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은 독특하다.

주식인 밥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가정집에서 면을 뽑고 육수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얼음을 넣어 국수를 먹는 것은 흔치 않은 음식문화이다. 유래한 지역과 발전한 지역이 명확하고, 유래하고 발전한 배경에 작동하는 자연환경과 정치사회 환경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다.

비빔밥은 평범하다.

주식인 밥과 함께 간다. 준비과정이 별거 없다. 먹다 남은 밥이나 나물 등을 그냥 비비면 된다. 그러므로 특별한 유래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전남 함평같이 도축장이 있으면 육회비빔밥, 절 근처에는 산채비빔밥, 통영에는 멍게비빔밥 이런 식이다. 진주의 육회비빔밥도 진주에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냉장기술도 없고 교통도 불편한 시절에 육회가 가능했던 것은 가까이에 식재료 공급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냉면의 유래와 전파에 관해서는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이 있고 합리적 이야기가 가능하다. 한반도 북부라는 환경적 특수성으로 인해 탄생한 메밀국수인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조선 후반기의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발달한 한반도 남부 '진주냉면' 그리고 6.25 전쟁과 자국 내 과잉 생산된 밀 처리를 위한 미국의 원조로 탄생한 '부산밀면'이 그러한 것들이다.

반면 비빔밥의 유래와 전파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다. 자연발생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누가 최초로 비비기 시작했는지는 따질 필요도 없고 따질 수도 없다. 그러나 제사 후 음식을 한데 섞어 먹은 데서 시작했다는 '음복설', 바쁜 농번기에 이것저것 섞어 비벼 먹었다는 데서 기원했다는 '농번기설', 동학혁명 시기 부족한 음식을 한데 비벼 먹었다는 '동학혁명설' 등 비빔밥의 유래에 대한 설들은 많다. 또 비빔밥을 지칭하는 것으로 옛 문헌에 '골동반(骨董飯, 골동은 섞는다는 의미이다.)'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것을 근거로 하는 '중국음식 기원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설들은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고 더 이상 이렇다 할만하게 제시되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설로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이상 주장하기도 애매하고 반박하기도 애매한 그런 것이다.

'진주비빔밥'의 유래를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먹었던 음식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진주 음식이니 진주성 전투와 연결시켜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역시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그저 ‘카더라 통신’ 수준이라고 <식사食史>의 저자 황광해(음식칼럼니스트)는 평가한다. 그리고 <식탁 위의 한국사>의 저자 주영하는 "아직까지 조선 후기 문헌에서 오늘날의 육회비빔밥과 같은 음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1929년 12월 1일자 <별건곤> 제24호에 실린 글에서 육회 비빔밥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라고 하는 정도이다.

냉면과 비빔밥은 이렇게 다르다.

하지만 냉면과 비빔밥에도 공통점은 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는 거의 없는 음식문화라는 공통점 말이다. 뛰어난 음식문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특한 음식문화라는 것이다.

국수를 먹는 나라나 민족은 많지만 그것을 굳이 차게 해서 그것도 얼음까지 넣어 먹는 경우는 내가 아는 한 우리 민족 외에는 없다.

비빔밥도 그렇다. 비빔밥은 밥, 나물, 국 등과 수저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음식이다. 그런데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이 비빔밥 음식문화를 가진 나라는 우리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뜻밖이다. 중국의 '골동반'이나 일본의 '가마메시' 처럼 밥을 하기 전에 채소 고기 등을 미리 쌀과 함께 넣어 지어내는 음식은 있다. 우리나라의 '콩나물밥'이나 '무밥', '밤밥'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밥과 나물 등을 먹기 전에 비벼 먹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아마 우리처럼 '나물 문화'와 '수저 문화' 둘 다를 가진 경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일본인의 경우 미리 비벼 놓거나 먹기 직전에라도 비비는 것을 기피한다고 한다. 카레라이스나 덮밥을 먹을 때도 우리처럼 미리 비비지 않고 칼로 두부 자르듯 숟가락으로 구획 지어가며 먹는다고 한다.

냉면 하면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 유명하고 비빔밥 하면 '전주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이 유명하다. 진주는 이렇게 냉면과 비빔밥 앞에 자기 이름을 갖다 붙여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낸, 흔하지 않은 도시이다.

 

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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