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비빔밥은 너무나 평범하고 자연발생적인 음식이지만 한반도를 벗어나면 흔하지 않은 독특한 음식이다.

내장탕이나 동치미, 고등어찜과 해물탕, 돼지족발과 곱창구이 등 우리나라 사람만 먹을 것 같고 왠지 외국인들은 먹지 않을 것 같은 것들도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들 먹고 있다. 다만 음식의 이름이 다를 뿐이다. 물론 기후와 환경에 따라, 종교문화적 특성에 따라 먹지 않는 지역이 있고 호불호도 당연히 있다. 자연환경에 따라 식재료를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당연히 그런 식재료 음식은 탄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거나 교통이 불편한 옛날에는 고등어를 구할 수 없는 산속이나 내륙 깊숙한 지역에서는 고등어찜 요리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안동 간고등어나 홍어요리처럼 새로운 음식문화로 변화 적응하여 나타난다.

문화란 대중적 지속적 향유를 전제로 한다. 특정 지역, 특정 시기, 특정 경우의 일시적 현상을 문화라고 하지 않는다. 비빔밥 음식문화는 한반도 전지역에서 오랫동안 대중들이 즐기는 음식문화이다. 비빔밥의 어떤 점이 독특하고 또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 밥과 빵

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비빔 음식이 쉽지 않다. 밀은 제분을 통해 가루를 이용하는 음식문화를 탄생시킨다. 빵이 그것이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곳에서는 비빔 음식이 탄생할 수가 없다. 비빔빵은 결국 비빔죽이나 비빔떡이 되어버릴 것이다. 비빔 음식문화는 빵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2. 나물-산채(山菜)와 나무루(ナムル)

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 비빔밥 음식문화 탄생의 결정적 조건은 나물의 유무이다. 밥이라는 완성된 형태와 나물이라는 독립적인 형태가 있어야 둘을 서로 비빌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채소를 식재료로 이용한다. 하지만 중국 요리에서 채소는 주요리의 부수적 보완적 식재료로서 역할을 하는데 그치고 독립되고 완성된 음식으로 자기 위상을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듯 나물 재료의 다양성은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고사리와 같이 산에서 나는 식재료를 식단에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산에서 나는 채소라는 의미인 산채(山菜)는 중국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는 논밭의 농작물, 바다의 해산물, 들판의 야채뿐만 아니라 산속의 산채에까지 나물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혹자는 이것이 먹고살기 힘든 초근목피의 상황을 반영한 음식문화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나물은 왕실에서부터 귀족, 양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상하 구분 없이 즐기는 음식문화였다.

그리고 일본어에는 나물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나물 음식문화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나물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을 그대로 가져가 '나무루(ナムル)'라 한다고 한다.

결국 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 우리나라에 비빔밥 문화가 가능한 것은 밥 문화와 함께 풍부한 나물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3. 수저와 포크

중국과 일본도 수저를 사용했지만 지금까지 수저를 같은 비중으로 사용하는 식문화는 우리나라뿐이다. 중국에서는 면요리가 늘어났고, 일본의 경우 끈기 많은 차진 쌀의 재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숟가락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서양의 경우 16세기 이태리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느'가 프랑스 왕비로 시집가면서 포크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지만 17세기 이후 한참까지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수저가 없는 음식문화에서 비빔밥은 상상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맨손이나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하는 음식문화 역시 비빔밥과 어울리지 않는다. 수저가 비빔밥 탄생의 주된 요인은 아닐지라도 이들이 발전하고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4. 그리고 상업화

현재 비빔밥의 모습은 비빔밥이 상업화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식당에서 메뉴로 정착되면서 자리잡은 형태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비빔밥에는 비'빈'밥과 비'빌'밥 두 가지 형태가 가능하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비벼주는 비빔밥이나 제사를 마친 후의 제사밥은 미리 비벼서 내놓는 비'빈'밥인 것이다. 그러나 식당에서 판매하는 비빔밥은 미리 비벼서 내놓을 수가 없다. 손님이 언제 올지, 언제 먹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당 비빔밥은 먹는 사람이 먹기 전에 직접 비벼야 하는 비'빌'밥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비빔밥, 대중화된 비빔밥은 비'빌'밥 형태의 비빔밥인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민족이 처한 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음식문화에서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연환경 즉 '기후의 힘'과 '지리의 힘'이 결정적이다. 거기에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더해져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든다. 밥도 그렇고 나물도 그렇고 결국 쌀농사가 가능한 고온다습한 기후와 삼면이 바다라는 반도적 특수성과 국토의 많은 부분이 산악지대라는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음식이다. 그러한 기초 위에 대중화와 상업화라는 경제적 사회적 힘이 현재의 독특한 비빔밥 음식문화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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