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장상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중대선거구제로 대결 정치 해결 안돼

비례대표제 확대로 정당 다양성 확보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대선후보 시절부터 선호했던 중대선거구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수도권에서 ‘1등을 못해도 배지를 달 수 있는' 제도가 여당에 유리하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는 국회의원 선거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담보할 수 없다. 대구나 광주 등에서는 특정 정당에서 여러 명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고, 수도권에서는 거대 여야당이 한두 석씩 나눠가질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양대 정당의 최소 의원수를 확보해주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실제로 5공화국 때 1981년과 1985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이 집권당 민주정의당의 2중대이면서도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주요 여야당의 경우 공천되면 당선이 유력하니 파벌정치가 확대되고, 인지도 높은 다선의원에게 유리하다.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의 결과를 예측해볼 수 있는 자료로 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한 30개 선거구의 선거 결과 거대여야당이 96%의 의석을 차지하고 제3의 정당들은 1~3개 선거구에서 반사적 이익을 얻었을 뿐이다. 소수정당의 역량 문제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거대 양당의 무자비한 '복수공천'의 위력 때문이다. 충남 논산시 '가' 선거구(5인 선거구)는 더불어민주당 5명, 국민의힘 4명, 정의당 1명이 출마하여 더불어민주당 3명과 국민의힘 2명이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대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에서는 더더욱 없다. 중의원선거에서 2-5인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했던 일본은 90년대 들어 중선거구제가 계파 갈등과 부정부패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1996년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로 전환되었다.

문제 해결 도구가 아닌 ‘문제 자체’가 된 한국정치

경제위기, 저출생위기, 지방소멸위기, 기후위기 등의 뿌리인 불평등문제를 해결하는데 보수양당 지배 정치는 실패했다. 저출생위기와 지방소멸위기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제로 한국정치의 실패 탓이 분명하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불평등 시정 공약을 앞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이제 한국 정치는 문제 해결의 도구가 아닌 ‘문제 자체’가 됐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3 올해의 이슈' 보고서에서 정치 분야 최대이슈로 '정치양극화'를 꼽았다. 중도가 감소하고 극단적 진보·보수 이념 성향이 증가하는 이념적 양극화가 늘고, 상대정당이나 후보 그 지지자들 간 대화와 교류를 차단해 소통과 타협이 어려운 정치적 양극화가 국민통합의 걸림돌이 된다고 진단했다. 지역할거구도, 정쟁의 일상화와 극단적 대결구도, 팬덤정치, 진영대결의 분열적 정치, 혐오와 저주의 정치까지, 정치는 바닥까지 내려왔다. 친구간, 가족간에 정치적 입장과 견해 차이로 사회적 교류 대화방이 어지러워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 추락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결합되어 대통령 자리 차지하기 위해 모든 이슈를 정쟁화하고, 대통령이 국회의원 후보공천을 지배하는 데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100% 비례대표제로 복지국가 실현

복지국가의 내실을 갖춰 불평등문제를 해결하는데 비례대표제가 더 낫다. 소선거구제에서 여야 후보들은 지역개발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데 이것은 지역 자본가에 유리한 정책이다. 반면 비례대표제에서 유권자들은 계층과 정책방향에 따라 지지정당에 투표한다. 불평등 개선과 복지 확충을 공약하는 정당이 약자들로부터 득표할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 등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100%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극단적 대결 정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국회의원선거를 소선거구제에서 대선거구 비례대표제 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권력구조를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바꿔야 한다.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는 의원내각제에서는 다양한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고, 연정을 통해 내각을 구성하여 여당의 정책방향을 정하며, 여야당이 타협하여 국정을 수행한다.

비례대표제 확대가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비례대표제가 국제표준이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의 ‘2022년도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OECD 36개 회원국 중 100%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23곳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권역별로 10-20명씩 비례대표를 뽑는 100%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진보정당, 녹색당 등 다양한 정당이 성장하고, 누구나 안심하며 살 수 있는 평등 복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비례대표제에서 비례대표 후보명부를 어떻게 작성할 것인가도 문제다. 여태껏 해온 것처럼 폐쇄형으로 명부를 작성하면 당내 권력자의 힘과 금품 수수를 통한 비민주적 공천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정당에 투표할 뿐만 아니라 정당명부에 있는 후보에게도 투표하는 개방형 명부를 작성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것을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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