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이 글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는 (듯하지만) 매우 주관적인 글입니다.

술꾼들은 간혹 경험합니다. 숙취도 없고 어제 술자리도 즐겁게 헤어졌는데 어떻게 집에 왔는 지 기억이 없는 경험 말입니다.

흔히 과도한 음주 후의 기억 상실을 '필름 끊김(블랙아웃)'이라고 합니다. 필름 끊김은 알코올이 두뇌의 '해마' 부위 신경 세포의 전기 활동을 억제해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는 것(기억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알코올 흡수 속도가 분해 속도를 넘어섰을 때 발생하는 사고입니다.

알코올은 위장관을 통해 흡수된 후 혈류를 순환하다 뇌에 도착합니다. 뇌의 출입 통제소인 '혈액-뇌 장벽'을 알코올은 프리패스합니다. 이 통제소는 대부분의 활성 물질의 출입을 차단하지만, 알코올은 프리패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코올의 위장관 흡수 속도가 필름 끊김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알코올 위장관 흡수 속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면 흡수 속도를 예측하여 필름 끊김 불상사를 방지할 수도 있을것입니다.

알코올 흡수 속도에 영향을 주는 것 중 하나는 위 속의 음식물 유무입니다. 음식물이 없으면 알코올이 위장에서 소장으로 바로 이동하여 빨리 흡수됩니다. 음식물이 있으면 위와 소장을 잇는 유문 괄약근이 닫혀 소장으로 바로 이동하지 못해 흡수가 느려집니다. 

알코올의 대부분은 소장에서 흡수됩니다. 알코올은 20도 정도일 때 흡수가 가장 빠르다고 합니다. 맥주와 양주를 섞은 폭탄주의 알코올농도가 대략 20도 정도 됩니다. 폭탄주가 빨리 취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위벽을 팽만시켜 소장으로의 알코올 이동을 촉진시킵니다. 그래서 소장에서의 흡수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장관 점막의 투과성을 높여 알코올 흡수를 촉진합니다. 그래서 이산화탄소의 양을 증가시킨 '샴페인'은 같은 도수의 다른 술에 비해 알코올 흡수가 빨라 더 빨리 취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공복 여부, 알콜 도수, 이산화탄소 유무가 알코올 흡수 속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데 흡수 속도가 최대화되도록 이 세 가지 요인을 결합하여 음주자를 곤란하게 하는 음주문화가 있습니다. '폭탄주 후래자 3배'가 그것입니다.

폭탄주 후래자 3배

'강압적' 음주 문화 중, 약속 시간보다 늦게 온 사람에게 연거푸 술 3잔을 마시게 하는 '후래자(後來者) 3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벌칙으로 폭탄주를 연거푸 3잔 먹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폭탄주 후래자 3배, 이것은 '블랙아웃' 용 사제 폭탄입니다. 퇴근이 늦거나 일에 쫓겨 식사도 못한 빈속에 연거푸 마시는 폭탄주 3잔은 말 그대로 위장과 뇌에 던져지는 폭탄입니다. 폭탄주 후래자 3배는 알코올 흡수 극대화의 최정점입니다. 필름이 끊어질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것입니다.

선배들은 간혹 경험합니다. 어제 같이 마신 후배가, 기억이 없다며 실수한 것은 없는지 물어오는 경험 말입니다. 선배도 속으로 당황합니다. 선배도 기억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술자리 당일의 수다와 긴장 완화는 대뇌피질의 영역이고, 비틀거림은 소뇌의 영역입니다. 술자리 다음날의 필름끊김은 해마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당일날 술자리에서의 대화와 행동 그리고 필름끊김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음날 필름끊김 불상사가 있어도 당일날 대화나 술자리의 행동은 대부분 정상적일 수 있습니다. 물론 말이 많아지거나 비틀거릴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음날 실수 여부를 확인하거나 미리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저의 개인 의견입니다.) 

술자리에서의 일은 술자리에서 끝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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