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Zumutbarkeit는 법률용어로써 기대 혹은 요구할 만한 것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옮겨보자면 Permissibility, 혹은 Acceptability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우리말은 일본식으로 조어(造語) 느낌이 나는 ‘기대 가능성’이다. 여기서는 법률적 의미와는 다르게 해석한다.

어제 오늘 이 기대 가능성과 관련된 경험을 말해 본다.

1. 타인의 기대 가능성을 침해(?)한 나의 행동

중학교 공모 교장이 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스스로 ‘교장’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4년 동안 주어진 교장의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그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가끔 내가 교장인 듯 착각에 빠질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머리를 흔들어 나를 깨운다. 이유는 자명하다. 나는 교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교장의 역할은 매우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이들을 나 홀로 인솔하고 두 곳의 체험 장소에 갔다. 담임 선생님들에게 아이들과 함께 할 기회를 뺏은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잘난 체일 수도 있지만 지난 3년 동안 이런 일(혼자 아이들을 인솔하고 나간 일)이 더러 있어서 선생님들도 이제는 수긍하시는 태도이다. 문제는 체험 장소에 계시는 분들이다. 그분들은 교장 혼자 아이들을 인솔하여 오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나를 교장으로 볼 기대 가능성이 낮거나 없다.

오늘도 아이들 때문에 어찌 어찌하여 내가 교장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그분들의 태도는 참 묘했다. 교장이라 하니 나에게 뭔가 실수를 하지는 않았나? 아니면 자신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나?를 생각해 보는 듯한 뉘앙스를 느꼈다. 아직도 우리는 직위와 직책, 그리고 위계의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며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내가 타인의 기대 가능성을 침해한 경우다. 교장과 교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통념은 의외로 아직 차이가 크다는 것을 절감한다.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김준식 지수중학교 교장

2. 나의 기대 가능성이 무너진 일

나와 같은 공모 교장이 되려면 도 교육청에서 공모교장 대상 학교를 지정해야 하는데 그 공모의 유형을 ‘교장 미자격 소지자’도 지원할 수 있는 ‘내부형 공모교장 대상 학교’로 지정해야 한다. 진보적 교장 인사제도의 유형으로 기존의 승진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제도로서 이렇게 임용된 공모 교장들은 4년 동안 나름 최선의 노력으로 학교 교육의 변화를 시도한다. 나 역시 이렇게 교장으로 임용된 유형으로 교장이 된 나의 노력은 이렇게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는 하다.

그런데 공모 교장으로 4년의 임기를 끝낸 공모 교장들은 자신이 있었던 학교를 다시 공모 교장 대상 학교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고 대부분 그렇게 진행이 되어왔다. 일종의 기대 가능성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기존의 승진 제도에 따르는 교장 임용 대상자와 충돌이 생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2023년 경남의 공모 교장 대상 학교가 최근 공문으로 발표되었는데 나의 기대 가능성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도 교육청이 공문으로 발표한 행위인 탓에 번복이나 수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나의 기대 속에 당연히 공모 교장 학교로 지정될 것이라고 믿었던 학교가 아예 공모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 대하여 이해 당사자도, 그 아무것도 아닌 내가 뭐라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게 기대 가능성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2023년 8월 31일 지수중학교 교장의 역할을 그만 둘 나도 우리 학교가 다시 공모 교장(교장 자격 없는) 학교로 지정되기를 바라고 그 준비를 할 것인데 어제처럼 아주 일방적으로 도 교육청의 의사표시가 있다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암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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