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군 장마면 유리 고인돌. 언덕위에 있다.
경남 창녕군 장마면 유리 고인돌. 언덕위에 있다.

*기록이 없는 유물은 아이들 상상력 주머니

아이들과 역사공부를 하다 보면 기록이 정확히 남아 있는 이야기보다는, 기록이 없는 유물을 살펴보는 것이 더 많은 상상력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 유물 중 하나가 고인돌이다. 관심만 가지면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고인돌이 눈에 띈다. 얼마 전 경남 김해에서 발견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 발견 후 관리를 잘못한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고인돌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세대마다 좀 다르다.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는 1970년대 박수동 만화작가가 그린 ‘고인돌’ 만화를 떠올릴 것이다. 그 뒤로는 모 빙과업체에서 만든 빨아먹는 아이스크림인 ‘빠삐코’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빠삐코는 고인돌을 광고로 활용했다. 어른들은 이래저래 고인돌과 친했다.

*이름을 고인돌이라고 했을까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에 있는 무덤 중에 오래된 무덤은 어디 있을까라고 물으면, 경주나 가야 지역에 있는 커다란 봉분을 떠올린다. 고인돌이 무덤이라는 걸 언뜻 잊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무덤과 너무 다르게 생겨, 청동기 시대에 지배자가 죽으면 고인돌을 만들었다는 걸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무덤 이름을 왜 고인돌이라고 할까? 물으면 많은 아이들이 ‘돌로 만든 오래된 무덤이라서요.’ 라고 답을 한다. 한자 공부를 한 아이들 생각에는 고인돌의 ‘고’ 자가 한자의 옛 ‘고’ 자로 생각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또 어떤 아이는 제 딴에 상상력을 낸다고 이렇게도 얘기를 한다. ‘고릴라가 인간에게 돌을 던진다.’

이름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떤 내용을 파악하려면 이름을 짓게 된 이유부터 알면 이해가 쉽고 기억도 오래간다. 많은 것들이 이름과 연관된 특징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름의 유래를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의문의 시작은 이름부터 아는 것이다. 그럼 고인돌은 왜 고인돌이라고 했을까?

돌을 괴였다는 뜻으로 굄돌, 받쳐놓았다고 해서 고인돌이라고 한다. 괴였다는 말을 잘 안 쓰니까 괴였다는 말을 잘 이해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돌을 받쳐 놓았다고 하면 ‘아~’ 한다.

고인돌 하면 강화도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을 대표 고인돌로 떠올리겠지만, 우리나라 남쪽에는 받침돌을 낮게 고여 만든 바둑판식 고인돌을 많이 볼 수 있다. 고인돌도 자세히 살펴보면 모양이 다 다르다. 창녕군 장마면 유리에 있는 고인돌은 언덕에 있는 고인돌도 네모반듯해서 고인돌에서 참 생겼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고인돌 하면 강화도 탁자식 고인돌과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진 고인돌이 창녕 유리 고인돌이다.

 

경남 창녕군 계성면 사은암. 산 중턱에 있는데 고인돌을 닮았다.
경남 창녕군 계성면 사은암. 산 중턱에 있는데 고인돌을 닮았다.

*고인돌은 무슨 모양일까

그럼 고인돌은 무슨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일까? 정확한 내용은 기록에 없다. 유물을 통해 여러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생각 주머니를 넓힐 수 있는 좋은 재료이다. 잘 생기기로 이름난 창녕 유리 고인돌은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만들기 위해 고인돌을 깨기 전에는 일곱 개가 있었다고 한다. 북두칠성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일부 고인돌에는 북두칠성 모양 구멍이 발견되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구름 모양이라고 한다. 고조선을 세울 때 하늘에서 바람, 구름, 비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왔고, 죽으면 다시 하늘을 돌아간다는 것이다. 만물의 시작은 하늘의 구름이고 구름 속에서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이다. 비는 물이고 물은 만물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용도 구름 모양이다. 고인돌 모양에 대해 달리 연구한 사람들이 없으니 지금까지는 구름 모양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탁자식 고인돌이나, 바둑판식 고인돌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하늘에 떠있는 구름같이 보인다.

 

경남 창녕군 계성면 고인돌. 고인돌 상판에 북두칠성 모양 구멍이 나있다.
경남 창녕군 계성면 고인돌. 고인돌 상판에 북두칠성 모양 구멍이 나있다.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청동기 시대 대표적 유물로 고인돌, 청동검, 움집을 말한다.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유물인 청동검은 북방민족의 상징유물처럼 생각해서 고인돌도 북방 민족 유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새롭게 연구한 사람의 이야기로는 고인돌은 쌀과 함께 남쪽애서 들어온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동남아시아에 남아 있는 돌문화와 제주도 돌하르방을 그 예로 든다. 움집은 사람이 비와 추위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고, 청동검은 제사장의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부족 간에 많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돌을 옮겨오면서 고인돌을 만든 것은 죽은 사람 시신의 훼손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시신이 훼손되면 하늘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전남 순천 고인돌공원. 고인돌을 옮기는 모습
전남 순천 고인돌공원. 고인돌을 옮기는 모습

사람이 죽은 뒤 시신을 땅에 묻지 않으면 여러 가지 위생적인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 말로는 시신을 땅에 묻지 않으면 벌레가 생긴다는 것이다. 시신을 땅 속에 묻는 것은 위생적인 문제이다. 무거운 돌을 어떻게 떼어내고 옮겨 왔는가는 고인돌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다 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되어있다. 아이들과 가까이 있는 고인돌을 찾아보고 아이들과 생각 주머니를 넓히는 놀이를 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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