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1월 5일 이후로 글을 올리지 못했다. 멀리 여행을 다녀왔다. 몇 만리 길을 하늘 길로 다녀온 소감은 의외로 덤덤하다. 그렇게 2023년 1월 초순이 지났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간 여행이 아니어서 여행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떠나기 전부터 그리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기간 내내 머릿속에는 ‘2022 교육과정’과 ‘대강화’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언어(문자)가 사고를 지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고의 결과가 언어(문자)로 표현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대체로 현재의 가설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쪽이 우세하다. 즉, 고대 인도의 서정 시인 바르트리하리로부터 근대 서양의 빌헬름 폰 훔볼트, 그리고 에드워드 사피어와 그의 제자 벤자민 리 워프가 세운 사피어-워프 가설(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인 가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학설)까지…… 7년 만에 보는 먼 나라의 도시와 건물들이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못한 이유가 온전히 머릿속이 복잡한 나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방면(교육과정)의 학문적인 소양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 타국을 여행하면서까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사로서 교육과정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평생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과정이라는 얼개 속에서 삼십몇 년을 보냈다는 것은 이미 교육과정의 모든 언어가 나의 사고를 지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대강화(Direction and Task for Slimming)’라는 단어가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아쇠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고 또 연구되고 있다. 대강화(大綱化), 말 그대로 국가 수준에서는 큰 줄기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것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교과서를 사용하는 교사가 어떤 지식을 선택하고 어떻게 그 지식들을 조직하며 조직된 그 지식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수하고 평가할 것인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가능할까? 학교도 어렵고 시, 도 교육청도 어려운데 하물며 교사가? 아직도 국가가 평가권을 쥐고 있는 마당에 그 평가권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교육과정이 과연 자율적으로 선택되고 조직되며 전수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사피어 워프 가설에 의하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에 대강화된 교육과정 총론은 아무래도 교사들의 지식 선택과 조직, 그리고 전수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는 정부의 교육과정 문서의 권위적 규정력(規定力)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테면 교육과정 총론에 없는 내용을 애써 학교 수준 교육과정 속에 삽입, 확장하는 것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현재의 법률 체계에서 교육과정은 교육부 장관이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의 기본적 사항을 결정하고, 교육감은 이 범위 내에서 지역의 실정에 부합하는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을 정하고, 학교는 이들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의 기본적 사항의 범위 내에서 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대강화라는 관점에서 2022 교육과정의 특징을 교육부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동안 시‧도 수준의 교육과정이 시‧도 교육청에서 개발하는 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으로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대한 교육청 차원의 해석과 교육청의 교육지표 및 정책방향에 따라 일부 내용을 강조하거나 생략하고 일부 내용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의 특성과 여건, 교육적 필요를 반영한 다양한 교육과정으로 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고, 학교 교육과정 또한 그동안 주어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여건과 필요를 반영하여 특색 있게 개발하고 이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부,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시안). 2021.)

Direction and Task for Slimming!!! 진영 논리나 세력 다툼의 문제가 아닌, 학문적 흐름이나 그 흐름에 의해 갈래 지워진 세력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진실로 이 땅에서 살아갈 후세들을 위한 교육과정에서 정말 이 대강화가 그 미래를 위한, 그리고 타당한 시대적 방향일 수 있을까?

여행 내내 나를 찜찜하게 했던 나의 의심과 걱정이 그저 기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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