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 유지와 지입제 폐지

고속도로에서 화물자동차가 무섭다.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절반 이상은 화물자동차 관련 사고 때문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 안전과 국민 생명을 위한 제도다. 화물차주에게 적절한 운임을 보장해야 과로, 과적, 과속을 막아 고속도로 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이후 대응에서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9일 끝난 화물연대 파업은 16일의 장기간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정부는 파업을 ‘집단운송거부’라며 불법으로 규정하고, 교섭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업무개시명령을 잇달아 발동했다. 당장 화물운송을 해야 차 할부금이라도 낼 수 있는 화물연대 노동자들로서는 파업의 장기화를 견디기 어려웠다. 민주당이 ‘안전운임제 일몰제 3년 연장’의 정부안을 받아들이면서 품목 확대는 추후 논의하자고 후퇴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파업이 끝나자 정부 여당은 파업 피해에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화물차주들이 특수고용노동자로서 노동3권을 갖고 있음을 부정하는 자세다. 지난 6월 파업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은 점에 견줘서도 공평하지 못하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의 주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6월 파업 때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 논의’를 약속해놓고 파업 예고 이틀 전 22일 당정협의회에서 ‘일몰은 3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불가’라는 방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파업을 부채질했다. 수출입컨테이너와 벌크시멘트 운송 차주들은 자기들만 살자고 파업에서 발을 빼는 뻔뻔한 태도를 보일 수 없었다.

정부 여당은 안전운임제 일몰이라는 폭탄을 던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당정협의회의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은 화물연대가 받아들이지 않고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에 무효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가 ‘파업을 중단하고 복귀하면 대화하겠다’고 말해왔으니 22일 제안은 유지된다고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9일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의결했지만 여당 김도읍 위원장이 법안 법사위 상정을 서두를 리 없으니 안전운임제는 연말로 종료될 것이 분명하다. 노동자들은 본래 노동조건의 후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앞으로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장상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장상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정부는 지입제, 다단계 하청 등 화물운송구조 개선을 논의하면서 안전운임제도 여기에 포함해 검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1997년 지입제가 합법화된 이후 생겨난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지입제 해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중장기적 과제를 운위하면서 당장의 과제인 안전운임제 유지를 거부하는 것은 노동자 안전과 국민생명을 경시하는 자세다. 당정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 국회 의결에 협력해야 한다. 애초에 정부 여당이 내놓은 안이 아닌가.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도 추진해야 한다. 2020년에 컨테이너와 시멘트 등 2개 품목에만 우선 적용한 것은 화물량이 규격화되어 운송비 계산이 쉬워서일 뿐, 다른 품목 운송 차주들의 소득이 높았기 때문이 아니다. 여야 정당은 국회내 협의기구를 구성해 품목 확대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안전운임제 유지와 품목 확대를 시행하면서 다단계 하청과 지입제를 직영으로 전환하는 것은 뒤떨어진 우리의 화물운송구조를 세계표준에 맞춰 질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안전운임제가 운송비용을 높여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대기업 화주들의 근시안적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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