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단의 기본은 '밥+국+찬'이다.

'밥+국'은 국밥이 된다. 그래서 국밥에는 '찬'이 따라 나온다. 그리고 '밥+찬'은 비빔밥이 된다. 그래서 비빔밥에는 콩나물국, 선지국 등 '국'이 따라 나온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견해에 따르면 생태 환경적 조건에 따라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거나 요리하기 쉬운 음식이 '먹기 좋은 음식'이 된다. 먹기 좋은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자주 먹다보면 '생각하기 좋은 음식'이 된다. 그리고 결국은 그 생각하기 좋은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된다. 음식의 대중화란 이런 것이다.

비빔밥이나 국밥은 준비하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편리한 음식이다. 결국 '먹기 좋은 음식'이다. 시간에 쫓기는 서민대중이 한 끼를 후다닥 해결하기에 좋은 자연발생적인 음식이다.

비빔밥을 뜻하는 음식은 1849년 홍석모가 쓴 <동국세기>라는 문헌에 '骨董飯(골동반)'이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골동'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다는 뜻이다. "동국세기 이전의 고조리서에 골동반이나 비빔밥 등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밥과 반찬을 단순히 섞어 먹는 것이어서 찬품명(음식이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빔밥은 골동반 등의 이름으로 문헌에 등장하기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음식이다. 본래 사물이 먼저 존재하고 명칭은 나중에 만들어지는 법이다.

비빔밥이 한글 이름으로 처음 문헌에 나타난 것은 1890년 <시의전서>라는 조리서에서였다. '부븸밥'으로 표기되었다.

"...각색 나물을 볶아 놓고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과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19세기 후반 상업이 활성화되고 각 지역마다 시장이 생기게 된다. 보부상, 상인, 손님, 구경꾼 등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식당이 생겨났다. 한반도 근대적 외식업의 시작이다. 이 때의 대표적 메뉴가 비빔밥, 국밥 등과 같이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1920년대 들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비빔밥 냉면 국밥 등이 식당 메뉴로 자리 잡는다. 비빔밥의 기본은 밥 나물 등이었지만 서울, 진주 같이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는 곳에서는 육회를 얹어 내기 시작했다. 육회와 함께 고추장도 따라 나왔다.

1929년 12월, 잡지 <별건곤>에서는 진주비빔밥을 이렇게 소개한다. "하얀 쌀밥 위에 색을 조화시켜서 날아가는 듯한 새파란 야채 옆에는 고사리나물 또 옆에는 노르스름한 숙주나물 이러한 방법으로 가지각색 나물을 둘러놓은 다음에...옆에 육회를 곱게 썰어놓고 입맛이 깔끔한 고추장을 조금 얹습니다."

<시의전서>의 '가정식' 비빔밥이 <별건곤>의 진주비빔밥으로 '식당메뉴'화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고추장이 추가되고 '미리 비벼내는 것'에서 먹는 사람이 먹기전 '직접 비벼먹는 것'으로 변한다.

1960년대 고추장이 상품화되면서 식당 메뉴 비빔밥에 고추장은 필수가 되었고, 1980년대를 지나면서 가정집 비빔밥에도 고추장을 넣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1980년대 이전 가정집 비빔밥, 제사밥 등 미리 비벼내는 비빔밥에 고추장을 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진주 중앙시장 제일식당의 육회비빔밥
진주 중앙시장 제일식당의 육회비빔밥

1960년대 이전 전주의 대표 음식은 비빔밥이 아니었다. 1929년, 잡지 <별건곤>에는 전주 대표 음식으로 '탁백이국', 즉 콩나물국밥을 꼽고 있다.

그런데 "1974년 서울 한 대형 백화점에서 '팔도강산민속물산전'이란 행사를 기획하면서 전주의 한 비빔밥집을 초청"한다. 행사가 끝난 후 그 비빔밥집은 그 백화점에 입점하게 된다. 1980년 서울 롯데백화점도 비빔밥집을 입점시킨다. 1981년에는 전주 유명 돌솥비빔밥집 분점이 서울 명동에 문을 열게 된다. 이와 같이 "전주비빔밥이 유명해진 곳은 전주가 아니라 서울이다."

이렇게 전주비빔밥은 서울에서 대박을 치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결국 비빔밥은 전주비빔밥으로 '거의' 천하통일이 이루어졌고, 비빔밥하면 전주비빔밥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전주비빔밥의 전국적 대중화는 각 지역 비빔밥들의 설 자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육회, 숙주나물, 해물 보탕국, 선짓국을 특색으로 하는 '진주비빔밥'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리고 안동 '헛제사밥', 해산물과 나물이 넉넉한 '통영 비빔밥', 전국 최대 우시장 신선한 쇠고기 육회의 '함평 육회 비빔밥', 특산물 멍게젓갈을 이용한 '거제 멍게젓갈 비빔밥' 등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비빔밥이 전국 팔도에서 맛의 획일화를 거부하고 다양한 맛과 각자의 개성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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