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나는 물리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현실 세계 밖의 현상을 기술하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이론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일부 이해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감각 세계를 벗어나고 상식을 벗어난 그러한 이론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거나 말거나,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이론은 실험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전자의 운동은 지구가 태양 주위의 정해진 궤도(orbit)를 도는 것처럼 원자핵 주위를 정해진 궤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두 공간에 존재할 수 있고, 갑자기 위치를 바꾸는 도약을 감행하기도 하고, 신출귀몰하여 도저히 위치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운동한다고 한다.

전자와 같은 극미세 입자인 양자(量子, quantum)의 이런 운동 특성을 궤도(orbit) 운동 방식과 대비하여 오비탈(orbital) 방식으로 운동한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위치를 확정할 수 없이 원자핵 주위를 움직이는 전자와 같은 양자 운동 이론을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한다.

이렇게 원자 또는 분자 주위에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전자를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 '전자구름'이다. 존재확률이 높은 공간을 진하게, 낮은 공간을 연하게 표시하면 구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핵을 중심으로 하는 희뿌연 공 모양이나 아령 모양 등의 이미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운동방식, 존재형태는 현실 세계, 감각 세계, 상식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빛 입자나 전자처럼 질량이 0에 가까운 극소 미세 입자인 양자는 그렇게 존재하고 운동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된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양자이론을 도입해 원자와 원자 사이의 만남이나 헤어짐을 설명하는 분야를 '양자화학'이라 한다. 양자화학은 화학을 기반으로 하는 나의 직업상 매일 접하므로 일부 이해하는 부분도 있다.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지 일단 믿고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건지 나도 헷갈린다.

원자와 원자가 결합하여 분자를 만드는 것은 각 원자 바깥에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운동하고 존재하는 전자들이 충첩하며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유결합이라 한다. 공유결합은 원자와 원자가 상대의 전자를 붙잡고 공동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원자와 원자 주위에서 두 원자를 감싸며 결합시키고 있던 전자가 어떤 이유에서 빠져 나가 버리면 어떻게 될까? 두 원자는 결합력이 약해져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을 화학에서 '분해된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탄소와 탄소 사이의 공유결합으로 유지되던 유기물에서 전자가 빠져나가 버리면 탄소와 탄소 사이의 결합이 사라져 이 유기물은 분해된다. 이렇게 분해되면 생명분자는 제 기능을 상실한다. 늙고 병들고 해체되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전자가 사라지는 것 또는 분자가 전자를 잃는 것을 '산화'라 하고 그 반대 현상을 '환원'이라 한다. 이렇게 생명 분자의 생성과 소멸은 화학의 관점에서 보면 산화 환원 과정이다. 산화 환원은 전자의 흐름이다. 그러므로 생명현상은 전자의 흐름이다. 전자의 흐름은 양자역학적이므로 생명현상은 양자역학적이다.

생명분자인 유기물이 분해되고 해체되는 것은 분자를 유지시켜주는 전자를 잃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자를 잃는 산화반응을 억제하는 물질을 '항산화제'라 한다. 항산화제는 생명분자에 전자를 제공해서 산화, 분해되는 것을 막아주지만 자신은 분해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화학구조를 가진 물질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항산화제인 '플라보노이드', '카로테노이드', 코큐10, 비타민 C, E 등은 일부 전자를 내주어도 자체 구조 내부에서 전자를 나누고 배분하여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공명' 구조라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자가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도 있을 수 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는 도약과 존재의 불확정성 때문이다.

항산화제는 주변의 변화에 '공명'한다. 그리하여 필요하면 자신의 전자를 내주어 상대 분자의 전자 부족분을 메꾸어 준다. 이렇게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분자의 분해를 막는 '항산화력'은 주변 환경에 공감하고 공명하는 전자의 운동과 존재 방식에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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