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며 지구로 카메라를 돌려 찍은 사진을 인류에게 보내왔습니다. 수많은 별들 속에서 희미하고 작지만 푸르게 빛나는 별 지구를 보고,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별들과 달리 유독 지구는 푸른빛을 띠고 있습니다. 산도 푸르고 들도 푸르고 바다도 푸른빛입니다. 태초에 지구가 푸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구가 푸른빛을 띠는 것은 '남세균(Cyanobacteria)'이라는 아주 작은 생명체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전)MBC 사장, (현)뉴스타파 최승호PD의 <녹색강의 습격>이라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물이 흐르지 못합니다. 농장, 공장, 생활 폐수가 유입됩니다. 인, 질소 같은 영양염류의 증가로 남세균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렇게 하여 녹조현상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녹조현상의 주범이 남세균이라는 말입니다.

남세균은 원시핵의 단세포 세균입니다. 세균은 주변에 경쟁상대가 많아지면 상대를 제압할 항생물질(antibiotics) 또는 독소를 생산합니다. 곰팡이가 '페니실린'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남세균은 간독성 물질 마이크로시스틴, 신경 마비 독소, 악취의 원인 냄새 물질 등을 생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녹조가 아가미를 막아 물고기와 조개들을 질식사시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4대강 주변의 환경생태계와 농작물의 안전성 그리고 주민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지구 생명의 역사는 남세균 출현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사실 남세균은 푸른 지구의 출발점이며 식물과 동물 탄생의 숨은 공로자입니다. 지구상에 남세균이 등장한 것은 약 30억 년 전입니다. 당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남세균이었습니다. 어떻게 광합성 능력을 획득했는지는 생명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남세균이 광합성으로 산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지구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광합성은 물과 이산화탄소로부터 포도당 같은 유기화합물과 산소를 만드는 생화학 작용입니다. 남세균 이전 지구 대기에는 산소가 없었다고 합니다. 원시 지구 대기에는 수소, 메탄, 암모니아 가스가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남세균에 의해 산소가 만들어지면서 우주의 자외선으로부터 지구 생명체를 보호하는 오존층이 만들어집니다. 산소를 이용하는 에너지 생산 공장 '마이토콘드리아'를 장착한 식물, 동물 같은 진핵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바다와 산과 들은 생명들로 넘쳐나게 됩니다. 푸른 지구가 탄생한 것입니다.

육상 식물은 지금부터 약 5억 년 전에 등장합니다. 남세균이 등장한 후 약 25억 년 이후의 일입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남세균은 식물과 동물이 지구에서 살아갈 준비를 해온 것입니다.

남세균은 이렇게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의 숨은 창조자, 지구 디자인의 실질적 주인공입니다. 우리가 먹고 숨 쉬고 뛰놀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의 출발점은 남세균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가꾸고 만들어온 지구를 파괴하고 망치려는 인간들에게 요즘 단단히 화가 난 듯합니다.

칼 세이건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지구뿐이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하여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은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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