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숙취이론'도 있다. 

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반 친구 5-6명이 진주로 유학 온 거창 촌놈 집에 놀러 갔었다. 사랑채에 모여 밤새는 줄 모르게 놀았고 드디어 그집 친구가 비장의 무기를 가져왔다. 집에서 직접 담은 큰 술 항아리를 가져왔다.

'뽈똥주'(뽈똥=‘보리수’의 방언)라고 했다. 안주는 부실했지만 흥분과 웃음과 즐거움이 넘쳤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전날의 즐거움에 비례하는 숙취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듯한 숙취는 술을 마신 후의 두통, 구역, 구토, 속쓰림 등의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증상을 말한다. 

지금까지 숙취에 대한 이론은 대략 4가지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알코올 대사 1차 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 발효 부산물에 대한 면역세포의 염증 반응, 탈수 그리고 저혈당 등에 관한 것이다. 즉 숙취는 4가지 정도의 원인이 나타내는 복합 증상인 것이다. 

먼저 거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아세트알데하이드 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숙취는 아세트알데히드 혈중 농도가 거의 0인, 다음날 아침에 가장 심하다. 그 이유는 숙취는 간이 아니라 뇌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까지 모든 혈중 아세트알데히드는 간에서 분해되어 없어진다.

그러나 뇌 속에서의 알코올 대사는 천천히 진행된다. 그래서 뇌 속 아세트알데히드는 천천히 만들어져 축적된다. 그러므로 숙취는 술을 마신 후 12시간 정도 지난 다음날 아침에 가장 심하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취함 또는 필름 끊김과 숙취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취하는 것은 알코올의 작용이고 '알코올 분해효소'와 관련이 있다. 반면 숙취는 아세트알데히드의 작용이고 '알데히드 분해효소'와 관련이 있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세포막과 단백질, DNA에 결합하여 세포를 손상시킨다. 활성산소를 생성하여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간세포를 손상시킨다. 두뇌 신경에 영향을 주어 두통, 구토, 빈맥 등 숙취 증상을 유발한다. 

에탄올, 아세트알데히드를 대사하고 분해하는 데는 글루타치온, 비타민 B군, 타우린, 아르기닌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음식이다. 술 먹은 다음날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알데히드 분해효소가 충분한 사람도 음주 다음날 술의 종류에 따라 숙취로 고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과일, 약초, 향신료 등을 술에 담가서 만드는 담금주나 와인 막걸리 등 발효주는 발효 추출 숙성 등의 과정에서 알데히드, 메탄올, 부틸알코올 등 발효 부산물이 생성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물질에는 알데히드 분해효소가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다. 

주류회사 생산 발효주 또는 증류주는 표준화된 발효 과정과 증류 과정을 통하여 발효 부산물이나 불순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과두주, 보드카, 소주 등 증류주의 숙취가 덜하고 와인, 막걸리 등 발효주나 담금주의 숙취가 심하다는 것은 경험적 상식이다. 숙취 정도가 단순 알코올 함량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에는 '적포도주 두통(Red wine headache)'이라는 말까지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숙취에 아세트알데히드가 중요 요인이기는 하지만, 다른 요인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을 설명하는 또 다른 숙취이론이 있다. K-pop, K-드라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K-숙취이론'도 있다. 다음에 소개할 '염증반응가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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