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시간이 잠깐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간 탄핵의 시간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제는 파면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또한 연말연시이기도 합니다. 본래 연말연시는 1년 중 술 마실 기회가 가장 많은 때입니다. 거기에다 내란, 탄핵 그리고 파면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으니 술 마실 핑계와 이유는 더 많아졌습니다. 탄핵 가결을 발표하면서 국회의장도 송년회를 취소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혈당 수치가 오른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당뇨환자 중에는 술을 마시면 혈당관리가 더 잘되는 특수체질이라 자랑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래 음주 후에는 일시적 저혈당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더니 제법 실망하였습니다. (참고로 '혈당' 할 때의 '당'은 포도당 glucose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포도당은 과일인 포도 grape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포도에 포도당이 많습니다.)
혈중 포도당 공급은, 식사 후 4~5시간 동안은 밥이나 빵 속의 탄수화물이 책임집니다. 식사 5시간 이후의 혈당은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이 책임집니다. 글리코겐까지 끌어다 쓰고 나면 간에서 지방과 단백질로부터 포도당을 새롭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아침 식전의 혈당은 간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혈액에 포도당이 공급되는 방식은 식사, 글리코겐 분해, 포도당 생합성 이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적당하게 균형을 이루며 혈당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곳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라는 생화학공장입니다. 그 공장에서 포도당 같은 음식 분자의 공유결합 속에 스며있는 에너지를 뽑아냅니다. 그리고 NADH라는 상자에 실어 ATP 제작소로 보냅니다. NADH는 음식에 들어있는 에너지를 옮겨 실은 에너지 택배 상자입니다.
알코올도 음식인지라 대사 과정 중에 NADH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간에서 알코올 분해과정 중 만들어진 NADH는 뇌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알코올은 뇌세포 에너지 공급원이 되지 못합니다. 뇌세포는 포도당만을 먹고 살도록 진화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침 식전에는 간에서 포도당을 만들어 혈액으로 공급합니다. 그리고 뇌는 그 포도당을 받아 먹습니다. 그런데 과도한 음주 후에는 알코올 대사 산물 NADH가 포도당 만드는 것을 방해합니다. 결과적으로 알코올은 뇌세포에 에너지를 직접 공급하지도 못하고 또 포도당을 만들어 에너지를 공급하려는 것도 방해합니다.
혈액으로부터 포도당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 뇌는 위기 상황에 빠집니다. 저혈당 상태입니다. 저혈당 증상은 '당 떨어진다' 할 때 그 느낌입니다. 현기증이나 손 떨림, 두근거림, 긴장, 짜증, 기분이 다운되는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과음 다음날에는 어머니나 아내는 자녀나 남편에게 꿀물을 타주기도 했습니다. 경험으로 터득한 근거 있는 임시방편입니다.
NADH는 젖산 대사도 억제합니다. 피로와 근육통을 유발한다는 그 젖산 말입니다. 그래서 음주 다음 날은 기운이 없고 몸이 찌뿌둥한 증상도 나타납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이 알코올 처리하기에 바빠서 포도당 합성과 젖산을 분해할 여력이 없게 된다고 이해하면 될듯합니다.
술 마신 다음날은 아침 식사를 통해 대사에 필요한 수분, 해독과 염증 제거에 필요한 영양물질 그리고 뇌세포의 먹이인 포도당을 공급해야 합니다. 콩나물해장국 등 전통적 해장국 '레시피'는 경험적으로 이러한 기능을 하는 식재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음주 다음날은 '억지로'라도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