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밀려 시대에 밀려 중앙 정계 진출과 벼슬길이 막힌 진주지역 양반들의 쓰린 마음과 쓰린 속을 달래주었던 해장음식으로, 부임해온 중앙 관리의 접대 음식으로, 중앙 진출 로비에 활용되었던 유흥 음식으로, 한량들의 야참으로 명성을 날렸던 '진주냉면'은 조선의 멸망에 따른 교방 해체, 기생조합 권번의 해체에 따라 쇠퇴하게 된다. 그나마 권번에서 나온 숙수들이 진주 중앙시장 내에 냉면집을 개업하여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나 공급자 역할을 하던 냉면집들이 시장의 대화재로 사라지면서 '진주냉면'의 맥은 끊어지게
1909년 진주와 삼천포항을 연결하는 신작로가 개통되었으나 남강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교량이 없었던 관계로 자동차와 우마차 등을 활용한 인적·물적 자원의 이동은 진주 도심까지 연결되지 못했다. 진주 중심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도선(渡船)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이를 해소한 것이 남강 배다리이다. 지금까지 남강 배다리는 1940년 조선시보 진주 주재기자 가츠다 이스케(勝田伊助)가 쓴 진주대관(晉州大觀)의 기록에 따라, 1912년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기록으로 인해 1913년 3월 7일, 삼천포항을 통해 진주를 방문한 데라우
Music “유기농 창작의 밭에서 뽑아낸 청정 음악”비누도둑은 문화비평가 겸 작가, 싱어송라이터인 남승희(보컬/어쿠스틱 기타/신시사이저)와 신동선(베이스)이 1997년 PC통신에서 만나 결성한 팀이다. 금세 바뀌긴 했지만 당시엔 한유선(드럼)이라는 인물도 멤버로 있었다. 신동선은 이듬해 팀을 나가 ‘허벅지 밴드’와 라틴 재즈 밴드 ‘로스 치코스(Los Chicos)’에서 활동하다 2004년 다시 비누도둑으로 돌아왔다.작가 남승희는 책 ‘나는 미소년이 좋다’(2001, 해냄)를 홀로 썼고 강준만 등과는 ‘마광수살리기’(2003, 중심
“한 뚝배기 하실래예?” 한때 경상도 사투리를 잘 구사하는 한 외국인이 그것을 밑천으로 꽤나 유명세를 탔던 모습을 기억한다. 표준말이 아닌 사투리를 쓰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친근함과 호감을 가졌다.‘콩글리쉬’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쓰고 들었다. 정의하면 원어민답지 못한 발음이나 어법 또는 한국식 신조어(핸드폰,컨닝,에어컨 등등)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미국스럽지 않은 영어'를 쓰면 ‘콩글리쉬’라며 예사로 폄하하곤 한다.그런데 유사한 말이 다른 나라에도 많이 존재한다. ‘차이니쉬’, ‘재팬이쉬’, ‘스페니쉬’, ‘싱가폴
교육의 방법과 방향에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있어왔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 다양하고 새로운 교육방법과 방향을 항상 배우고 익혀야 할 책무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게으르고 또 무지해서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특정의 주제에 대한 논리적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많다. 뿐만 아니라 잘 설계된 논리적인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지식은 단순히 암기만으로 획득된 지식과는 그 유용성과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현재 학교
진주냉면은 해산물, 쇠고기, 지리산 산채 등으로 만든 고급 육수와 화려한 고명의 메밀국수(였)다. 오늘날은 국수하면 당연히 밀면이다. 밀이 아닌 경우 특별하게 메밀국수, 칡국수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밀가루는 귀한 것이어서 쉽게 접할 수 없었다. 그때는 국수하면 당연히 메밀국수를 의미했다. 냉면에 대한 글들을 보면 ''예전에는 잠자기 전에 배가 출출하면 꼭 냉면으로 배를 채우고 난 뒤에야 잠이 들었다''거나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넣지 않고" 라는 표현 등이 나온다. 서민들이 편하게 즐기던 음식이란 셈이다. 하지만 쇠고기, 해산물 등을
백종원 김밥 / 임성용 편의점 김밥을 고르는데 백종원 김밥이 눈에 띄었다.조리 모자에 위생복을 입고 내 김밥 드시라고 엄지척 한다. 음식 장사로 성공한 백종원은 유명 요리사다.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골목 식당 주인들에게 호통을 친다.이래가지고 장사가 되겠어?나는 그 말이 이래가지고 나처럼 성공하겠어, 라는 말로 들렸다. 새벽, 치킨집 오토바이 한 대가 교차로에 들어섰다,직진 신호가 바뀌면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왔다.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날아올랐다.통닭이 죽고 오토바이가 죽었다. 누구도 백종원이 될 수 없다. 임성용 시집
세상에는 많고 많은 반장이 있습니다. 생애 최초로 만나는 학급 반장에서부터 방송반, 군대의 내무반장, 일터의 작업반장은 물론이고 농사작목반도 반장이 있습니다. OO반으로 나누는 모든 단위의 책임자는 반장이라고 하니까요. 대관절 반장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이던가요? 아마도 각 단위에서 설정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그 반을 대표해서 거의 모든 것을 감당하는 직위일 수도 있고, 그저 한갓진 감투에 불과한 자리인 경우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책임만큼 수고롭고 영예로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마을에도 반장이 있다는 것 아시지요? 법정리는 물론이고
현재 우리의 주요 이동 수단은 도로, 철도 등의 육상교통과 하늘을 잇는 항공교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통이 발달하기 전 우리의 주요 교통수단은 한강, 낙동강, 대동강, 금강 같은 큰 강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가는 수로와 연안 포구를 중심으로 하는 해운교통이었다. 따라서 대부분 큰 도시의 배후에는 관문 역할을 하는 나루와 항구가 발달하였다. 서울의 관문인 인천을 비롯해 북경의 천진, 도쿄의 요코하마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경남도청의 소재지였던 진주는 육로교통의 오지였다. 따라서 개항 후 바닷길을 통한 관문역할의 항구가 자연스럽게
어느 해부터 4월과 5월이면 눈부신 봄이라는 설렘과 함께 가슴 한 구석에 마음 아픈 역사의 순간들이 떠올라 기분이 묘해진다. 오늘은 내가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하던 30년도 더 된 어느 날 만나게 된 음악을 골랐다. 내가 산 최초의 CD가 아닌가 하는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 브루노 발터의 지휘반 모차르트 교향곡 제 40번 G단조이다. 그 이후로는 카세트테이프로 카를 뵘의 가장 유명한 연주를 많이 들었다.그러다 전경 제대하고 부산에서 우연히 산 CD가 Enterprise라는 듣보잡 해적판이었는데 세르지우 첼리비다케가 지휘한 슈투트가르
필자가 사는 곳은 진해에서도 신시가지까지는 20분 이상, 구도심까지는 거의 30분이 넘게 걸리는 변두리, 용원이라는 곳이다. 벚꽃 찬란한 구도심을 보통 진해의 전부인 양 여기는데, 진해는 해안선을 따라 나지막한 산들을 거느린 채, 거제를 비롯한 다도해 섬들과 나란히 대거리하며 들쑥날쑥 오밀조밀 조막만한 포구들을 품고 여기, 부산 바로 옆, 용원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바다고장이다. 아니, ‘였다’라고 써야 맞겠다. 진해에서도 변두리인 여기가 요즘 소위 ‘핫한’ 동네가 되었다. 진해 최초의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생기고, 김해 장유, 부산
메밀국수인 냉면이 유래한 지역은 평양과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인 듯하다. 많은 자료들이 거기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평양과는 거리가 먼 한반도의 남쪽 진주가 '평양냉면'과 함께 '진주냉면'이라는 고유성을 획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역적 차별을 극복하고 중앙에 진출하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공통점과 중앙에서 거리가 먼 변방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두 지역이 접대문화, 교방문화, 기생문화를 발달시킨 것과 관련이 있다. 이들 문화와 교방음식 국수가 만나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조선의 멸망으
나는 학교에서 거의 내 삶의 전부를 보내고 있다. 학생으로, 교사로 살아오면서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소통(疏通)’이다. 의사소통의 준말이다. 의사가 서로 잘 교환되고 있으며 그것이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을 의미한다. 참 좋은 말이다. 아마도 2010년 전후로 일부 세력(인터넷 커뮤니티 및 인터넷 미디어 등에서)들이 '소통'이라는 구호를 사회 여기저기에 들이밀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점은 이 ‘소통’이라는 단어가 매우 빠른 속도로 교조화되는 바람에 '소통'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즉시
Music “수수한 영국 뮤지션의 유토피아 같은 음악”마크 노플러는 영국 뮤지션이다. 그는 훌륭한 작곡가 이전에 탁월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한데, 자신의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1978년 히트곡 ‘Sultans Of Swing’을 통해 그는 뮤지션 겸 기타리스트로서 역량을 아낌없이 증명했다.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1980년작 [Making Movies]에 수록된 ‘Tunnel Of Love’와 ‘Romeo And Juliet’을 지나 밴드의 정점으로 기록된 [Brothers In Arms](1985)를 발매해 ‘Money For Not
진주 초전동 소재 어느 공동주택의 청소노동자가 휴게 공간이 없어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는 진주시민의 SNS 글을 진주시청 누리집 게시판에 올려봤다. 공동주택 휴게공간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진주시는 이에 『공동주택관리법』에 별도규정이 없어 현황 파악 및 실태조사에 어려움이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답변했다.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적용과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등의 업무를 하고 있으니 참고해 달라고도 했다.경남의 다른 지자체는 공동주택 노동자의 노동
진주는 러일전쟁 후 일본인이 대거 이주하면서 전통도시로서의 기능을 눈에 띄게 상실해 갔다. 대표적인 변화는 임진왜란 이후 경상우병영의 군사방어시설이었던 진주성벽의 훼철(毁撤)과 대사지(大寺池)의 매립이다. 초기 진주 이주 일본인들은 주로 외성 북문 밖에서 약제, 도기, 석유, 맥면(麥麵) 등의 장사를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공간과 가까운 대안동 대사지의 동쪽 일부분이 우선 매립되어 대지가 조성되었다. 대안동 매립지는 1907년 조선권업주식회사 진주지점에서 공사를 시작하여 1912년 1차 완공되었다. 훼철된 진주성 북쪽 성벽의 토
인간의 생활방식은 수렵채집에서 정착농경으로의 전환에 의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식물의 재배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재배식물 밀의 발생과 재배 지역은 두 개의 강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여기서 서쪽 방향 이집트, 지중해로 퍼져 나아가며 밀은 '빵'이 되었고, 동쪽 방향 중앙아시아로 퍼져 나아가며 '국수'가 되었다. 그 국수는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 북부에 도착해 중국 북부의 음식문화를 꽃피었다. 이렇게 쌀은 중국 남부의 주식이 되고 밀은 중국 북부의 주식이 된다. 다시 밀의 국수문화는 그
잦은 비로 논밭일을 쉴 때가 많은 이즈음에 마실갔다 집으로 오니 웬 선물상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마른미역 한 봉지와 쇠고기가 들어있었습니다. 뭘까 생각해보니, 축협에서 남편 생일이라고 기념선물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우리 지역은 몇 해 전부터 축협조합원 생일에는 쇠고기미역국 선물세트 배송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겨우내 지겹게 먹던 굴미역국 대신 오랜만에 쇠고기미역국을 끓여 먹으려니 기분이 살짝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그럼 난 뭐야? 나도 가끔 소한테 사료를 주기도 하고, 눈도 맞추고, 부산물 나오면
벚꽃 지기 딱 한끗 전일 때 / 신휘 사는 일 자신없어그만 손 놓고 싶은 심정일 때벚꽃 구경 한번 가 봐라 사람들 다 찾는 한창 때 말고좀 늦었다 싶을 때속는 셈치고 혼자 가 보고 와라 벚꽃은 혼자 힘으로 버티다버티다,더는 어쩌지 못할 때아니,그 손 놓기 딱 한끗 전일때가장 아름답다 우리 사는 일도 어쩜 저 마지막 벚꽃들처럼누군가 몸 흔들어 떨어질 때보다더는 어쩌지 못해스스로 손 놓고 일어설 때아니,그 손 놓기 딱 한끗 전일 때가장 아름답지 않겠느냐 사는 일 자신 없어그만 손 털고 싶은 심정일 땐벚꽃 구경 한번 가 봐라 포기하는 순
봄에 물이 올랐다. 내가 들은 수많은 음악들 중 봄에 관한 음악들을 한참이나 찾았지만 이전에 연재한 음악을 빼고 나니 소개할 만큼 아는 음악이 없어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꼭 봄 음악이 아니라도 되겠다 싶어 이제야 하나 골랐다. 오늘 고른 음악은 학교 음악 시간에 들은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 한 사람인, 본업은 화학자였던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 중의 ‘폴로베츠인의 춤’이다. 이 곡을 알게 된 건 1994년 나온 대우자동차 아카디아의 광고를 통해서였다. 고급차를 광고하며 뭔가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선 영상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