십 리길 따라 올라간 곳은 찻집 다우.

사진에서 본 벚나무가 오랜 나이를 머금고 끝없이 이어졌다.

하늘과 잇닿은 신선이 사는 곳 동천이란다.

봄날 벚꽃길을 상상하며 오래도록 달린 듯하다.

찻집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주인장이 동문 선배라고 한다. 기타를 잘치고 노래도 잘한다.

차도 잘 만들고 글씨도 잘 쓰고 수예도 잘하는 화개동천 다우 주인장 .

구기자, 발효차를 번갈아 맛보며 무병장수 할 수 있는 이상향에 진실로 몸을 기대앉아 보는 듯 우린 그렇게 마실을 음미했다.

화개란 곳이 문학 작품 하나, 유행가 가사 하나로 동천이 된 것은 아니다.

사시사철 피는 꽃과 끝임 없이 살아내는 풀들과 먹거리와 공기, 노련한 삶에서 어설픈 삶까지 모두 포용하는 사람들 생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리라.

어디를 여행하든 먼 거리든 가까운 거리든 얼마나 걸리느냐 보다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 하면 그 길이 편하고 가까운 것이리.

 

風蒲獵獵 弄輕柔

풍포엽렵 농경유

四月花開 麥已秋

사월화개 맥이추

看眞頭流 千萬疊

간진두류 천만첩

孤舟又下 大江流

고주우하 대동류

 

바람결에 부들잎 살랑살랑 흔들리고

사월 화개 땅에는 벌써 보리 익었네

두류산 천만 봉우리 다 구경하고

외로이 배타고 다시 큰강 따라 내려가네

탁영 김일손 시

 

보리가 익고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화개동천, 섬진강 반짝이는 십리, 이십 리 뱃길을 탁영선생처럼 따라 내려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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