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경 시인
천지경 시인

테이프는 힘이 세다/유홍준

 

이삿짐센터 일꾼들이 도착

사납게 짐을 싼다 농짝을 들어내고 세탁기를 들어내고

여기도 찍, 저기도 찍, 테이프를 갇다 붙인다

냉장고에도 붙이고 장롱에도 붙이고 포개 쌓은 밥그릇에도 붙인다

테이프 붙이러 온 사람들 같다 저 사람들

테이프 없애러 온 사람들 같다

우리나라 이삿짐들은 테이프 없이는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한다

내 온갖 세간살이들이 꽁꽁 테이프 결박을 당하고 있다

어떤 것은 입에 어떤 것은 손발에

테이프가 붙여져 있다

태풍예보를 듣고

나도 저걸 베란다 유리창에 붙였었다

털옷에 묻은 먼지를 떼어냈었다

방바닥에 뒹구는 머리카락을 찾아냈었다

새 집으로 이삿짐을 옮기자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쬑쫙 거침없이 테이프를 뗀다

여기서도 찍 저기서도 찍

떼어낸 테이프들이 공처럼 똘똘 뭉쳐져 있다

 

* 나는 유홍준 시인 시들을 최고로 친다. 테이프 하나만으로도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 테이프가 가진 무궁무진한 힘, 가장 힘 없고 하위일 것 같은 테이프가 우리네 서민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려져도 똘똘 뭉쳐서 더 단단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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