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감자탕이 나에게 추억으로 훅 다가온다면 과메기는 추위와 함께 서서히 다가온다. 주점 벽에 홍보 포스터가 붙기 시작하면 과메기 안주는 소주병과 함께 우리 술상 위에 오르기 시작한다.

1980년대 중반 객지에서의 첫 겨울은 너무도 추웠다. 선배 두셋과 나를 포함한 신입생 두셋이 유리창에 성에가 허옇게 낀 허름한 주점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선배는 감자탕과 소주를 시켰다. 털어 넣은 소주와 감자탕의 따듯한 국물과 연탄난로의 온기는 객지에서 나의 첫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감자탕을 그때 처음 만났다.

감자탕과 달리 내가 과메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 진주에서였다. 결혼 후 아내와 또는 친구들과 주점 메뉴판에 나오는 과메기를 호기심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이 독특했고 듣도 보도 못한 거라 신기하기만 했다. 맛도 맛이지만 생선과 각종 채소, 해산물로 이루어진 것이 건강에 좋겠다는 판단으로 과메기를 선택하기도 했다.

냉동기술이 발달하기 전 청어 꽁치 같은 생선은 상온에서 쉽게 변질되는 것이 문제였다. 이를 보관하는 방법이 소금에 절이는 염장이다. 그러나 예전에 소금은 귀하고 비싼 것이어서 건조하거나 훈연하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포항지역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겨울철 바닷바람에 건조한 것이다.

청어, 꽁치, 명태, 오징어 같이 무리지어 다니는 어류는 적합한 수온과 적당한 물때를 만나면 한꺼번에 많이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수온과 물때가 바뀌면 그 많던 생선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중세 이후 북유럽의 청어가 그랬다. 발트해의 청어가 갑자기 사라지자 수백년간 유지되던 도시간 상업조직 '한자동맹'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 청어떼가 네덜란드 앞바다인 북해에 출몰하면서 네덜란드가 갑자기 돈벼락을 맞게 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포항지역에는 청어가 너무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로도 먹고 구워도 먹다가 남으면 새끼로 엮어 바닷가에서 말려두었다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동해에서도 북유럽 발트해에서 그랬던 것처럼 청어가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지금 과메기는 청어과메기가 아니고 꽁치과메기이다.

포항 구룡포 지역 향토음식이던 과메기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전국에서 몰려든 포항제철 중공업 노동자들이 다시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다른 지역에 과메기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항 출신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과메기는 순식간에 전국적 음식이 되었다.

과메기는 배추, 미역, 쪽파, 맨김, 고추, 마늘 등과 함께 초고추장 와사비장 또는 막장에 찍어 먹는다. 다양한 쌈채소, 해산물과 함께 즐기는 과메기 요리에는 단백질, DHA와 EPA, 비타민 A, D, 칼슘, 아스파라긴산, 식이섬유, 파이토 케미컬 등 영양은 풍부하지만 가공 탄수화물, 나쁜 지방, 칼로리 등은 거의 없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환자들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

생선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과정 중 식감이 변하며, 미생물에 의한 단백질 분해로 감칠맛이 증가한다. 시대에 따라 어종도 변했지만 가공처리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청어과메기에서 꽁치과메기로 바뀌었고, 통과메기에서 갈라서 건조하는 편과메기로 바뀌었다. 요즘은 효소를 활용하여 비린내를 없애고 감칠맛을 높여 맛과 상품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그런데 체질적으로 이런 훌륭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청어, 꽁치에 함유된 '퓨린' 때문에 과메기를 먹고난 후 고생하는 통풍 환자들이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자고로 술안주는 최고의 건강식이라는 나의 믿음에 철저히 부합하는 것이 과메기 안주이다.

 

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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