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장상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기업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것으로 당장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나아가서 저출생 위기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 신년사에서 ‘먼저, 노동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노동시장 유연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연공서열 시스템에서 직무 중심, 성과급 중심으로 전환’, ‘노사 법치주의’ 등을 들었다.

젊은 노동자들도 반대하는 ‘근로시간 개편안’

6일 고용노동부는 주 최대 12시간으로 정해진 연장근로시간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통합해 운영할 수 있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화해 1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주 52시간제로 노동시간을 줄여왔는데, 합법적으로 70시간 가까이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장시간 노동이 부활하게 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노동시간은 연간 1915시간으로 OECD 국가 평균 1716시간보다 199시간 많다. 노조조직률이 14%에 불과해 노사가 동등하게 합의하기 어렵고, 노조가 없는 데서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정보기술(IT)이나 건설업 등 연장근로 수요가 집중되는 업종들은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의 포괄임금을 통한 공짜야근이나 장시간 노동이 부활할 수 있다. 주 64시간 이상 노동은 산업재해 근거의 과로 기준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3년간 근로복지공단에서 '자살 산재' 판정을 받은 사례 중 과로가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이 된 경우가 3분의 1이 넘는다고 한다.

긴 시간 일하고 나서 짧게 일하거나 장기간 휴가도 갈 수 있다고 하지만 현재 휴가도 눈치보며 가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출근해서 짧게 일하고 퇴근할 수 있나. 노동자들이 연차를 다 쓰는 기업이 40.9%(2021년 기준)에 그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정해진 평균 17일의 연차휴가 일수 중 실제로 사용한 일수는 11.6일에 그쳤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연차휴가 15일을 쓰지 못한 응답자가 80.6%에 달했고, 66.8%가 월 1회가 안 되는 '12일 미만'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이 청년들을 위한 것이라고 내세웠지만 정작 당사자인 'MZ 노조'의 모임,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9일 개편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주요 선진국에 견줘 평균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이 연장근로 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조건을 개선해왔던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한다며, “이번 개편안은 장시간 노동과 과로 탈피를 위한 국가의 제도적인 기반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도입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근로시간 개편안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것이다.

대다수 영세기업은 임금체계가 없다

정부는 대기업 노동자의 기득권이 '노-노 착취'를 낳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연일 '노조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2021년 기준으로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이라 할 때 대기업 비정규직 69, 중소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각각 59와 46 수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도 무시할 순 없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더욱 근본적인 요인이다. 같은 100만 원을 벌어도 중소기업은 인건비로 약 73만 원을 지불하고 10만 원을 남기는데, 대기업은 43만 원 정도만 인건비로 지불하고 30만 원을 남겨 가져간다. 대기업 인건비 비중이 낮은 이유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원하청 구조 때문이다. 대기업은 외주가공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저임금 인력을 이용하고, 중소기업의 몫의 이윤까지 차지한다. 이러니 중소기업으로서는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호봉제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임금 격차의 주범이라면서 호봉제를 직능급, 직무급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156만 곳 가운데 호봉제를 적용하는 기업은 21만 곳으로 전체의 13.7% 수준에 불과하고 직능급 13.7%, 직무급 10.7%이다. 61.1%, 무려 95만 곳이 넘는 기업들은 아예 임금체계 자체가 없다. 임금체계가 없는 사업장 95만 곳 가운데 81만 곳, 약 85%는 직원 수 5인 이하의 영세 사업장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 같은 영세 기업의 월평균 급여는 20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영세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임금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것이 진짜 문제다. 호봉제를 직무급, 직능급으로 전환해도 대다수 기업에는 아무 효과가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해소하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교섭력을 위해서 노조조직률을 높여야 한다. 또한 유럽 선진국들처럼 산업별노동조합과 산업별, 업종별 교섭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저출생 위기 부추길 노동개혁

인구 감소와 저출생 위기가 절박한 상황이다. 인구가 2022년 12만여명 감소했다. 출생아수가 2012년 48만명에서 작년 25만명으로 반토막 나고 합계출산율이 0.78로 OECD 최저수준이다. 저출생의 원인은 주거 불안정,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일 가정 양립 어려움 등이다. 대학 졸업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 ‘의치한약수’ 등 의약계열과 상위권 대학 쏠림이 심화되니 사교육비가 갈수록 늘어난다.

부모들이 육아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큰 요인이다. 맞벌이의 경우 아이 출생 후 조부모와 외조부모 등의 도움을 받기 어려우면 둘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데 대개 엄마가 감당한다. 대신 아버지는 연장노동을 해서라도 생활비를 더 벌어와야 한다. 이게 어려운 저임금 노동자는 결혼과 출생을 포기한다. 노동력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적정 임금과 적정 노동시간인데 저출생 위기가 심화된 것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시간이 적정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근로시간 개편으로 장시간 노동이 확대되고 정부의 노조 때리기로 노조의 힘이 약화되어 저임금이 개선되지 않으면 저출생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 경영조건 개선과 경제성장을 앞세우다 우리 사회를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더욱 밀어넣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것을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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