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상환 못하는 임대인에 또 대출?
세계 최고 수준 가계부채 줄일 대책부터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

가계부채가 증가하여 경기침체를 유발하고 있는데 정부의 전세금 반환용 대출 규제 완화가 상황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말 1505조원이었던 가계대출 잔액은 작년 말 1750조원으로 늘어났다.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2020년 112.3조원, 2021년 107.5조원 증가했으나 2021년 하반기부터의 금리 상승 영향으로 2022년에 8.7조원 감소했다. 여기에 2022년말 1058조 원으로 늘어난 세입자 전세보증금(임대인의 부채)을 더하면 총 가계부채는 2022년말 2925조 원에 달한다.

경제규모 대비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8%이고, 전세보증금까지 포함할 경우 156.8%까지 높아진다. 국제금융협회(IIF)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2.2%로 2021년보다 하락했지만 조사대상국 가운데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를 웃돈 것은 한국뿐이다.

여기에 4월부터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의 가계대출은 1,2,3월 감소에서 4월 2.3조 원, 5월 4.2조 원 늘어났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는 정부의 부동산 및 금융 규제 완화와 은행 대출금리 하락 때문이다. 집값 경착륙 우려가 커지자 윤석열 정부는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수도권 전역의 부동산 규제를 전면 해제했다. 부동산 금융 규제도 완화하고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도 낮추었다. 여기에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대로 낮아지자 실수요층이 대출을 늘려 주택 매입에 나서기 시작했다.

가계 빚 급증은 이자 부담을 늘려 소비를 제약하고 대출 부실과 금융 불안을 야기한다. 2000조원의 가계대출에 이자율 4%를 적용하면 엄청난 부담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득은 3분기에 전년보다 2.8% 감소했고, 4분기에도 1.1% 감소했다. 소득 증가 이상의 원리금 상환부담은 민간소비 위축의 원인이 된다. 상저하저 경기로 올해 경제성장률은 1.5% 이하로 전망된다.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3월 기준 0.33%로 지난해 말보다 0.08%포인트 상승했다. 저축은행권의 연체율도 5.07%로 같은 기간 1.66%포인트나 올랐다.

전세보증금 하락으로 역전세에 따른 보증금 반환 불이행 우려가 커지고 있다. KB 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 최고가를 기록한 건 2021년 9월 최고가 6억2689만 원에서 올해 4월 4억9833만원으로 떨어졌다. 최고가로 계약한 2년 만기가 올해 9월부터 시작되면 떨어진 전세금만큼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 우려가 커진다. 한은의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잔존 전세계약 중 매매시세가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깡통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지난해 1월 2.8%에서 올해 4월 8.3%로 증가했고, 전세시세가 보증금보다 낮은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도 같은 기간 25.9%에서 52.4%로 늘어났다.

정부는 임대인의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에 대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풀고, 추가 대출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보증금을 상환할 만큼 소득이 없는데 채무불이행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돈을 더 빌려주겠다는 정책은 위험하다. 대출 완화 이전에 임대인에게 ‘집을 팔아서 보증금을 돌려줘라’고 요구하는 것이 먼저다. 대출규제를 푸는 것은 국제금융 면에서 심각한 후폭풍을 부를 수 있다. 금융 당국은 가계신용 비율이 GDP 대비 80%에 근접하도록 가계부채를 줄여 나가는 것을 핵심과제로 삼아야 한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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