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타지에 사는 딸이 친정 어머니가 한글을 못깨쳐 글을 배우고 싶어한다고 연락처를 보내주었다. 아무날 날을 잡아 만났는데 집에서 사무실까지 오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고 했다. 연세가 아주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한글을 제대로 못읽어 사는 데 영 자신이 없다고 했다.

"저희는 방문 수업이라 집에서 받으셔도 되는데 이렇게 힘들여 오셨어요?"

"동네 사람들 알까봐 부끄러버서요. 동네 사람들은 내가 글을 다 아는 줄 알아요."

"그럼 매주 오실 수 있으세요 ? 댁에서 가까운 저희 지국으로 가시면 되는데 멀리까지 오시고."

“병원도 가까이 있고 해서 이리로 찾아왔십니더."

방문수업 나가기 전 한 시간을 그 할머니를 위해 썼다. 보통 아이들의 경우 10분이면 될 수업을 과외하듯 한 것이다. 글씨 쓰는 속도, 인지능력을 고려하여 하다보니 그렇게 걸렸다. 가끔 할머니 몸에서 오징어 냄새가 났다. "차멀미를 해서.... 오징어다리를 씹어 먹으면 괜찮다캐서. 냄새 나지예?"

"아이고, 저는 괜찮은데 매번 힘들게 오셔서 어떡해요?"

할머니는 알콜 중독이 심한 남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한다. 농사도 혼자 다 짓고 자식들 공부도 혼자 다 시키느라 뭘 배우고 싶어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작년에 영감 죽고 이제 골병들기 전에 배워볼라고 했는데 차편이 불편해서 엄두도 못내다가 그래도 버스가 몇 대 들어오니 심을 내 본기라."

한 달 공부값이 얼마냐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할머니 차비보다 싼 수업료를 받고 한 달 과외 아닌 과외를 했다. 할머니는 딱 한 달만 찾아왔다. 힘든 일이었다. 농사철 겹치면 나오기 힘들고 사방에 풀들은 할머니를 한눈 팔게 놔두질 않고, 공부에 대한 의무감이 억센 것도 아니었을 터. 지금은 잘 계실까, 글은 잘 깨치셨을까.

27년 째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만난 어른들이 몇 분 있다. 국어, 한자, 영어까지 뒤늦게 공부하고 싶어했던 분들. 교재에 있는 단어 몇 개로 부족해서 열 칸 짜리 공책에 동네 간판 이름과 드라마 제목과 채소 이름들을 빼곡하게 적어드리며 읽기 연습을 시키곤 했는데, 할매들은 어찌나 공사다망한지 늘 바쁘셨다. 방앗간집 할머니는 쑥베러 간다고 빠지고 도라지 캔다고 빠지고 밤 줍는다고 빠지고 또 한 분은 문화센터에 춤배우러 간다고 빠지고 붓글씨 배우러 간다고 빠지고 삶이 어찌나 분주한지 글을 익히기가 참 어려웠다.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성순옥 재능교육 교사

그래도 배움이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시작도 하기 전에 다 알 것 같은 용감한 희망이 그분들을 내게로 이끌었으리라. 어제 배운 것 금방 잊어버리고 또 물어보고 서너 번 같은 걸 물어도 서너 번 같은 높낮이로 답해야 했던 그 시간들이 있었다.

불우한 시절 집집마다 후남이들로 자란 죄로 까막눈으로 살아야했던 그 언니야들은 지금 세상에서 행복할까. 몰라도 될 것을 읽어야 하고 그것으로 걱정이 생기고 후회가 생기는 세상. 그럼에도 돋보기 너머 주름진 눈꺼풀 속에 빛나는 눈이 있었다. 하루하루 빛이 지나듯 스치는 정보와 놀랠 일만 가득한 사건들 틈 속에서 새로운 것을 읽어내기도 벅차겠지만 지난날 못배웠던 것들에 대한 한은 쉬이 떨쳐지지 않으리라.

어머님도 그렇고, 할머니들은 문맹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도 그래도 잘 살아내신다. 노인들이 살아온 속도와 우리가 살아온 속도 사이를 채워주는 삶의 지혜와 경험으로 쌓인 내공은 실로 강하다. 그분들을 보면서 우린 채 끓기도 전에 넘치는 성급함으로 허둥대며 살지는 않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어머님이 가끔 광고지를 들고 오시어 흥분된 목소리로 "뭣이라쿠노, 한 달 동안이나 고기를 공짜로 준다쿠나?" 하실 때면, 문자로 인해 그 내공에 살짝 금이 가는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 전단지 잃어버리면 고기를 못얻어 먹을까 노심초사하시며 들고 오신 전단지에는 "한단고기 한 달 무료체험강의" 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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