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음 음 음 음 음 음 음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면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음 음 음 음 음 음 음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넌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음 음 음 음 음 음 음

- 조동진 노래 [제비꽃]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 한밤중에 동생이 경기가 들었어. 엄마는 우는 아이를 업고 마루며 마당이며 왔다갔다 밤을 새웠지. 윗마을 문의 집에 가서 숨통을 틔워야 한다며 손가락을 따고 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어. 문의원을 우리는 문의라고 했지. 성이 문씨인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어. 마을 깔끄막에 대숲이 있는 집에 살았어. 살 밖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안채가 나왔는데 난 한번도 문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 면허도 없이 사람들 치료한다고 누가 찔러서 갔다고 했다. 어린 시절 그 대숲은 꽤나 오래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서 없어졌다.

문의는 내 동생을 살리지 못했다. 어느 봄날인지 동생은 양당마을 산속에 묻혔다. 이듬해 소복을 입은 엄마 따라 동생이 묻힌 언저리에 따라간 적 있다. 50년 전이다.

♧ 마을에 장걸배이가 나타났다. 허우대도 좋고 젊은 장정이었는데 페인트통같은 깡통을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빌어먹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놀렸다. 어느 짖궂은 언니가 "꼬치 한번 보여주면 빵 줄게." 했다. 옷을 내리고 보여 주었는지 안 보여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 큰 처녀애가 그런 말을 하며 놀렸다는 게 놀랄 일이지 않는가. 너덜너덜한 넝마 옷가지를 걸치고 선한 얼굴을 한 거지, 그러다 어느날 그가 사라졌다. 나라에서 잡아갔다는 이야기도 있고(아마 삼청교육대) 먼 고장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뒤 마을에 거지는 하나도 오지 않았다. 검은 턱수염과 수염 위에 선한 눈빛, 아마 지금 나타나도 알아볼 것 같다.

♧ 동네에 같이 놀던 동생이 연탄을 피우고 자살을 했다. 여상을 졸업하고 직장도 잘 다니고 있었는데 무엇이 그 친구를 홀끼고 갔는지 허망하게 데리고 가버렸다. 아직 오지 않은 초여름 일이지만 그 아이는 진주시내에서 여상을 다녔는데 이야기해 주는 일을 참 좋아했다. 시골에서 극장구경을 한번도 못한 나를 위해 영화 이야기도 해주고 촉석루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때 해준 이야기가 영화 테스. 내가 책으로 읽은 것보다 더 애틋하게 해주었네.

모란이 지고 작약이 화들짝 필 무렵 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꽃들이 피고지고 할 무렵에도 병이 깊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졸업 후 그렇게 생을 정리했겠지.

살아 고향에 있어 그 때를 이야기하며 재잘거렸으면 더 좋았을 것을. 우리들로 인하여 엮였던 모든 것들이 그로부터 다 잊혀졌다. 곧 그 집 담장 밑에 작약꽃이 필 것이다.

그것은 봄이 다 지나갔다는 것이기도 했다.

♧ 말티고개 새꾸띠기 집에 새끼틀이 돌돌 돌아간다. 지난 가을에 쟁여 갔던 짚들이 거의 바닥이 나고 일감이 떨어지면 젊은 과부 봄살이가 처연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새끼 꼬는 집이라 하여 새꾸띠기, 새꾸데기라고 불렀다 한다. 아들 둘을 혼자 키우고 있었는데 하나는 몸이 약해서 일찍 잃어버렸다 한다. 학교도 제대로 못보내 이후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다. 시집와서 들은 이웃집 이야기다. 그 집터에 살구나무 한 그루 있다. 작년 봄 그 살구나무와 살구나무와 마주한 사립문이 있던 자리에 가 보았다.

봄날은 이렇게 삶들이 설화이고 영화 같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